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레르가 낭만주의를 가장 잘 대표한다고 평가한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가 29세의 나이에 살롱에 출품한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은 격렬한 주제와 표현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들라크루아는 이 그림의 주제를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 경의 희곡에서 따왔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다르게 표현했다. 백성을 아끼던 고대 아시리아의 왕 사르다나팔루스가 반란군에게 부당하게 패한 뒤, 고귀하게 장례용 장작더미에 올라갔고 충실한 애첩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는 것이 원작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들라크루아는 사르다나팔루스가 자신의 명령에 따라 하렘의 모든 애첩과 시동을 학살하고, 애마와 개, 보물 같은 재산까지 모두 파괴하는 것을 바라보는 장면을 상상해 그렸다.
오늘날에도 물감이 피 흐르는 것처럼 과장되고 격렬한 색채와 모든 것이 통제를 벗어난 듯한 혼란스럽고 비논리적인 구성이 관람객을 자극하는 이 그림은, 살롱에 출품되었을 당시에 큰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사람들의 눈에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은 정적이고 안정된 구조와 절제된 색조를 특징으로 하는 당대 신고전주의 미술의 모든 법칙을 흩뜨려놓는 것으로 보였다. 많은 이들이 이 격렬한 그림에 큰 충격을 받았다. 들라크루아는 심지어 정부의 주문을 받으려면 이와는 전혀 다르게 그려야 할 것이라는 경고를 받기도 했다.
들라크루아는 이 그림에서 다양한 이국적 문화를 혼합해 그만의 언어로 표현했다. 그림 좌측 상단에서 사르다나팔루스는 진홍색 천을 깔아놓은 황금 코끼리 머리 장식의 화려한 침대 위에 길게 누워 그가 명한 학살과 파괴의 비극을 바라보고 있다. 오른쪽 하단에서 왼쪽 상단으로 뻗어가는 대각선 구도와 그림 중앙에서 가장 밝아지는 빛의 효과는 역동적 구성을 강조한다.
침대에 누워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묵묵히 최후를 바라보는 사르다나팔루스와는 대조적으로 공포에 질린 여인과 시종과 말은 격렬한 몸짓을 보이고 있다. 왕의 발치에는 애첩 뮈라가 엎드려 있는데 그녀의 벌거벗은 등은 왕이 덮고 있는 흰 천만큼이나 눈부시게 빛난다. 침대맞은편으로는 호위병이 어깨에서 옷이 벗겨진 여자 노예를 칼로 찔러 죽이려 하고 있다. 그 위의 어두운 곳에는 죽임을 당하기 전에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한 아이스셰가 보인다. 그 뒤 멀리 보이는 도시와 궁전은 타오르는 맹렬한 불꽃 속에서 모든 질서를 잃어버린 듯 표현되었다.
그림의 오른쪽 하단에서도 한 병사가 벌거벗은 여자 노예의 가슴에 검을 꽂으려 하고 있는데, 몸을 뒤로 젖혀 진주빛과 금빛으로 빛나는 육감적인 누드가 두드러진다.
오른쪽으로는 고개 숙인 한 남자가 손 사이에 머리를 두고 숙명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그 위로는 공포에 질린 남자가 왕에게 호소하는 몸짓을 하고 있다. 그림 왼쪽 상단에는 시종이 물 항아리와 수건, 대야를 왕에게 바치고 있으며, 그 아래로는 얼굴을 베일로 가린 여자 옆으로 한 흑인 노예가 칼로 가슴을 찔러 자살하고 있다.
왼쪽 하단의 흑인 노예와 말의 어둡고 투명한 색조는 눈부시게 밝은 중앙과 어우러져 그림 전체의 균형을 잡고 있다. 질감이 느껴지는 침대와 진홍색 천과 인물 사이사이에 널려있는 갖가지 이국적인 금은보화도 장면의 역동성과 극적인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림자의 대조와 중간 색조, 빛이 잘 어우러진 색채, 빨강과 흰색, 금빛이 도는 노란색의 풍부한 활용, 과감할 정도로 두껍게 바른 물감의 진동, 눈부시게 빛나는 광택 또한 그림
을 더욱 생동감 넘치게 한다.
빅토르 위고는 이 그림에 대해 들라크루아의 경력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작품이라고 높게 평가한 바 있다. 선보다는 색채와 질감을 강조했고, 낭만주의의 구성 요소인 폭력과 저항, 이국주의, 화려함 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들라크루아는 다양한 신체의 움직임과 자세, 소품, 인물 그룹, 전체 장면의 긴장감, 표현의 역동성과 강렬함의 자발성을 유지하면서도 전체 구성을 진실하게 포착하고자 했다. 또한 그는 과거에서 주제를 택하긴 했지만 아카데미의 역사화가 선호하는 그리스-로마라는 주제가 아니라, 당시에 인기 있던 이국적인 동방을 주제로 삼아 작품을 제작했다. 역동적인 구성과 인물 배치, 격렬한 감정, 근육이 살아 움직이는 신체 표현, 상상과 표현의 유례없는 자유는 <사르나다팔루스의 죽음>을 가장 낭만주의적인 그림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