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대회에 대한 내용은 2023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문서 참고하십시오.
아시아의 국제 야구 대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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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행 대회 | |||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국가 대항전 / 1954~ |
아시아 윈터 베이스볼 리그 2군 대표팀 / 2012~ |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U-24 대표팀 /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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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진행 대회 | ||||
- | ||||
한일 슈퍼게임 프로야구 올스타 / 1991, 1995, 1999 |
아시아 시리즈 클럽 대항전 / 2005~2008, 2011~2013 |
한국 일본 클럽 대항전 / 2009, 2010 |
한국 대만 클럽 대항전 /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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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시아권 외의 국제 대회는 틀:WBSC 주관 대회 참조. |
<colbgcolor=#aa3326><colcolor=#fff> 명칭 | 영어: Asian Baseball Championship |
국문: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 |
종목 | 야구 |
창설 | 1954년 12월 18일([age(1954-12-18)]주년) |
주관 | 아시아 야구 연맹 |
참가 자격 |
아시아 야구 연맹 소속 회원국 중 1) 전년 대회 상위 입상국 2) 동·서아시안컵 우승국 |
최근 우승국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일본(2023년) |
최다 우승국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일본(20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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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시아 야구 연맹에서 주관하는 국제 야구 대회. 주로 아마추어 대표팀이 참가하는 대회로 1954년에 창설했다. 최다 우승국은 일본이다.아마추어 대표팀이 참가하는 대회이니 만큼 주목도는 그렇게 높지 않으나 올림픽 야구의 아시아 예선을 담당할 때에는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린다. 1999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는 2000 시드니 올림픽의 아시아 예선을 맡았고, 2003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는 2004 아테네 올림픽 야구 아시아 예선이었으며, 2007 타이중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는 2008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예선이었다. 2020 도쿄 올림픽의 경우에도 2019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가 예선을 담당했다. 그리고 보면 알겠지만,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1999년 대회를 제외하고는 대표팀 성적이 부진했다.[1]
그 외에는 IBAF의 야구 월드컵 예선을 겸했다.
2. 역사
1954년 아시아 야구 연맹이 창설된 이후 처음으로 추진한 사업으로, 1회 대회 당시 당시 연맹 가입국이던 필리핀, 한국, 일본, 대만 이상 4개 국가가 참가했다. 초기에는 아시아 야구 연맹 가입국이 돌아가면서 개최하기로 했으나 2회 대회, 3회 대회 개최국으로 예정되었던 일본과 한국이 대회 개최를 포기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1971년 대회에 오스트레일리아가 참가했으며, 1987년 대회에는 괌과 인도가 참가했다. 1993년 대회에는 북한이 참가했다.[2]매년 개최하려 했으나 3회 대회부터는 2년마다 개최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보통 승률을 따졌으나 3회 대회에는 승점제도가 도입, 승리는 1점, 무승부는 0.5점, 패배는 0점으로 계산한 적이 있다.
대회 규정상 9회까지 동점이면 무승부로 처리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했었다. 그러나 2001년 국제야구연맹이 투수 보호를 이유로 알루미늄 배트 사용을 중지하라는 성명을 냈지만 강제 조항이 없어서 나무방망이와 알루미늄방망이가 섞여 사용되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아시아야구선수권 알루미늄·나무배트 맞대결 ‘진풍경’[3]
