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북한의 정치인.2. 생애
1923년 9월 10일, 평양시 강남군 류포리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고학으로 중학교 졸업 이후 1941년 5월, 강남군에서 교원으로 일하였다.해방 이후 1946년 2월, 민청 강남군 해압면 위원장에 선출, 1946년 9월, 해압면 당위원장에 임명되어 청년사업을 조직하였다. 1950년 6월, 조선로동당 문화선전성 당위원장에 임명, 전시 사업을 담당하였으며 1951년 9월, 로동성 부부장, 1953년 9월, 평안남도 당위원회 지도원에 임명되어 과장까지 승진하였다. 1955년 9월, 순안군 당위원장에 임명되어 농업분야에 종사했고 1960년 5월, 평남 선전부장을 지냈다고 한다.
1967년 11월, 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1967년 12월 평남 농업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70년 3월 3일, 주 알바니아 대사에 임명되었으며 1972년 12월, 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1973년 7월 26일, 알바니아 총리 메흐메트 셰후와 작별방문한 후 귀국했다. 후임 대사로 12월 26일, 리규을이 임명되었다. 1974년 2월, 적십자회 부위원장 자격으로 루마니아에 다녀왔다. 이후 캄보디아 대사를 거쳐 1977년 3월 24일, 나이지리아 대사에 임명되었으며 1979년 1월에 귀국했다.
1979년 2월 평남 행정위원장에 임명,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중앙검사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1982년 6월, 평남 인민위원장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1988년 9월, 평남 농촌경리위원회 고문위원장에 임명되면서 은퇴단계에 접어들었고 조용히 살다가 1991년 6월 21일 1시 15분에 중앙검사위원으로 재직하던 중 67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당중앙위원회는 부고를 발표, "동지는 오랜 기간 당, 국가 기관과 대외사업부문의 중요직책에 사업하면서 당의 로선과 정책을 관철하기 위하여 모든 지헤와 힘을 바쳤다. 동지는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확고히 세우고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당과 수령에게 무한히 충실하였다."라고 그런대로 좋게 말해주었다.
이후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평안남도인민위원회 상임부위원장 직함으로 안장되었다.
3. 참고문헌
- 조선대백과사전 14권.
- (最新)北韓人名辭典(서울: 北韓硏究所,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