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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08 23:39:53

사세보 스포츠센터 총기난사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사건 경위3. 범인 마고메 마사요시4. 범행 동기5. 사건 이후

1. 개요

ルネサンス佐世保散弾銃乱射事件[1]

2007년 12월 14일 나가사키현 사세보시에 위치한 스포츠센터 '르네상스' 사세보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

2. 사건 경위

2007년 12월 14일 오후 7시 10분경 스포츠센터 체인 '르네상스'의 사세보점에 산탄총을 든 마고메 마사요시라는 남성이 진입해 수영장으로 직행한 후 바로 산탄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당시 수영장에서는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교습을 받는 상황이었고 위험을 감지한 여성 강사가 학생들을 사무실 쪽으로 유도하면서 피난하려고 했으나 남성은 그들을 앞질러 들어가 무방비 상태의 강사를 상대로 지근거리에서 산탄총을 발사하여 중상을 입혔다. 뿐만 아니라 로비에서 남성을 제지하려 했던 당시 36세였던 후지모토 유지라는 다른 남성에게도 수 차례 총을 난사했다. 후지모토는 범인과 학교 동창생으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고 하며 사건 당일 다른 지인 몇 명과 함께 마고메에 의해 불려 나왔다가 변을 당했다. 이외에도 성인 4명과 초등학생 2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태가 벌어졌다. 범인은 발포 직후 바로 뒷문을 통해 달아났으며 후지모토와 여성 강사는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었으나 과다출혈로 사망하고 말았다.

당시 범인이 얼룩무늬 위장복을 입고 있었고 키가 180cm 이상으로 보였다는 목격자들의 진술 때문에 처음에는 미군의 소행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으나 경찰 조사 결과 사세보 시내에 거주하던 무직의 마고메 마사요시(馬込政義)라는 남성이 용의자로 부상했다.

사건이 사건인 만큼 경찰 측에서는 즉각 엄중 대응에 돌입했다. 범인이 또 다시 발포할 가능성을 고려하여 나가사키 현경에서는 총기대책 부대가 파견되었고 바로 옆의 후쿠오카 현경에서도 특수부대를 출동시켜 수색을 개시하였으며 사건 다음날인 15일 오전 1시경 사건 현장에서 약 4km 떨어진 후나고시 성당 앞 노상에서 마고메 소유의 미쓰비시 델리카 D:3 차량이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차량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차 안에서 산탄총 2정과 공기총 1정, 그리고 얼룩무늬 위장복이 발견되었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마고메가 남은 산탄총 1정을 가지고 인근에 숨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현장 주변의 경계를 강화하고 수색에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5일 새벽 5시 40분경 후나고시 성당에서 발포음이 들려 왔다. 이에 경찰은 마고메가 성당 부지 내에 있음을 확신하고 일대를 수색한 끝에 약 2시간 후인 오전 7시 55분경 산탄총을 든 채 목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마고메를 발견했으나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인근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마고메의 차량은 사건 발생 50분 후인 14일 밤 8시 이후 계속 그 자리에 주차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마고메가 르네상스 사세보점에서 총기를 난사한 뒤 다른 곳에 들르지 않고 곧바로 후나고시 성당으로 온 것으로 추정되었다.

2008년 3월 5일 나가사키 지검이 용의자인 마고메의 자살로 인한 불기소처분을 내림으로써 사건은 종결되었다.

3. 범인 마고메 마사요시

마고메는 1970년(사건 당시 37세) 사세보시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마고메도 어린 시절 부모가 다니던 후나고시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성당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사세보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고등학교 시절 담임교사의 증언에 따르면 온후한 성격이었다고 하지만 당시의 동급생들은 마고메가 악마 숭배자들의 흑미사 의식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고 어딘가 꺼림칙했다고 증언했으며 마고메 자신은 고등학교 졸업 직전에 절도 사건을 일으켜 근신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졸업 이후 마고메는 나고야 도쿄에서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고향인 사세보로 돌아왔지만 여기서도 한 직장에 오래 있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전전했다. 한때 변호사를 지망하면서 사법시험도 치렀지만 4년 연속으로 낙방했다.

한편으로 그는 자신의 취미에는 아낌없이 돈을 쓰는 타입이었다.[2] 낚시 도구도 비교적 고가 제품을 자주 구입했고 낚시용 보트도 구매했다고 한다. 특히 낚시 이외에 총기류에도 취미가 있었는데 5년에 걸쳐 약 80만엔 가량을 들여 산탄총 3정과 공기총 1정[3], 그리고 실탄 2700발을 구입하여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일본에서 법적으로 허용된 실탄 보유 수가 800발이었으니 허용 기준을 무려 3배 이상 초과한 실탄을 보유한 것이다.

4. 범행 동기

마고메가 자살하는 바람에 경찰은 한동안 범행 동기를 규명하는 데 난항을 빚었다. 처음에는 묻지마 살인의 가능성이 크게 대두되었지만 마고메가 사건 당시 여성 강사의 남자친구를 밀쳐내고 오로지 여성 강사만을 노려 발포했다는 점, 마고메가 한때 르네상스 사세보에서 운동을 한 적이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일방적인 연애감정 끝에 벌어진 범행으로 추정했다. 한편 후지모토의 살해 동기에 대해서는 후지모토가 자신을 막아선 것에 격분하여 저지른 범행으로 추정되었고 이후 후지모토는 의사자로 인정받아 유족에게 지원금이 지급되었다.

또 경찰은 마고메가 일정한 직업과 수입이 없고 빚에 시달렸다는 점을 근거로 일단 자포자기 끝에 벌인 범행으로 결론지었지만 호감을 갖고 있었던 여성 강사에게 살의를 품게 된 이유나 후지모토를 포함한 옛 지인들을 왜 불러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5. 사건 이후

사건이 일어난 르네상스 사세보는 한동안 영업 중지 상태였다가 2008년 1월 영업을 재개했다.

한편 이 사건으로 기존 총기 규제법의 미비함이 지적되면서 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바로 다음 해(정확히는 약 6개월 후)인 2008년에 일어난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사건의 영향까지 겹쳐 결국 2008년 11월 28일에 법률이 개정되었다. 당초의 법률 개정 논의에서는 총기류 관련 규제 강화에만 중점을 두고 있었지만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사건의 범인 가토 도모히로가 범행에 사용한 흉기가 서바이벌 나이프였던 탓에 도검류 규제까지 추가된 개정 법안이 제출되었고 여야 협의 끝에 법률이 개정되었다.
[1] 르네상스 사세보 산탄총 난사 사건 [2] 일정한 수입이 없었기 때문에 비용은 대부분 부모의 돈으로 충당하고 있었다고 한다. [3]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그 총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