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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 죽산 안씨(신) |
출생 | 1924년 5월 8일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용평리 신연동 1002번지 (現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용평리 신연마을)[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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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2015년 12월 9일 (향년 91세) |
전라북도 전주시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1묘역-469호 |
상훈 | 대통령표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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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았다.독립유공자 안성은 그의 동생이다.
2. 생애
1924년 5월 8일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용평리 신연동(현 상전면 용평리 신연마을) 1002번지에서 태어났다. 이후 전주부 완산정(現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완산동)으로 이주했다.전주사범학교 재학 중이던 1944년 같은 학교 학생 백진우(白鎭禹)· 한칠석 등과 비밀결사 독서회를 조직하여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이들은 독서회를 중심으로 국제정세를 분석하면서 일제의 패망을 확신하였고, 아울러 일반인을 대상으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로 결의하였다.
같은 해 10월 경, 이들은 3.1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독립선언서를 작성, 배포할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락원과도 연결되어 태극기와 애국가 가사도 인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계획이 1945년 2월 일본 헌병에 탐지됨으로써 안일은 헌병대 구치소에 6개월여간 수감되어 갖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일본 헌병대의 잔혹한 고문에도 동지들의 비밀을 발설하지 않아 결국 사형선고를 받았다. 1945년 8월 18일 사형 집행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8.15 광복을 맞이하여 이틀 후인 8월 17일 기적적으로 석방되었다.
보상을 받고자 독립운동을 했던게 아니라며 독립유공자 등록을 거부해왔으나, 주변의 지속적인 설득으로 199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았으며, 2015년 12월 9일 사망하였다. 그의 유해는 2015년 12월 11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1묘역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