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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1 12:29:36

아리랑 브라더스

아리랑 브라더스
Arirang Brothers
파일:아리랑부라더스.jpg
<colbgcolor=#111111> 그룹명 아리랑 브라더스
Arirang Brothers
장르 포크 음악, 컨트리 뮤직
멤버 서수남리더 (번안, 통기타)
하청일 (바리톤)
천정팔 (베이스, 스네어 드럼)
석우장 (콘트라베이스, 테너)
박창학[탈퇴]
최용삼[탈퇴]
활동 기간 1964년 ~ 1965년
데뷔 1964년 <우리 애인 미스 얌체>
소속사 -
레이블 LA SCALA 레코드
1. 개요2. 활동3. 디스코그라피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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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4년에 데뷔한 포크 그룹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통기타 음반인 <우리 애인 미스 얌체>를 발매했으며, 동요로 유명한 < 동물농장>을 최초로 불렀고[3], 최초의 포크송 창작곡인 <상팔자>를 불렀다. 70년대에 포크송을 본격적으로 유행시켜 흔히 한국 포크송의 대부로 불리는 한대수는 1968년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세시봉 트리오는 1967년 말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니, 포크송이 유행하기 전부터 선구적인 활동을 한 셈이다.

2. 활동

1962년 <5ㆍ16 군사혁명 1주년기념 콩쿨대회>에 출전하였던 한양대학교 학생 서수남, 중앙대학교 학생 하청일, 대한합창단원 박창학, 서울대학교 음대생 최용삼[4]이 결성한 4인조 남성 보컬 그룹에서 기원한다.

하청일의 친구였던 녹음보조기사 이강의 추천으로, 그의 친형이었던 녹음기사 이청은 새로 창립하는 음반사 LA SCALA 레코드의 첫 앨범으로 그들을 데뷔시키기로 한다. 이청은 한국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장르로 음반을 내고자 했는데, 그들이 하모니카와 기타로 구사하는 포크 음악은 그의 목표에 딱 맞았던 것이다. 녹음 과정에서 개인 사정으로 인해 박창학과 최용삼이 탈퇴하고, 성악가인 석우장과 천정팔을 영입하여 첫 앨범인 <우리 애인 미스 얌체>를 발매하게 된다.

그들은 시민회관의 <프린스 쇼> 등 각종 쇼에 출연하며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고, 라디오에도 수 차례 소개되며 이름을 알려 갔다. 그러나 1965년 <워커힐 쇼>[5] 출연을 위한 오디션에서, 187cm의 장신이었던 서수남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쇼 매니저가 '키 큰 친구만 빼면 출연시켜 주겠다'는 비밀 제의를 하자, 그것에 동의한 다른 멤버들이 그 몰래 연습을 하는 모습을 서수남이 보게 되었고, 그것에 실망한 서수남의 탈퇴로 4인조는 해체되었다. 아리랑 브라더스가 이후에 활동하였는지는 불명이지만 이후 활동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사실상 이 시점에 해체되었다 봐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서수남은 그에게 노래를 배우던 현혜정[6]과 결혼하여 함께 음반도 내었으나, 둘의 결혼이 한달을 넘기지 못하고 파국을 맞이하자[7] 홧김에 그 동안의 음반을 불태워버렸고, 이 때 아리랑 브라더스의 음반과 자료 역시 불태워져 그 활동 기록을 찾기 힘들어졌다. 이 때문에 포크 음악의 선두주자적 역할을 한 그룹임에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버린 것이다.

3. 디스코그라피

4. 여담

서수남은 이후 멤버였던 하청일과 듀오를 결성하여 70년대를 풍미한 '서수남과 하청일' 콤비로 활동한다. 이 때 아리랑 브라더스 시절의 히트곡 동물농장을 리메이크하여 노래가 더욱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탈퇴] 녹음 과정에서 탈퇴 [탈퇴] [3] 해리 벨라폰테의 <I Do Adore Her>의 번안곡이다. [4] 롯데칠성음료의 전신인 동방청량음료의 사장의 아들이다. 네 명은 최용삼의 집을 아지트 삼아 노래 연습을 했다고 한다. [5] 1963년 루이 암스트롱의 내한 공연을 시작으로 2012년까지 그랜드 워커힐 서울의 '워커힐 시어터'에서 개최됐던 공연. [6] 원로 가수 현인의 딸이다. [7] 서수남은 회고에서 '현혜정은 일본에 가기 위해 나를 이용했을 뿐이었다. 홧김에 목숨같은 포크, 컨트리 음반과 자료들을 모두 불태워 버렸을 만큼 악몽같은 세월이었다.' 라고 주장하였다. [8] 최초에는 <우리 애인 미스 얌체>를 타이틀로 발매했으나, 너무 실험적인 장르였던 탓에 그렇게 히트를 치지 못했고, 이후에 발매한 버전에서는 <동물농장>으로 표지가 바뀌어 발매되었다. [9] 앨범의 유일한 창작곡으로, 한국 최초의 포크송 창작곡으로 추정되는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