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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6 00:42:24

십계명회복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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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십계명 회복 운동3. 종말론, 그리고 사이비 종교의 결말4. 사건 이후

1. 개요

The Movement for the Restoration of the Ten Commandments of God

1989년 우간다에서 생겨난 사이비 종교.

2. 십계명 회복 운동

1989년, 미션 스쿨 교사 조셉 키브티레(Joseph Kibweteere)와 매춘부 크레도니아 므베린데(Credmonia Mwerinde)가 1989년 창설한 가톨릭 계열 이단 종교다. 당시 우간다의 힘겹고 혼란한 시기를 틈타 사람들을 선동해 "우리가 십계명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기에 이렇게 힘들게 살아간다." 며 신도들을 모았다. 조셉은 크레도니아를 따로 한 동굴로 데려가 바위를 가리키며 "이 바위에 성모 마리아가 현현했다."라고 속이기도 했다. 그렇게 생겨난 종교에 1991년엔 200여 명에 달하는 사람이 모였고, 세월이 지나며 사람은 점점 더 늘었다.

조셉은 "성모에게서 세계의 종말에 대한 계시를 받고 10년간 소통 중이다." 며 자신만의 교리를 전파했다. 그런데 교리 내용은 매우 이상했다. 십계명 중 "거짓말을 하지 마라."를 지킨다며 모든 사람들이 직접 말하지 못하게 했고 오로지 수화로만 소통했다. 거기다 월요일과 금요일엔 식사를 단 한 끼만 먹어야 했고, 성관계 항생제는 물론, 심지어 비누로 씻는 것도 금지였다.

교단에 사람들이 모이며 돈도 많이 모이자 조셉은 카눈구 마을의 농장 부지를 구입하고 교회와 학교, 그리고 밭을 가꾼 뒤 단체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파면된 사제 외 수녀를 끌어들이거나, 다른 신도들을 유혹하는 등 세력을 점점 불려 나갔다.

3. 종말론, 그리고 사이비 종교의 결말

조셉의 세뇌 방식은 점점 이상해지더니 "1999년 12월 31일에 심판의 날이 찾아온다."라고 말하기까지 시작했다. 동시에 심판의 날을 맞이하기 위해 신도들은 그동안 절어둔 모든 재산을 교단에 내라 명령했다. 신도들은 겁에 질려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12월 31일 날 아무 일도 없었고, 전세계는 새천년을 맞이하게 된다. 교주의 말과 다르게 별일 없자 신도들은 당황했다. 그동안 낸 돈을 돌려달라 말하는 신도들도, 믿음을 잃고 교회를 떠난 신도들도 나왔다. 신도가 너무 떠나 교회에 재정 문제가 생길 지경에 이르자 조셉은 당황했다.

이윽고 조셉은 2000년 3월 17일에 진짜 종말이 있을 테니 교회로 모이라 명령했다. 그나마 남아있던 신도들은 이를 믿었다.

2000년 3월 17일, 신도들은 교회에 모였다. 신도들이 교회 안에 들어갔을 때 본 것은 휘발유통 여러 개, 그리고 합판으로 막힌 창문이었다. 얼마 안 가 밖에서 누군가 문을 막은 뒤 불을 질렀다. 불은 거세다 못해 폭발까지 일어날 정도였고, 인근 마을에서도 폭발음을 들을 정도였다.

불이 꺼졌을 때, 안에 있던 사람 540여 명은 전원 사망했다. 그러나 한 10대 신도가 방화 발생 전에 교회를 빠져나가 이 참사의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

4. 사건 이후

충격은 마을 전체에 몇 달간 지속됐다. 갑작스러운 대량 살인에, 당시 살 타는 냄새가 마을 전체로 퍼져 마을 사람들은 PTSD에 시달리며 한동안 고기를 먹지 못했을 정도였다.

경찰들은 교단을 더 조사하다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발견한다. 교단의 이러한 살인 행위는 처음이 아니었다. 교단 소유 건물의 숨겨진 구덩이 속에 155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들은 절단되거나 불에 타고, 칼에 찔린 흔적이 있는 등 고문에 의한 살인일 가능성이 높았다. 다른 농장에서도 시신 81구가 발견됐다. 마찬가지로 고문 흔적이 발견됐다.

우간다 정부에선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 "사고 당일 못과 망치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봤다." 등을 토대로 조셉이 일부러 이런 사건을 계획적으로 저지르고 도주했다고 판단해 조셉과 크레도니아를 비롯한 교단 측 인물들에게 수배령을 내렸다. 하지만 조셉은 잡히지 않았다. 2014년 말라위에서 목격됐다는 제보가 있었으나 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