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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03:38:00

소나갈질지



蘇那曷叱智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기록3. 관련 연구

1. 개요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임나국 혹은 의부가라국(意富加羅國)[1]의 인물.

일본서기에 의하면 기원전 1세기에 사신으로 일본을 방문했다고 하나 실존성이 의심되는 인물로, 신라계 도래인 천일창 설화와 탁순국왕 아리사등의 일화를 섞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소나갈(蘇那曷: 소노가)‘는 이마에 뿔이 난 사람이라는 뜻으로 고깔 모양의 관모를 쓴 변한, 진한 지역의 수장을 뜻하는 말로 보기 때문. 아리사등과 등장하는 연대가 틀린데 그 이유는 아리사등의 후손들이 일본에서 호족이 되면서 그 후손들이 이전 가야계 인물들을 모두 동일시하여 재사를 지냈기 때문이다.

동북아역사재단 역주에 의하면 소나(蘇那)를 금관, 갈질지(曷叱知)를 왕으로 해석해 금관국왕 혹은 금국의 읍장으로 보는 설도 있다고 한다. #

2. 기록

65년 가을 7월 任那國이 소나갈질지(蘇那曷叱知)를 보내어 조공하였다. 임나(任那)는 筑紫國에서 2,000여 里 떨어져 있고, 북쪽은 바다로 막혀 있으며 계림(鷄林)의 서남쪽에 있다.
일본서기 권5 御間城入彦五十瓊殖天皇 崇神天皇 65년 7월(기원전 33년) 기사
이 해에 임나인 소나갈질지(蘇那曷叱智)가 “나라에 돌아가고 싶다.”고 청하였다. 아마도 선황의 시대에 알현하러 와서 아직 돌아가지 않았던 것인가? 그래서 소나갈질지에게 융숭하게 상을 주었다. 아울러 붉은 비단 1백 필을 주어 임나왕(任那王)에게 하사하였다.
그러나 신라인이 길을 막아 이것을 빼앗아버렸다.양국의 원한이 이때 처음으로 생겼다. [어떤 책(一)에서 말하기를 어간성 천황[2]의 시대에 이마에 뿔이 있는 사람이 있어 배를 타고 와서 월국(越國;코시노쿠니)의 사반포(笥飯浦;케히노우라)에 정박하였다. 그러므로 그곳을 각록(角鹿;츠누가)이라 이름하였다.
“어느 나라 사람인가?”라고 묻자 대답하기를 “의부가라국왕(意富加羅國王)의 아들로 이름은 도노아아라사등(都怒我阿羅斯等;츠누가아라시토)이고 다른 이름은 우사기아리질지간기(于斯岐阿利叱智干岐)라고 한다. 일본국에 성황(聖皇)이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귀화하였다.
혈문(穴門;아나토)에 도착했을 때에 그 나라에 사람이 있었다. 이름은 이도도비고(伊都都比古;이츠츠히코)였다. 나에게 ‘나는 곧 이 나라의 왕이다. 나를 제외하고 또 다른 왕은 없다. 그러므로 다른 곳으로 가지 말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내가 그 사람됨을 살펴보니 틀림없이 왕이 아님을 알고 즉시 다시 돌아왔다. 길을 알지 못해서 섬과 포구에 계속 머물렀다. 북해로부터 돌아와 출운국(出雲國;이즈모)을 거쳐 여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때 천황이 죽었다. 그대로 머물러 활목천황을 섬겨 3년이 경과하였다. 천황이 듣고 도노아아라사등에게 “너의 나라에 돌아가고 싶은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러고 싶다.”라고 대답하였다. 천황이 아라사등을 불러 “네가 길을 헤매지 않고 빨리 왔더라면 선황을 만나고 섬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너의 본국의 이름을 고쳐서 어간성천황의 이름을 따라 즉시 너의 국명으로 삼아라.”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붉은 비단을 아라사등에게 주어 본토에 돌아가게 하였다. 그 국호를 미마나국(彌摩那國;미마나노쿠니)이라 함은 이것이 연유가 된 것이다.
아라사등은 받은 붉은 비단을 자기 나라의 군부(郡府)에 보관하여 두었다. 신라인이 그것을 듣고 군사를 일으켜 와서 붉은 비단을 모두 빼앗았다. 이것이 두 나라가 서로 원망하게 된 시초라고 한다. (어떤 책(一)에서 말하기를 ) 처음에 도노아아라사등이 본국에 있을 때 황우(黃牛)에 농기구를 싣고 시골로 갔다.
그런데 황우가 갑자기 없어져 그 자취를 찾아 갔다. 흔적은 어떤 군아(郡衙) 가운데에 있었다. 한 노인이 “그대가 찾는 소는 이 군아에 들어갔다. 그런데 군공(郡公)들이 ‘소가 짊어지고 있는 물건으로 보면 틀림없이 잡아먹으려는 것이다. 만약 그 주인이 찾아오면 물건으로 보상하면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잡아서 먹어버렸다. 만일에 ‘소 값으로 어떤 물건을 얻고자 하는가?’라고 물으면 재물을 바라지 말고, ‘군내(郡內)에서 제사를 지내는 신을 달라’고 하시오.”라고 말하였다.
얼마 후에 군공들이 와서 “소 값으로 어떤 물건을 얻고자 하는가?”라고 물었다. 노인이 말한 대로 대답하였다. 그들이 제사지내는 신은 흰 돌이어서 흰 돌을 소 값으로 받았다. 그것을 가지고 와서 침실 속에 두자 그 신석(神石)이 아름다운 소녀로 변했다. 아라사등은 몹시 좋아하여 교합(交合)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아라사등이 다른 곳에 간 사이에 소녀가 갑자기 사라졌다. 아라사등은 크게 놀라 자기 처에게 “소녀는 어디로 갔는가?”라고 물었다. “동쪽으로 갔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곧 찾아서 멀리 바다를 건너 일본국으로 들어왔다. 찾는 소녀는 난파(難波;나니하)에 와서 비매어증사(比賣語曾社;히메고소노야시로)의 신이 되었다. 또 풍국(豐國;토요쿠니)의 국전군(國前郡;미치노쿠치노코호리)에 이르러 다시 비매어증사의 신이 되었다. 두 곳에서 나란히 제사지낸다고 하였다.]
일본서기 권6 수인 2년(기원전 28년) 기사 동북아역사재단 역주

3. 관련 연구

연민수, 변진시대 가락국의 성장과 외교, 2015, 한일관계사연구
연민수, 新撰姓氏錄』의 鹽乘津彦命 설화와 吉田連, 2019, 한일관계사 연구
[1] 금관국 또는 반파국으로 추정된다. [2] 숭신천황의 다른 호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