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02:50

설제(촉한)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후한 말 삼국시대 조위의 인물에 대한 내용은 설제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薛齊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후한 말과 삼국시대 촉한의 인물이며 는 이보(夷甫)로 설란의 손자, 설영의 아들. 사례 하동군 사람.

열전에 기록된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당대 사료에서는 찾아볼 수 없어 설제의 존재 자체를 알 수 없었지만, 《 신당서 재상세계표에서 그의 할아버지인 설란의 이력을 설명하면서 그의 아들이라는 것과 함께 관직 등이 언급되어 존재가 규명되었다.

2. 생애

설영 유비를 따라 익주로 수행한 것으로 볼 때 적어도 유비가 익주를 점령하기 이전에 임관했을 것으로 보이며, 상세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파군 태수, 촉군 태수 등을 지냈다.

파군 태수를 한 시기에 대해서는 유비 시기에 파군태수로 임명된 사람이 기록상으로는 비관이 보이지만 물러난 시기가 나오지 않았으며, 유선 시기에는 보광, 장예, 동화, 양옹, 유은 등이 임명된 기록이 보이지만 관직이 옮겨진 시기를 알 수 없다. 촉군 태수를 한 시기는 유선 시기에 여예 제갈량 사후에 임명된 것으로 볼 때 적어도 여예보다는 늦게 촉군태수가 된 것으로 보인다.

멸망하자 5천 호를 이끌고 위나라 투항해 위나라에서 광록대부를 지내 하동군 분음현에 살아 그 세가를 촉설(蜀薛)이라고 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50
, 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50 ( 이전 역사)
문서의 r (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