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
곽재구가 쓴 시. 1981년에 중앙일보 신춘문예지로 등단한 작품이다.
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
1.1. 여담
- 시인이 20살 때 느꼈던 감정을 표현한 시라고 한다.
- 제목 '사평역에서'의 사평역(沙平驛)은 시인이 지어낸 역 이름이다. 티비 프로그램에서 '현실에서는 그 역의 이름이 있어서는 안되고[1] '사평'이라는 지명이 흔하기 때문에 그러한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말했다. #
- 곽재구는 타고르의 아이스크림 같이 부드러운 시가 자신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 시인이 남광주역에서 영감을 얻어 지은 시이다. 실제로 곽재구 시인은 광주광역시에 살면서 대학생 때 5.18 민주화운동을 경험하기도 했으며 광주서석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적도 있다. #
2. 1번 문단의 시를 바탕으로 한 임철우의 단편소설 〈사평역〉
임철우가 1983년 가을에 <민족과 문학>을 통해 발표한 소설이다. 1번 문단의 시로부터 영감을 받아 집필하였다고 하며 실제로 내용도 어느 정도 일치한다. 어느 눈 내리는 겨울날, 눈 때문에 기약없이 연착되는 막차를 타기 위해 사평역에 모인 사람들의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에서는 인물들의 심리나 행적 등이 그다지 자세히 묘사되지 않지만 소설에서는 꽤나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KBS TV문학관에서 1985년 12월 21일에 단막극으로 영상화해서 방영하였다. 보러가기2.1. 등장인물
- 역장: 사평역의 나이 든 역장으로 1인 근무를 하고 있다. 본래 장씨라는 사람과 함께 근무하였으나 아기가 태어나려고 해서 병원에 가는 바람에 혼자 근무하게 되었다. 이 역에서 오래 근무해서인지 역 주변 마을에 대해서 상당히 잘 알고 있다. 난로에 톱밥을 채우거나 대합실에서 기다리는 승객들에게 말을 거는 등 극의 진행을 도우는 역할을 한다. 막차가 떠난 후 받은 전화에서 동료 장씨가 아빠가 되었다는 소식을 받는 것으로 극이 끝난다.
- 청년: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청년으로 사평이 고향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고[2], 고향으로 내려오지만 차마 어머니께 자신이 퇴학당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다. 사평에서 유일하게 대학에 합격한 청년이라 역장도 청년을 알아본다. 막차가 도착하자 마지막으로 열차를 타고 떠난다. TV문학관에서는 김영철이 연기했고, 극 후반부에 1번 문단의 시를 읆는다.
- 사내: 7년형을 받고 옥살이를 하다가 최근에 출소한 전과자다. 6.25때 피난가다가 가족과 떨어지는 바람에 고향과 가족이 없다. 같이 감방을 쓰던 죄수에게서 출소하면 고향에 있는 어머니에게 소식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사평에 왔다. 죄수의 어머니가 반찬으로 굴비를 구워 줬다는 말을 기억해서 시장에서 굴비를 사서 어머니를 찾아간다. 찾아가보니 어머니는 언제 올 지 모르는 아들을 기다리며 고향집을 지키고 있었다. 알고 보니 아들은 30년 전에 빨치산으로 활동하다가 잡혀들어간 것이고, 다른 가족들과 동네 사람들이 아들은 죽었을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그 말을 믿지 않고 끝까지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소식을 전한 후 돌아가기 위해 사평역으로 왔지만, 시장에서 산 굴비를 전해주지 않았던 것을 기억해 낸다. 마지막에는 열차를 타지 않고 다시 역을 나서는데, 정황상 죄수의 어머니께 다시 돌아가서 죄수 대신 지냈을 가능성이 높다.
