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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2 21:51:36

김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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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A2D5B><colcolor=#fbe673>
신라 추존 국왕
의흥왕 | 懿興王
본관 경주 김씨
인경(仁慶) / 관◯(官◯)[1]
부친 불명
아들 장남 - 김억렴
차남 - 김효종
종교 불교
시호 의흥대왕(懿興大王)
골품 진골(真骨)

1. 개요2. 기록3. 생애

[clearfix]

1. 개요

신라 후기의 왕족이자 추존 국왕. 본인은 생전에 왕에 오른 적이 없었고, 의흥대왕(懿興大王)이란 시호는 손자인 신라 제56대 경순왕에 의해서 왕으로 추존된 것이다.

2. 기록

그의 시호는 삼국유사 왕력편에서, 그의 이름은 삼국사기 효녀 지은 열전에서 찾을 수 있다.
第五十六 敬順王 (金氏 (名)傅 父孝宗伊干 追封神興大王 祖官(柔)[2] 角干 (追)封懿興大王 母桂娥 (憲)康王之(女))
제56 경순왕 (김씨이며 이름은 부이다. 아버지는 효종 이간으로 신흥대왕으로 추봉되었다. 조부는 관(유) 각간이니 의흥대왕으로 추봉되었고 어머니는 계아로 헌강왕의 딸이다.)
『삼국유사』 왕력

孝宗 時第三宰相舒發翰仁慶子 少名化達
효종은 당시 제3재상 서발한 인경의 아들로 어려서의 이름은 화달이었다.
『삼국사기』 효녀 지은 열전
삼국유사의 각간이나 삼국사기의 서발한은 신라 17관등 중 1관등 이벌찬의 다른 표기다. 합쳐보면 이름은 '관유' 또는 '인경', 시호는 '의흥왕'.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의 이름이 서로 다른데 관유는 아명이고 인(仁)경은 유교식 미칭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세워진 신라경순왕전비나 경주 김씨 족보에는 김실홍(金實虹)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역사적 근거는 없다. 또한 김인경의 아버지가 김민공, 조부가 김안이라고 하는데 경순왕의 사촌동생의 현손자인 김한충을 태종 무열왕의 13세손이라고 한 당대의 금석문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3. 생애

신라의 46대 국왕인 문성왕의 외손자 또는 (외)손녀사위이다.[3] 경문왕, 김위홍, 김단의와는 사촌지간. 정확한 생몰년대는 알 수 없지만 진성여왕 초기인 888년 집사시랑을 지냈고 그 뒤에는 제3재상[4]으로서 서발한이 되어 후삼국시대의 난세를 살았다. 아들로는 후에 고려를 개창하는 왕건의 장인이 되는 김억렴과, 효녀 지은 설화로 유명한 인물이자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버지 화랑 김효종이 있었다.

본인이 어떤 생애를 살았는지는 기록이 부족해 정확히 알 수 없다. 비록 문성왕의 손자이긴 했지만 정작 문성왕이 사망하자 즉위한 것은 문성왕의 숙부이자 헌안왕이었기 때문에 방계 왕족으로 생을 마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손자가 견훤 때문에 팔자에도 없이 즉위해 56대 경순왕이 되었고,[5] 그의 손녀는 경순왕의 천거로 고려태조 왕건과 결혼해 신성왕후가 되었고, 이후 고려 왕위는 왕위쟁탈전 끝에 신성왕후의 손자 현종부터 대대로 이어지게 된다. 자손들이 신라와 고려의 왕을 다 해 봤다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인물.


[1] 글자가 결락되어 판독불가 [2] 원문에는 한 글자가 결락되어 있는데, 이 관◯은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에 기록된 888년( 진성여왕 대)의 집사시랑 관유(寬柔)와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삼국사절요에 따르면 아들인 효종 진성여왕 말기인 897년 즈음에 계아와 혼인하였으므로 김관유가 이때까지 시랑직을 유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3] 남계 후손일 가능성은 당대의 금석문에 의해 부정된다. 신라경순왕전비에 따르면 문성왕 김안—김민공—김인경으로 계보가 이어지는데, 단언컨대 이는 불가능하다. 문성왕이 842년 3월에 김양의 딸과 혼인했으므로 첫 아이인 김안이 842년생이라고 가정할 경우 15살 성인이 되자마자 김민공을 낳았다면 김민공은 857년생이고, 똑같이 15살 성인이 되자마자 김인경을 낳았다면 김인경은 872년생인데, 김인경이 성인이 되자마자 김효종을 낳았다면 김효종은 최소 887년생이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효녀 지은 설화에서 효종의 인품에 감동한 진성여왕이 본인의 조카, 즉 헌강왕의 딸을 효종과 혼인시키는데 이 진성여왕이 897년에 승하했다는 것. 진성여왕의 치세에 혼인을 했다는 것은 확실하므로 김효종이 887년생일 수 없다. 신라경순왕전비는 조선 후기인 18세기에나 가서야 문중에 의해 지어진 것이므로, 사료적 가치는 다른 족보와 다를 바 없는 수준이다. [4] 삼국사기, 삼국유사, 속일본기, 그리고 당대 금석문 등을 대조하면 삼국사기의 상대등은 제2재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온다. 따라서 제3재상은 이 바로 다음 순위인 시중을 뜻할 가능성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5] 이미 신덕왕부터 박씨 왕조가 3대에 걸쳐 이어졌기 때문에, 927년 견훤의 사변이 아니었더라면 경명왕 경애왕의 동생 박효렴이 신라의 왕위를 이었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