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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5 11:38:05

안티노오스



1. 개요2. 일대기3. 기타

1. 개요

Ἀντίνοος / Antinous

그리스 로마 신화의 등장인물. 오디세우스의 트로이 전쟁 종전 이후 후일담을 다루는 오디세이아의 최종보스 격 인물이다. 어원은 적개심, 생각을 반대하는 자.[1][2][3]

2. 일대기

안티노오스는 이타카의 젊은[4] 귀족이었다. 과거 그의 아버지 에우페이테스는 이타카 바로 옆동네인 케팔로니아 섬에서 해적질을 하는 바람에 그곳 사람들의 원한을 샀는데, 당시 이타카의 젊은 왕이 그를 사면해 주었다. 따라서 에우페이테스와 안티노오스 부자는 오디세우스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지만, 그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로 떠난 지 10년이 훨씬 넘도록 돌아오지 않자[5] 많은 사람들이 그가 죽었다고 여겼고, 이에 안티노오스는 자신이 왕좌에 오를 야심을 품고 왕비 페넬로페에게 구혼한다. 그 소식을 듣고는 이에 질세라, 이타카 국내는 물론이고 여러 그리스 주변국가들의 귀족 및 왕족들까지도 우르르 몰려들어 페넬로페에게 구혼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들은 미모의 페넬로페를 자기 여자로 삼고 싶었을 뿐만 아니라, 왕비의 재혼 상대로서 이타카의 새로운 왕이 되어 권세를 누리고 오디세우스의 재산까지 집어삼킬 속셈으로 가득한 이들이었다. 그 와중에도 안티노오스는 자기가 가장 먼저 구혼했다며 은근히 다른 구혼자들과 기싸움을 벌이고 대장 노릇을 하려 들었다.

여전히 한결같은 마음으로 오디세우스만을 사랑하며 남편의 귀국을 기다리던 페넬로페는 이들을 거절하나, 안티노오스 이하 구혼자들은 결단코 물러나지 않았다. 그들은 이타카의 왕궁을 함부로 들락거리다 아예 눌러앉아서는 가축들을 함부로 잡아먹고 오디세우스의 재산들을 축내기 시작했고[6], 궁전에서 일하는 하녀들에게 행패를 부렸으며, 심지어 오디세우스의 아버지인 상왕 라에르테스와 여동생인 공주 크티메네에게까지도 대단히 무례하게 굴었다.[7] 특히 라에르테스는 이들의 패악질에 치를 떨고는, 궁을 떠나 페넬로페가 붙여준 하녀 하나를 데리고 아예 시골로 내려가서 은거하기 시작했다.

구혼자들의 횡포를 보다 못한 페넬로페는 묘안을 냈다. 재혼을 할 땐 하더라도 연로하신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며느리 된 마지막 도리로 수의나 한 벌 마련해 드린 뒤에야 하겠다고 말해 두고, 낮에는 수의를 만들 베를 짜고 밤에는 몰래 도로 풀어버리는 수법으로 시간을 끌기로 한 것.[8] 이 방법이 무려 3년이나 통했지만, 어느 날 페넬로페의 시녀 멜란토가 뇌물을 받고 이를 발설해 버린다. 페넬로페는 멜란토를 딸처럼 총애하며 측근으로 두었으나, 사실 멜란토는 안티노오스에 이어 구혼자 서열 2위였던 에우리마코스와 사귀는 사이였던 것. 이에 구혼자들은 페넬로페를 위협하여 베를 완성하도록 강요했고, 자기들 중 하나를 빨리 고르지 않으면 가만 안 있겠다고 협박하기에 이른다.

오디세우스의 아들이자 이타카의 적법한 왕위 계승권자인 텔레마코스 왕자가 부왕의 소식을 알기 위해 퓔로스의 왕 네스토르를 만나러 떠났다는 사실을 입수하자, 안티노오스는 텔레마코스가 귀국하는 때를 노려 자신의 부하들로 하여금 그를 기습해 죽일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와 텔레마코스 부자를 비호하던 아테나 여신이 개입하여 암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 와중에 웬 늙은 거지가 궁전에 들어와 구걸을 하니, 다른 구혼자들은 '씁 어쩔 수 없지'하는 심정으로 적당하게 적선을 했지만 안티노오스는 적선은 커녕 도리어 그를 멸시하고 모욕을 퍼부으며 의자를 집어던져 폭행하는 등 패악질을 더했다. 거지가 당신은 신의 분노를 사게 될 것이라 경고하고, 심지어 다른 구혼자들조차 "선 넘는 짓 말아라, 저 거지가 행여나 모습을 감춘 신의 사자라도 되면 어쩌려는 거냐?"고 화를 내며 한 소리씩 하고 혀를 찰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었지만[9], 안티노오스는 이들의 비판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고 되려 거지를 향해 닥치고 구석으로 가서 구걸이나 하라고 악을 쓰며 소리쳤다. 이런 패악에 텔레마코스는 '저렇게까지 악독한 놈이니... 오냐, 때가 되면 네 놈을 아주 척살낼테니 두고 보자!'라고 화를 삭였고 다른 구혼자들도 '저 놈 저러다가 가장 많은 피를 볼 놈이지...'라고 끌끌 혀를 찼지만 안티노오스는 다른 이들을 상관하지 않고 치솟는 화를 참을 수 없어 식식거렸다.

