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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6 01:41:39

알락산더르 램지

성명 알락산더르 램지
Alexander Ramsay
생몰년도 1290년 ~ 1342년
출생지 스코틀랜드 왕국 미들로디언 달하우지 성
사망지 스코틀랜드 왕국 허미티지 성
아버지 윌리엄 램지
형제 윌리엄 램지
직위 로디언의 영주, 기사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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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코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백년전쟁 시기에 잉글랜드군에 맞서 싸웠다.

2. 생애

스코틀랜드 왕국 미들로디언 달하우지 성에서 달하우이 영주 윌리엄 램지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로디언에 작은 영지를 소유했으며, 1332년 잉글랜드 귀족들의 지원을 받아 스코틀랜드 국왕 데이비드 2세를 밀어내고 스코틀랜드 왕위를 탈취한 에드워드 발리올에 맞서 스코틀랜드 남부에서 저항했다. 1335년 제3대 머레이 백작 존 렌돌프의 지휘 아래 갤로웨이를 습격해 나무르 백작 기 2세를 보로우뮤어 전투에서 격파하고 생포했다.

이후 머레이 백작이 잉글랜드군에 생포되자 그는 로디언으로 가서 윌리엄 더글러스와 합세한 뒤 잉글랜드군에 맞서 유격전을 벌였다. 램지는 미들로디언의 호손딘에 있는 동굴에서 병력을 양성했고, 윌리엄은 에트릭 포레스트와 팬트랜드 둔덕을 근거지로 삼고 램지가 양성한 병력을 이끌고 잉글랜드군을 여러 차례 공격해 타격을 입혔다. 훗날 스코틀랜드 연대기 작가들은 램지와 윌리엄이 이끈 유격대를 '기사도 학교'로 칭송했다. 1338년 잉글랜드군에 포위된 던바 성을 바다를 통해 물자를 공급함으로써, 던바 백작부인 아그네스 랜돌프 윌리엄 몬타구가 이끄는 잉글랜드군의 공세로부터 던바를 지키는 데 기여했다.( 던바 공방전) 이후 적은 수의 무장군을 이끌고 잉글랜드군을 상대로 지속적인 유격전을 벌였다.

1341년 6월, 데이비드 2세가 스코틀랜드 민중의 환호를 받으며 스코틀랜드 왕국에 귀환했다. 그는 그동안의 공적을 인정받아 록스버그 성주와 테비엇데일 보안관의 직위를 수여받았다. 1341년 12월, 윌리엄 더글러스가 록스버그에서 더비 백작 그로스몬트의 헨리로부터 결투 제안을 받았다. 이때 윌리엄은 첫번째 공격에서 창이 부러지고 팔이 부상을 입어 전투를 계속할 수 없다. 이후 보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 위해 양국 기사 사이에 토너먼트가 조직되었다. 윌리엄은 여전히 팔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램지가 대신 출진해 잉글랜드인들을 물리쳤다. 이에 윌리엄 더글러스는 질투심을 느꼈고, 자기가 가지고 있던 록스버그 성주와 테비엇데일 보안관 직위가 램지에 넘어간 것에 원한을 품었다.

1342년, 윌리엄은 램지가 법정을 주재하고 있던 하윅으로 쳐들어갔다. 그의 부하들은 램지를 체포한 뒤 노새에 묶어 허미티지 성으로 끌고 갔다. 램지는 지하 감옥에 던져진 뒤 17일간 음식과 물을 공급받지 못하다가 굶어죽었다. 이후 데이비드 2세가 이에 분개해 그를 규탄하면서 내전이 벌어지는 듯했지만, 양자는 잉글랜드의 재침을 우려해 1342년 말에 화해했다. 1344년 의회에서, 램지의 친척과 친구들은 윌리엄 더글러스를 해치려 했지만 경비병들에게 제지되었다.

그에게는 동생 윌리엄 램지가 있었다. 윌리엄 램지는 1342년 형의 직위를 물려받은 뒤 노햄 성 주변 지역을 습격해 잉글랜드군에 타격을 입혔고, 1355년 네스빗 무어 전투에 참여해 초대 더글러스 백작 윌리엄 더글러스의 지휘하에 아군의 승리에 일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