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
성명 | 안천수(安千壽) |
이명 | 안용관(安鎔觀), 안용원(安鎔元) |
생몰 | 1913년 11월 19일 ~ 1963년 3월 20일 |
출생지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 |
사망지 | 경상북도 울진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안천수는 1913년 11월 19일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4년 12월 27일 울진군 서거면에 소재한 윤경복(尹敬福)의 이발소에서 황명칠(黃明七)·안태열(安泰烈)·안병극(安炳極) 등과 모임을 갖고 국내 정세를 논의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일본인은 일시동인(一視同仁) 운운하면서도 제도적으로 민족차별을 하고 있으며 일제는 결국 한국인을 아사(餓死)시킬 것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조국독립운동을 위한 항일결사를 조직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러나 이 사실이 발각되면서 경찰에 체포되었고, 1935년 9월 13일 함흥지방법원에서 불경죄 및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항소했지만 동년 10월 1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이후 울진군에서 조용히 지내던 그는 8.15 광복 후 울진군 건국준비위원회의 사찰과장으로 활동했다가 1947년 신병으로 사직했다. 그 후 울진군에서 여생을 보내다 1963년 3월 2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안천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