한편, 멜란토가 "페넬로페님이 사실은...'이라고 내연남인 에우뤼마코스에게 밀고한 일로 페넬로페가 마침내 새 남편을 고르겠다고 선언하고, '오디세우스의 활[10]에 시위를 매긴 뒤 화살을 쏘아 도끼 12개를 꿰뚫으라'[11]는 시험을 제시하자, 앞장서서 나서지만 화살을 쏘기는커녕 활에 시위를 메기는 것부터 실패. 구혼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용을 쓰고, 활을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만들려고 기름을 바르고 불에 쪼이는 등 별별 수를 써 보았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 아까 안티노오스에게 모욕과 폭행을 당했던 거지가 자기도 젊을 적엔 활을 제법 다루었는데 그 시절의 용력이 남아있는지 시험이나 해 보고 싶다며 기회를 주길 청하자, 안티노오스는 저 거지가 성공하면 페넬로페는 거지와 재혼할 생각이냐며 또 비웃었다. 페넬로페와 텔레마코스는 저 노인도 감히 그걸 바라고 청한 일은 아닐 것이며, 그가 성공한다면 좋은 옷과 신발과 여비를 주어 보내겠다는 말로 안티노오스의 헛소리를 일축하고 거지에게 기회를 줬고,[12] 놀랍게도 이 거지는 단번에 활에 시위를 메긴 뒤 화살을 쏘아 도끼 12개를 깔끔하게 통과시켰다. 그는 바로 아테나 여신의 도움으로 거지로 변장한 채 돌아온 오디세우스 자신이었던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정체를 드러내고 제일 먼저 안티노오스의 목을 쏘아 사살해버렸다. 처음에 거지놈이 눈에 뵈는 게 없냐고 욕하던 에우뤼마코스와 다른 구혼자들은 정체를 알게 되자 모든 책임을 안티노오스에게 덮어씌우고 우리는 저놈의 행패에 못 이겨 따른 죄밖에 없다며 속죄는커녕 비굴하고 추악한 악당답게 자비를 구걸했지만[13], 오디세우스는 이를 일축하고 나머지 구혼자들도 모두 죽였으며, 앞서 말한 멜란토를 비롯해 주인을 배신하고 자발적으로 구혼자들 편에 붙은 하인들도 처형했다. 다만 강요당해서 자의에 반해 마지못해 구혼자들의 말을 따랐던 이들이나, 음유시인 등 그냥 수행원으로 따라왔을 뿐 죄는 짓지 않은 사람들은 살려주었고 자신을 따른 이들 중 돌리오스와 멜란티오스&멜란토 남매의 다른 형제들은 연좌를 받을 뻔했지만 오디세우스가 "죄를 지은것은 멜란티오스와 멜란토 뿐, 나머지는 나를 도와주었다."라고 용서하며 자유와 함께 많은 재산을 은퇴용으로 주었다.

안티노오스의 아버지 에우페이테스는 아들의 죄악을 인정하기는커녕 아들의 죽음에 원한을 품고 다른 구혼자 유가족들을 선동하여 되도 않는 복수전에 나서려 했지만, 오디세우스의 아버지 라에르테스가 손수 무기를 들고 그를 죽였다. 이후 제우스와 아테나가 개입하여 싸움을 멈추게 하고, 구혼자 유가족 측에 물러나지 않으면 신벌을 집행하겠다고 위협하자, 그들은 그제야 울며 겨자 먹기로 물러나고 막대한 배상금까지 지급해야 했다. 안티노오스를 비롯하여 죽은 구혼자들의 영혼은, 오디세우스의 외증조부인 헤르메스가 친히 저승으로 데려갔다.

