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000> 상산 전투 常山之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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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 | 194년 | |
장소 | 기주(冀州) 상산국(常山國)[1] | |
원인 | 원소와 흑산적의 패권다툼 | |
교전 | 흑산적 | 원소 |
황제 | 한 황제 유협 | |
지휘관 | 평난중랑장 장연 | 기주목 원소 |
참전 무장 | - |
분위장군ㆍ의동삼사
여포[2] 성렴 위월 |
병력 | 1만 ~ 수만[3] | 불명 |
피해 | 피해 규모 불명 | 피해 규모 불명 |
결과 | 흑산적의 패배 | |
영향 | 흑산적의 위축, 원소의 하북 장악 단초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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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4년, 흑산적의 두령 장연이 기주목 원소 및 원소의 객장 여포와 상산에서 벌인 전투.2. 정사
2.1. 발단
원소가 공손찬과의 싸움으로 부재중이던 193년 3월, 위군(魏郡)의 불만세력들은 장연과 연계해 반란을 일으켰다. 휘하 두령인 우독을 중심으로 흑산의 10개 조직이 가담했고, 이에 이군 내의 반란군이 내응하면서 위군태수 율성을 죽여 기주목의 관부가 있는 업을 기습 점령하는 데 성공했으며, 장안 조정에서 임명한 기주목인 호수를 앞세워 기주를 통치하려 했다. 이때 기주의 여러 관리들은 물론 원소의 일가족도 모두 포로로 붙잡혔으며, 한 차례 원소에게 패했던 공손찬 또한 휴전 2개월 만에 이를 깨고 재차 병력을 보내 침공하게 된다. 그러던 중 업을 점령하고 있던 10명의 흑산적 두령들 사이에서도 분열이 일어나서 도승이라는 자가 휘하의 군사들을 이끌고 원소에게 붙었다. 이때 도승은 원소의 가족과 기주의 관리들을 구출하고 직접 호위하며 척구(斥口)까지 호송했는데, 원소도 이에 호응하여 척구로 향해 도승과 합류한다. 같은 해 6월부터 원소는 흑산적에 대한 반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위군의 북부에 있는 녹장산에서 우독을 5일동안 포위 공격하여 1만 명을 죽였고 우독과 호수 등을 참수하고는 업을 탈환한 뒤 좌자장팔의 무리를 전멸시켰으며 나머지 일곱 두령들도 모두 격파하여 위군 내의 흑산적을 완전히 박멸시킨다.이후로도 흑산적과 원소는 계속 교전을 이어나갔는데, 이때 중앙의 권력다툼에서 밀려난 여포가 원소에게 귀의해온다. 여포를 얻은 원소는 곧 여포를 부장으로 삼아 직접 상산으로 출진하여 흑산적의 본대라 할 수 있는 장연의 군대와 격돌하게 된다.
2.2. 전개
재미있게도 장연과 여포의 별명은 둘 다 비장(飛將)으로 똑같았다. 여포는 애마인 적토마를 타고서는 측근인 성렴, 위월과 함께 장연의 군대를 공격한다. 여포가 돌진하자, 장연군은 예봉이 꺾이고, 마침내 격파되고 만다. 진정한 비장은 여포였던 것이다. 그동안 승승장구하며 기세를 올리던 원소군에 여포의 맹활약까지 더해져 장연은 많은 군사를 잃었다. 그러나 원소는 유리한 상황에서 10일간의 회전을 벌였지만, 이전부터의 연전으로 원소군의 피로가 극에 달했기 때문에 장연에게 결정적인 공세를 가하지 못하고 양측은 서로 군사를 물렸다고 한다.3. 이후
이 전투를 기점으로 장연을 비롯한 흑산적은 예전의 위세를 되찾지 못하고 서서히 힘을 잃어가게 된다. 원소전 주석에 따르면 상산전투에서 장연이 병력을 많이 잃긴 했지만 결정적인 수준까지는 아니었고, 이후로도 세력을 그럭저럭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로나 194년 무렵부터 동맹관계에 있던 흉노, 오환 등이 슬슬 원소에게 붙기 시작하는 걸 보면 이후로도 원소에게 군사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집요한 공격을 받으며 몰락하기 시작한 듯 하다.여포 역시도 입지에 문제가 생기고 만다. 공적을 세워 원소군 안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었을테지만, 여포는 공적을 믿고 방자하게 행동하며 마음대로 사병을 늘리고 원소의 영토에서 약탈을 일삼았다. 게다가 자신은 장안 조정에서 삼공에 준하는 관직(의동삼사)을 받았다으므로 원소가 임의로 내리는 관직을 받은 원소의 제장들을 무시하기까지 한다. 원소는 장안 조정을 동탁의 괴뢰정권으로 규정했으며 이전 소제 정권의 실세였던 자신에게 그 정통성이 어느 정도 이어짐을 자처하고 있었는데, 여포는 자신이 장안 조정에서 받은 관직이므로 정품이고, 원소가 상표해서 내린 관직은 가짜(혹은 임시)라며 얕보는 태도를 취했는데, 이는 원소의 자존심뿐만 아니라 원소가 지니는 권위의 정통성을 제대로 긁는 행위였다. 원소가 직접 내린 관직을 멸시한 행위는 원소의 정통성을 뒤흔들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원소에게 관직을 내릴 권한은 없었기 때문이다. 원소의 행위는 정통성이 아니라 역모죄로 몰아가도 할말이 없을 일이다. 결국 이러한 행동들이 화근이 되어 원소 휘하에서 숙청되고, 암살위기까지 겪은 이후, 기주에서 쫓겨나게 된다.
4. 평가
장연과 여포는 비장이라는 타이틀을 두고 싸웠으나, 결과를 보면 여포가 싱겁게 승리하였다. 이는 장연이 이끄는 군대는 장연 개인의 용맹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머릿수에 의지하는 도적 출신 비정규군인 반면, 여포와 그를 따랐을 직속부대는 나름 중앙에서까지 놀아본 정규군 출신인만큼 병력의 질에서 차이가 났다. 지휘관의 역량 역시 차이가 났는데, 유목 민족과 맞닿은 변방인 병주에서 복무하다가 중앙 조정에까지 진출해 관직을 얻은 정규군 출신인만큼 체계적인 군사 훈련을 받은 여포와 그렇지 못한 장연의 역량 차이는 심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