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동 일대에 있던 구 국군보안사령부 소속 대공분실. 서빙고역 맞은편에 있었으나 현재는 철거되고 대원서빙고아파트가 들어서있다.서빙고 분실은 1968년 육군보안사령부 창설 이후 방첩활동을 위해 초대 보안사령관 김재규가 비밀리에 만든 취조실이었다. 간첩, 반정부 인사들을 비롯한, 국가 체제에 위협이 되는 인물들을 데리고 온 후 수사하는 것이 본 기능이었던 것.
그러나 실상은 그저 군사독재 시기에 군부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행되던 각종 공작과 수사의 본산이었다. 특히 멀쩡히 걸어갔던 사람도 이 곳을 다녀오면 심하게 고문당해 다치거나 평생 불구부터 끝장나면 그대로 고문 증거 은폐를 위해 시신을 화장한 한 줌의 재가 되어 나오는 일도 허다할 정도로 악명 높은 공포의 현장, 즉 악몽의 비밀 고문실이었다.
당장 10.26 사건의 주범이자 이 시설을 만든 장본인 김재규마저도 자신이 만든 분실에서 어떠한 특혜도 없이 고문 및 강압수사를 받아야했으며, 특히 1979년 12.12 군사반란 이후에는 더더욱 변질되어 제5공화국 때부터 1990년까지 각계각층 민주·개혁 세력 인사 및 반체제 인사들을 고문, 협박, 회유하는 장소가 되고 말았다. 사실상 전두환이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인물들을 잡아 고문한 고문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 군사정권의 폭압 통치를 상징하던 이곳은 1990년 10월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의 여파로 폐쇄됐다.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후 기무사 소유의 이 부지는 10여년간 유휴지로 방치되다 2004년 국군 기무사 요원들을 위한 군인 아파트인 대원 서빙고 아파트가 지어졌다. 2018년 서울시가 아파트 입구 바닥에 '빙고호텔 터' 라는 이름으로 서빙고 분실의 역사를 알리는 동판을 매설했다.
2. "빙고호텔"로 악명 높았던 그곳
이 곳을 일컫는 가장 유명한 별칭은 바로 빙고호텔이다. 당장 서빙고 분실 건물 자체는 주변이 높게 자란 포플러[1]로 둘러싸여 공중에서 내려다보지 않고서는 어떤 위치에서도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위장되어 있었다. 따라서 언뜻 보면 그냥 시내에 있는, 정원이 딸린 호텔로도 보일 수 있었다. 또한 분실 건물 내에 있는 고문실 역시 별칭이 있었는데, 거물급 인사를 취조할 때는 VIP실이라 불리는 공간에서 수사를 하는 한편 적절하게 회유도 했기에 마치 호텔의 객실 등급 분류처럼 고문실에도 등급이 매겨졌던 것이다.사실 보안사령부는 서빙고 분실 이외에도 장지동, 거여동 등에 대공 수사를 위한 분실을 더 두었었다. 한림여상 옆에 있었던 장지동 분실에는 일명 엘리베이터실이라고 불리던 고문실이 있었던 것으로 유명했다.
3. 매체에서
- 제4공화국에서도 언급되는데 10.26 사건 주범 김재규가 보안사 정동 분실[2][3] 로 처음엔 연행됐다가 서빙고 분실로 옮겨지는 장면이 나왔고, 서빙고 분실 개소 당일 축하연을 위한 음식을 모조리 다 뒤엎으며 재공사를 지시했다는 나레이션이 나온다.
- 영화 서울의 봄에서 김동규가 고문받는 장소로 초반에 지나가며, 중반부 쿠데타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보안사 인원들이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을 납치할 때 녹음 가능한 곳으로 모시겠다고 말하는데 그게 여기를 가리키는 말이다.[4]
[1]
미루나무.
[2]
사실 서빙고 분실이 유명하긴 하지만
보안분실 자체는 지금에서도 역시 여러 곳이 존재해오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 전부 다 밝혀지지 않은 이유는 정보수사,
방첩업무 등을 위해 지금까지도 필수로 오래도록 사용중인 곳이 있기 때문이다.
[3]
정동 분실 자리에는 현재
사랑의 열매가 자리잡았다.
[4]
"방첩부대장을 했던 내가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를 줄 알아?"라는 대사가 나온 이유이다. 즉, "녹음을 하러 가?" = "나를 고문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