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안두삼(安斗三) |
본관 | 순흥 안씨 |
생몰 | 1892년 2월 3일 ~ 1966년 10월 5일 |
출생지 | 황해도 장연군 해안면 순계리[1] |
사망지 | 경기도 가평군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안두삼은 1892년 2월 3일 황해도 장연군 해안면 순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22일 해안면 몽금포 장날을 이용해 안승화(安承華), 안교은(安敎殷), 이창근(李昌根), 이종욱(李宗郁)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했다. 그는 이날 백여 명의 시위대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을 벌였다. 시위대가 경찰주재소 앞에 이르자, 일본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많은 사상자가 났고, 시위대는 해산되었다. 일본 경찰은 해산하여 돌아가는 시위군중을 동구 밖까지 쫓아가며 총격을 가하여 부상자는 더 늘어났다.이후 그는 경찰의 대대적인 검속 때 체포되었고, 1919년 10월 16일 고등법원에서 소요죄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6.25 전쟁 때 경기도 가평군으로 피난했고, 1966년 10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안두삼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2012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