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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0 08:40:25

서기원(1937)

파일:동양방송 로고_White.svg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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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서기원
徐箕源
파일:서기원 방송인.jpg
이름 서기원
출생 1937년 7월 4일
경기도 오산시
사망 2023년 7월 27일 (향년 86세)
학력 오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심리학 / 학사)
직업 방송인
가족 배우자 유지숙, 슬하 1남 서동진
약력 TBC 아나운서
KBS 아나운서
스포츠 TV 축구전문 캐스터
베스트일레븐 칼럼니스트
대학축구연맹 자문위원

1. 개요2. 생애3.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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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방송인.

2. 생애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1964년 동양방송(TBC) 1기 아나운서로 입사해 방송에 입문했다. 이후 TBC와 KBS를 거치며 아나운서로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특히 축구 중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가 축구와 인연을 맺게 된 데는 엉뚱하게도 가봉의 봉고 대통령이 있다. 1974년 육영수가 사망한 다음해 방한한 봉고 대통령은 관례에 따라 국립묘지의 육영수 묘지를 참배했는데 마침 이 중계를 그가 맡았다. 그는 방송 전 “봉고의 가봉 대통령이 아니라, 가봉의 봉고 대통령. 이것만 헷갈리지 않으면 되겠군”이라고 되뇌이며 방송에 들어갔다. “가봉의 봉고 대통령”에 신경을 쓴 탓에 “육영수 ‘여사’의 묘소”가 아니라 “육영수 묘소”라는 당시로써는 매우 불경한 표현을 반복하고 말았다. 때가 때인지라 어김없이 중앙정보부에서 조치가 취해졌다. 겨우 3개월 방송금지 처분으로 무마되긴 했지만 그 뒤로 그는 이제 스포츠 중계만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축구 전문 캐스터로의 시작을 알린 그는 1980년 언론통폐합 이후로 한국방송 스포츠 중계의 주축으로 종목을 넘나들며 수많은 경기 역시도 중계를 맡으며 활약했다. 특히 라디오 시대와 TV 시대를 이어 ‘스포츠 전문 캐스터’라는 영역을 개척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는 축구와 육상을 주로 중계하며 이름을 알렸지만 마라톤, 골프, 양궁 등 여러 종목을 국내 최초로 중계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1988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을 비롯해 여타 올림픽, 아시안게임, 월드컵 등 굵직한 국제대회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중계한 올림픽 경기가 바로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육상 남자 마라톤에서 이봉주가 불과 3초 차로 금메달을 놓치는 순간이었다. 은퇴 이후엔 스포츠 칼럼니스트이자 종목별 자문위원, 강사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3. 사망

2023년 7월 27일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8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