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족보명 | 안찬복(安纘福) |
자 / 호 | 구만(九萬) / 설암(雪菴) |
본관 | 순흥 안씨[1] |
출생 | 1879년 12월 9일[2] |
평안도 안주목 갈화방 용담리 (현 평안남도 문덕군 용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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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45년 1월 9일 |
평안남도 안주군 | |
종교 | 천도교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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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안찬복은 1879년 12월 9일 평안도 안주목 갈화방 용담리(현 평안남도 문덕군 용담리)에서 아버지 안기정(安基禎)과 어머니 당악 김씨(唐岳 金氏) 김광도(金光度)의 딸 사이의 세 아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그는 천도교 신자로, 1919년 3월 3일 안주의 천도교구장 김안실(金安實)이 주도한 안주읍에서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해 5천명의 군중과 함께 서문연당, 공립보통학교, 공립 농업학교, 군청, 평양지방법원 안주지청을 거쳐 군사경찰대로 행진했다. 이후 군중과 함께 군사경찰대를 포위한 뒤 3월 1일의 독립만세시위 때 체포된 김화식(金化湜)· 박의송 등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군사경찰들이 무차별 사격을 가해 많은 사상자를 내자 부득이 해산했고, 이후 군사경찰대에게 체포된 뒤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안주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5년 1월 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안찬복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대한민국의 유일한 천도교 미셜스쿨인 동천고등학교 설립자 안관성이 안찬복의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