3. 역대 대회
연도 / 회 | 개최국 | 참가국 수 | 우승 | 준우승 | 3위 | 4위 |
1954 / 1회 | 필리핀 | 4개국 | 필리핀 | 일본 | 대한민국 | 중화민국 |
1955 / 2회 | 필리핀 | 4개국 | 일본 | 중화민국 | 대한민국 | 필리핀 |
1959 / 3회 | 일본 | 4개국 | 일본 | 대한민국 | 중화민국 | 필리핀 |
1962 / 4회 | 중화민국 | 4개국 | 일본 | 대한민국, 중화민국 | 필리핀 | |
1963 / 5회 | 대한민국 | 4개국 | 대한민국 | 일본[4], 중화민국 | 필리핀 | |
1965 / 6회 | 필리핀 | 4개국 | 일본 | 대한민국 | 중화민국 | 필리핀 |
1967 / 7회 | 일본 | 4개국 | 일본 | 대한민국 | 중화민국 | 필리핀 |
1969 / 8회 | 중화민국 | 4개국 | 일본 | 중화민국 | 필리핀 | 대한민국 |
1971 / 9회 | 대한민국 | 5개국 | 대한민국 | 일본 | 필리핀 | 호주 |
1973 / 10회 | 필리핀 | 5개국 | 일본 | 대한민국 | 중화민국 | 필리핀 |
1975 / 11회 | 대한민국 | 5개국 | 대한민국 | 일본 | 호주 | 중화 타이베이 |
1983 / 12회 | 대한민국 | 5개국 | 대한민국, 일본, 중화 타이베이 | 호주 | ||
1985 / 13회 | 호주 | 5개국 | 일본 | 대한민국, 중화 타이베이 | 호주 | |
1987 / 14회 | 일본 | 7개국 | 중화 타이베이 | 일본 | 대한민국 | 괌 |
1989 / 15회 | 대한민국 | 7개국 | 대한민국, 일본, 중화 타이베이 | 중국 | ||
1991 / 16회 | 중국 | 7개국 | 일본 | 중화 타이베이 | 대한민국 | 호주 |
1993 / 17회 | 호주 | 7개국 | 일본 | 대한민국 | 중화 타이베이 | 호주 |
1995 / 18회 | 일본 | 7개국 | 일본 | 대한민국 | 중화 타이베이 | 중국 |
1997 / 19회 | 타이완 | 6개국 | 대한민국 | 일본 | 중화 타이베이 | 중국 |
1999 / 20회 | 대한민국 | 6개국 | 대한민국 | 일본 | 중화 타이베이 | 중국 |
2001 / 21회 | 타이완 | 5개국 | 중화 타이베이 | 대한민국 | 일본 | 필리핀 |
2003 / 22회 | 일본 | 7개국 | 일본 | 중화 타이베이 | 대한민국 | 중국 |
2005 / 23회 | 일본 | 6개국 | 일본 | 중화 타이베이 | 중국 | 대한민국 |
2007 / 24회 | 타이완 | 7개국 | 일본 | 대한민국 | 중화 타이베이 | 필리핀 |
2009 / 25회 | 일본 | 7개국 | 일본 | 중화 타이베이 | 대한민국 | 중국 |
2012 / 26회 | 타이완 | 6개국 | 일본 | 중화 타이베이 | 대한민국 | 중국 |
2015 / 27회 | 타이완 | 6개국 | 대한민국 | 중화 타이베이 | 일본 | 중국 |
2017 / 28회 | 타이완 | 7개국 | 일본 | 중화 타이베이 | 대한민국 | 필리핀 |
2019 / 29회 | 타이완 | 8개국 | 중화 타이베이 | 일본 | 중국 | 대한민국 |
2023 / 30회 | 타이완 | 8개국 | 일본 | 중화 타이베이 | 대한민국 | 필리핀 |
4. 여담
- 2015년 일본과의 경기에서 0-1로 지고 있던 9회말 2사 2루에서 하주석이 대타로 등장하여 우월 끝내기 투런 홈런을 쏘아올려 2-1로 역전승을 거뒀다. 이날 김상수가 선발투수, 이용찬이 구원투수로 등판하여 승리에 일조하였다.
- 2019년 중국과의 3위 결정전에서 6-8로 역전패했다. 8회에 6-2로 앞서고 있었으나 그만 6실점을 하고 만 것. 특히 예선에서도 소형준이 4.1이닝 2실점으로 좋지 못한 투구를 보였고, 이후 끝내기 실책까지 나오며 중국에 4-5로 패했다. 한국 국대가 국제 대회에서 중국에 패한 건 2005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3위 결정전(3-4 패배) 이후 14년 만의 일이었다. 이번 패배로 2020 도쿄 올림픽 개최국 일본을 제외한 상위 2개국이 얻는 도쿄 올림픽 세계 예선 출전권을 놓쳤으며 한국 국대는 2019 프리미어 12에서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권을 힘겹게 따냈으나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했다.
- 2023년 대회 개막전(대만 vs 대한민국 戰)은 타이페이돔 개장 경기였다. 4만석에 달하는 티켓이 30분 만에 매진됐다. 경기 결과는 대만의 4-0 승리였다.
[1]
단 2007년 대회는 좀 특수한 상황에서 대회가 진행되어서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열렸었다. 이 대회에서는 2위까지 두 장이 부여되던 종전 대회와는 달리 최종 1위 팀에게만 출전권이 주어졌다는 점인데, 이유는 바로 한 장을 당시 올림픽 개최국이던 중국이 자동 출전 명목으로 가져간 상태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그 때문에 2위를 하고도 2008년 3월에 열린 대륙간 플레이오프까지 치러야 했을 정도.
[2]
1991년 대회 때에도 참가를 신청했으나 대회 직전 불참을 선언했다.
[3]
단, 1999년 대회와 마찬가지로 프로 선수가 한 명이라도 참가를 하는 대회의 경우에는 무조건 나무배트를 사용하는 것으로 지침이 나온 상태였다.
# 이 때문에 1999년 대회는 압축배트 사용 허가 논란이 있었음에도 전부 나무배트를 사용했다.
[4]
도시대항야구대회 우승팀인 세키스이 야구단이 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