- 춘심: 사평이 고향인 여성. 서울에서 술집 접대부로 일하고 있는데, 고향에는 화장품 회사에 다닌다고 이야기해 놨다. 접대부 일이 지친 나머지 잠시 고향에 다니러 왔는데, 돌아갈 때 동생이 자신도 언니의 화장품 회사에 다니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 간단히 알았다고 하면서 돌아서지만,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 농부: 아버지를 모시고 사평역에서 기차를 기다린다. 아버지의 건강이 나빠져서 읍내에 새로 생긴 종합병원에 데리고 가는 중인데, 아버지가 버스는 안 탄다고 고집을 부려서 기차를 타러 사평역으로 왔다. 그래서 극 초반부에서는 투덜대고 있었는데, 중간에 들어온 상인 둘이 버스가 눈 때문에 고갯길을 못 넘어서 기차를 타러 왔다고 이야기하자 표정이 밝아진다. 아버지의 고집이 전화위복이 된 셈. 이후 아버지를 업고 늦게 도착한 막차를 타고 간다.
- 서울여자: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사평역에 온 중년 여성으로, 꽤 부티나는 옷차림을 하고 있다. 옆에 앉은 춘심을 보고 술집 접대부라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채며 무시하고, 무슨 역에 특급도 안 서냐고 투덜대는 등 처음에는 밉상을 보인다. 나중에 사평에 온 이유가 밝혀지는데,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30만원을 훔쳐 달아난 점원 사평댁을 찾아서 사평에 온 것이다. 중간에 들른 가겟집에서 그 집에 애들이 많다는 정보를 얻고 애들 먹일 과자를 사서 고생 끝에 사평댁의 집에 가는데, 애들은 배고프다고 울고 있고 사평댁은 수척해진 채로 힘없이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서울여자는 이게 무슨 꼴이냐며 물어보는데, 남편이 자기를 쫒아낸 뒤에 애들을 놔두고 죽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돈을 들고 도망쳤다고 한다. 서울여자는 그렇다면 자신에게 먼저 말했어야 하지 않느냐고 하면서 울고, 가져온 돈 거의 대부분을 사평댁에게 쥐어주면서 이걸로 병원부터 먼저 가보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마지막에는 막차를 타고 떠난다. TV문학관에서는 김을동이 연기했다.
- 행상 두 명: 행상을 다니는 두 명의 중년 여성. 한 명은 건어물을, 한 명은 옷장사를 한다. 읍내까지 버스를 타고 가려고 했지만 눈 때문에 길이 막혀서 혹시 기차는 다니나 싶어 사평역으로 왔다. 건어물 장사는 산골이라 건어물이 잘 팔려서 좋다고 하면서 남은 북어를 난로에 구운 뒤에 찢어서 나눠준다. 옷장사는 며칠 전에 다른 옷장사가 오는 바람에 많이 못 팔았다고 한탄하는데, 건어물 장사가 그 정도면 잘 팔지 않았냐고 타박을 준다. 마지막에는 막차를 타고 떠난다. TV문학관에서 옷장사는 전원주가 연기했다.
- 미친여자: 정신이 이상한 여자로, 대합실 의자에 누워 있다. 역장의 말로는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작년 여름부터 이따끔씩 사평역으로 와서 있다가 열차를 타고 떠난다고 한다. 무슨 사연인지는 작중에 언급되지 않는다. 막차를 타지 않고 계속 대합실에 누워 있는데, 그 모습을 본 역장은 곤란해하면서도 난로를 아침까지 유지하기 위해 톱밥을 더 가지러 나갈 채비를 한다.
[1]
다만 오늘날에는
서울 지하철 9호선
사평역(砂平驛)이 있기는 하다. 작품 속의 사평역은 실존하는 사평역과 한자도 다르고(그런데 우연의 일치로 沙와 砂는 모두 '모래 사'로 사실상 같은 글자이다.) 시골의 초라한 간이역으로 묘사되므로 관련없는 부분이다.
[2]
시대상에 비추어보면 학생운동 같은데 연루되어 퇴학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