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안창일(安昌一) |
생몰 | 1867년 ~ 1931년 8월 20일 |
출생지 | 평안남도 평원군 검산면 용포리 |
사망지 | 평안남도 평원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안창일은 1867년생이며 평안남도 평원군 검산면 용포리 출신이다. 그는 1920년경 평남 숙천향교의 유사(有司)를 역임했고, 그해 6월 김기한의 권유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하고 평안남도 총지단장에 선임되었다. 이후 대한독립단 단원 이발영(李發永)을 자기 집에 묵게 하고 지단 조직에 관한 행동에 편의를 제공했으며, 8월엔 평원군 유향계(儒鄕稧) 계장 김윤기(金潤起)의 집에서 영유군 지단을 조직하여 김진오(金鎭五)를 지단장, 김찬정(金瓚楨)을 총무감, 이치로(李治魯)를 소모장(召募長)으로 한다는 사령서를 작성, 김윤기의 동생 김동기에게 전달하도록 했다.그러나 이발영이 9월 3일 평남 경찰부에 체포되는 바람에 안창일 역시 평원경찰서에 체포되었고, 9월 19일 취조를 마친 뒤 검사국에 송치되어 7개월간 신문을 받고 법원에 회부되었다. 1921년 3월 15일 평양복심법원은 제령 7호 위반 혐의로 그리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그는 이에 불복해 상고했지만 1921년 4월 1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수년 동안 신장염으로 고생하다가 1931년 8월 20일에 평원굼 검산면 용포리 자택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안창일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