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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텍 제국 제 5대 황제
아위소틀 Ahuizotl |
||
<colbgcolor=#363><colcolor=#ddd> 이름 |
아위소틀 Ahuizotl |
|
출생 | 1456년 | |
아즈텍 제국 | ||
사망 | 1502년 | |
아즈텍 제국 | ||
재위 기간 | 아즈텍 틀라토아니 | |
1486년 ~ 1502년 (약 16년) | ||
전임자 | 티소크 | |
후임자 | 아위소틀 | |
부모 |
아버지 :
테소소목 어머니 : 아토토스틀리 |
1. 개요
아우이소틀, 또는 아우이초이틀이라고도 한다.2. 가족 관계
아버지는 테소소목(Tezozomoc)[1]이었고, 어머니는 아토토스틀리였다.[2]3. 치세
1486년, 아즈텍 제국의 제8대 황제(우에이 틀라토아니)로 즉위했다. 그는 뛰어난 명성만큼이나 악명높은 학살의 대가였고, 상상하기조차 힘든 제식을 만든 군주였다. 아위소틀은 제위에 오르자마자 쿠데타를 일으킨 나라들과 전쟁을 벌여 승리했다.이전보다 더욱 격렬해진 그들의 첫 번째 원정 상대는 남부 열대지방으로 테노치티틀란과 텍스코코의 식민지를 그 곳에 두어 귀족이 소비하는 카카오 농장을 개발했고, 만만치 않은 상대인 타라스카족 영토의 경계에는 보초를 세우기도 했다.
이때 텍스코코의 지도자 네사우알피이가 테노치티틀란을 도왔다. 하지만 전쟁 이후에는 테노치티틀란이 텍스코코보다 군사적으로 강해졌다. 꾸준한 확장정책을 펼친 아위소틀은 1491년과 1495년 사이에 태평양 연안지방을 점령했다. 몬테수마 1세때부터 시작된 오하카 지방 정복전쟁에서도 승리하여 멕시코 계곡에는 황금, 염료, 염색 면직물 같은 공물이 풍부하게 지급되었다.
아위소틀이 아즈텍 제국의 국경을 확장하는 동안 멕시코 계곡은 번영을 누렸다. 인구가 증가하자 더 많은 농산물을 생산해야 했기 때문에 큰 관개공사를 벌여 신선한 물을 호수쪽으로 흐르게 했다. 1500년에 홍수가 나서 도시의 집과 정원이 모두 파괴되자, 귀족들은 그 곳을 떠나 버렸다. 그러자 아위소틀은 할 수 없이 동맹자인 텍스코코에 조언을 구했고, 텍스코코의 왕 네사우알피이는 신의 노여움을 풀어야 한다고 했다. 아위소틀은 네사우알피이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계곡의 도시에서 파견된 노동자들을 귀족들에게 분배했고, 귀족들은 노동자들을 감독하며 화려한 궁전과 정원을 건축하도록 했다. 운하 양쪽 둑에는 버드나무와 포플러를 심고 제방을 튼튼하게 쌓았다. 그렇게 해서 테노치티틀란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되었다.
아위초틀은 1502년에 붕어했으며, 그 뒤를 몬테수마 2세가 이었다.
멕시코의 전설에 따르면 패배한 부족의 공주인 아름다운 소치틀을 키잡하려고 했다가 소치틀이 바람(?)을 피우자 그녀를 처형했다고 한다. 소치틀은 그녀가 사랑하는 사제의 신전에 가서 사고를 치기 전까지 아위소틀의 식후 담배를 담당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