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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7-22 22:01:09

시가 요시오(정치인)

<colbgcolor=#DB001C> 일본국 제22, 24, 27-30대 중의원 의원
시가 요시오
[ruby(志賀 義雄,ruby=しが よしお)] | Yoshio Shiga
파일:시가 요시오 (정치인).jpg
출생 <colbgcolor=#ffffff,#191919> 1901년 1월 12일
야마구치현 하기시
사망 1989년 3월 6일 (향년 88세)
도쿄도
학력 도쿄제국대학
정당 (1922년 - 1964년)
지역구 (구) 오사카 1구
의원 선수 6선 (중의원)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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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정치인. 일본공산당 중앙의원을 지냈고 중의원 의원에 6번 당선되었다.

2. 생애

야마구치 현 하기 시 출생으로, 도쿄제국대학 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일본공산당에 입당한다. 이후 치안유지법으로 투옥되나 전향을 거부하고 전후까지 옥살이를 하며, 1945년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명령으로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전후 토쿠다 큐이치, 노사카 산조 등과 함께 일본공산당의 재건을 주도하였고, 1946년 치러진 제2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당선되면서 일본공산당이 배출한 최초의 중의원이 되었다. 1947년 제23회 총선에서는 낙선하나, 1949년 제24회 총선에서 당선되면서 재선 의원이 되었다. 하지만 1년뒤인 1950년에 좌파에 대한 GHQ의 대대적인 공직 추방의 대상이 되어 중의원직을 했다. 다만 다른 공산당 의원들과는 달리, 중국으로 피신하지 않고 일본에 남아있었다.

이후, 일본공산당이 무장투쟁론을 포기한 후 1955년 제27회 총선에 출마해 다시 중의원직에 복귀한다. 이후 공산당 내에서 비교적 온건 노선을 견지했고, 공산당이 중국 등 다른 공산국가의 반대에 따라 1964년 부분적 핵확산 금지조약에 반대했지만 이에 찬성표를 던지고 이후 공산당에서 제명된다. 이후 함께 제명된 의원들과 '일본의 소리'를 조직하여 활동하나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였고, 1967년 제31회 총선에서 패배했다. 1989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