3. 기타


[1] 헬라어로 반대인 안티+정신(마음)인 노오스를 결합했다. 이를 증명한대로 서로 속성을 많이 공유하고, 경계(바운더리)에 걸쳐있는 결함들인 반사회성 성격장애(안티소셜 페르소날리티 디스오더)와 적대적 반항장애를 악용한 셈이다. [2] 오디세이아에는 뼈가 담긴 이름(nomen loquens)이 있는 편으로, 이들에게는 인간 정신의 많은 요소를 보이지 않는데, 생각을 반대하는 안티노오스의 이름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3] 참고로 힌두교인 인도에서 시작한 불교에서는 108을 중생들의 많은 번뇌를 상징하는 숫자로 취급하는데, 번뇌(煩惱, kleśa)는 고통을 주다, 괴롭히다, 아프게 하다, 고통을 야기하다, 괴로워하다 등을 의미하는 kliś에서 파생된 용어이다. 인도 정통파철학에서는 이 용어를 고통 그 자체의 의미로 사용했는데 불교에서는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번뇌의 종류는 대체적으로 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ㆍ악견(惡見)ㆍ의(疑)ㆍ불신(不信)ㆍ해태(懈怠)ㆍ혼침(昏沈)ㆍ도거(掉擧) 등의 10번뇌로 분류할 수 있기에 이러한 종류를 108명 구혼자에게 대입하면 존재론적이다. [4] 젊다고는 해도, 50세 가량의 이도메네우스가 '노인'으로 언급될 정도이던 당시 시대를 감안하면 아주 젊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오디세우스를 직접 본 적 있는데 당시 본인은 어린애였다고 했다. 오디세우스를 만났을 때라면 그가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러 떠나기 전일 테니 최소 20년 전, 아무리 어린애였다지만 그걸 기억도 할 정도면 당연히 갓난아이는 아니었을 것이고 적어도 네다섯 살은 됐을 테니 오디세이아 시점에선 적게 잡아도 20대 중반쯤은 됐을 것이다. [5] 오디세우스는 귀향하는 길에 자신과 부하들을 잡아먹으려던 퀴클롭스 폴뤼페무스의 눈을 멀게 하고 도망쳤다가 그의 아버지인 해신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서 함대의 대부분을 잃고 한참 떠돌았고, 천신만고 끝에 겨우 다시 돌아오는 길에는 또 남은 부하들이 태양신 헬리오스의 소들을 잡아먹었다가 신벌을 받는 바람에 그나마 남은 부하들에 배까지 모조리 잃고 다시 표류하다가 오기기아 섬의 여신 칼륍소에게 구조된 뒤 거기에 오랫동안 붙들려 있었다. [6] 오디세우스가 돌아왔을 즈음에는 에우마이오스가 언급하길, 확 줄었다고. [7] 크티메네는 오디세우스의 부관인 에우릴로코스와 결혼했었는데, 이 시점에선 에우릴로코스가 귀향길에 풍랑에 휩쓸려 사망한 상태였으므로 자기도 모르는 새 과부가 되어 있었다. 에우릴로코스가 오디세우스를 따라 트로이로 떠날 때 본 게 그대로 마지막이 된 셈. [8] 여기서 '페넬로페의 베짜기'라는 표현이 나왔다. 해도 해도 끝이 안 나고 도루묵이 되는 일을 가리키는 것. [9] 물론 그렇지 않았더라도 그리스 신화 내에서 손님을 해치는 일은 접대의 관습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짓이며, 더 나아가 접대의 관습을 몸소 수호하는 제우스마저 신성 모독하는 행위로서 절대적인 죄악이었다. [10] 무려 궁술의 신 아폴론이 만든 활로 엄청난 강궁이라 어지간한 사람은 당기지도 못하는 물건이었다. 오디세우스가 참전하러 갈 당시 갓난아기였던 텔레마코스가 마음에 들어했는지 그 활을 놓고 갔다. 그렇게 청년으로 자란 텔레마코스도 안티노오스 및 구혼자들의 패악질에 격노해서 이 활을 쓰려고 했지만 시위를 걸지는 못했다. [11] 오디세이아 원전에도 무슨 수로 도끼를 뚫으라는 건지 명확한 묘사가 없는데, 대체로 도끼에 자루를 꽂는 구멍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자루를 뺀 도끼 머리 12개를 한 줄로 나열해, 자루 꽂는 구멍을 통과하도록 활을 쏘라는 것. [12] 국내 도서 중에선 오디세우스를 비웃는 그에게 페넬로페가 저 거지가 활을 쏘아서 날 아내로 삼을까봐 두렵냐고 일갈하는 것이 나온다. [13] 당연하지만 이들도 안티노오스처럼 불손한 속내와 정치적 계산을 지니고 똑같이 행동했기에 완전 어불성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