본래 알렉시오스라는 이름은 대왕 알렉산드로스 3세 처럼 'Alex-' 계통의 이름 중 하나로 그리스어권에서 종종 쓰이던 이름이었으나, 알렉시오스 1세가 대박을 치면서 콤니노스 왕조의 황족을 중심으로 널리 쓰이게 되어 많은 동명이인을 낳게 되었다. 그러나 알렉시오스라는 이름을 가졌던 황제들은 알렉시오스 1세를 제외하고 어째 다 운명이 좋지 않다.
1. 알렉시오스 1세
이 이름을 가진 인물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 항목 참조.2. 알렉시오스 1세의 조카
(1077? - 1108~)알렉시오스 1세의 둘째형이자 제국의 2인자인 세바스토크라토르(Sebastocrator) 이사키오스 콤니노스와 알라니아의 이리니 사이에서 태어난 삼남이다.
황제의 조카이다보니 세바스토스(Sebastos) 작위를 가졌고, 1106년 봄에는 큰형 요안니스 콤니노스의 뒤를 이어 제국 서부의 요충지 디라히온의 둑스(Doux)가 되었다. 마침 1106년 즈음은 보에몽 1세의 재침공 징후가 농후해지던 때였다. 황제도 이를 감지하고 있었으므로, 숙질간에 서신을 교환하며 부지런히 방비를 서둘렀다.
1107년 10월, 과연 보에몽이 아드리아 해를 건너 침공해왔다. 11월이 되자 보에몽은 디라히온을 포위하고 공성을 시작했는데, 26년전 디라히온 공방전의 패배에서 배운 교훈을 기억하고 있던 황제는 예전과는 달리 단기결전을 위한 야전을 걸지 않았다.
조카인 알렉시오스는 26년전에 같은 처지였던 요르요스 팔레올로고스처럼 디라히온을 잘 방어해냈다. 결국 겨울동안 질병과 보급부족, 배후에 있던 황제의 위협에 시달린 보에몽은 패배를 인정했고, 이듬해인 1108년에는 자신과 안티오키아 공국이 제국의 봉신임을 인정하는 데볼 조약(Treaty of Devol)을 맺었다.
이후의 생애는 기록이 적어 불확실하다. 생몰년이 명확하지 않을 정도. 위의 디라히온 공방전에 대한 내용도 사촌인 안나 콤니니의 저작인 알렉시아스에 근거한 것이다.
3. 요안니스 2세의 장남
알렉시오스 콤니노스(요안니스 2세의 아들) 참조.4. 요안니스 2세의 손자
(1135/1142 - 1182)요안니스 2세의 차남인 안드로니코스 콤니노스의 아들이다. 마누일 1세의 조카이자 알렉시오스 2세의 사촌형(아버지 뻘 사촌형)이다. 프로토세바스토스(Protosebastos: 대공, 대군주 정도에 해당하는 작위)였으며, 마누일의 어린아들인 알렉시오스 2세를 보좌하는 섭정단의 수장이었다. 다만 인기가 없었는지 어린 황제의 모후인 안티오키아의 마리아와의 염문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제위를 찬탈할 것이라고 의심받아 마리아 콤니니가 쿠데타를 일으키게 되었으며, 결국 우유부단하게 대처한 끝에 당숙 안드로니코스 1세가 개입하게 되어 실명을 당한 뒤에 목숨을 잃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