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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05 22:28:11

비브라테 전투

갈리아 전쟁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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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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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58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끄는 로마군과 디비코의 헬베티족이 맞붙은 전투이다. 로마가 갈리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계기를 마련한 전투였다.

2. 상세

아라르 전투 이후 로마군은 다리를 하루만에 완공하여 아라르 강을 건넜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디비코가 사절을 보내 강화를 요청하자, 카이사르는 하이두이족과 세콰니족에게 보상하고 볼모를 제공하며, 본래의 땅으로 돌아가라고 요구했다. 헬베티족은 이를 거부하고 계속 행군했으며, 카이사르는 그들을 추격했다. 하지만 로마군이 보병은 강하지만 기병이 약한 점을 고려해 하이두이족에게 기병대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하이두이족은 4,000명의 기병을 보냈으나, 기병대를 지휘하는 둠노릭스의 태업으로 인해 헬베티족의 후위대와 벌어진 소규모 접전에서 로마군이 패배했다. 이 일은 헬베티족의 사기를 고양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로마군은 15일 동안 헬베티족을 바짝 따라붙었고, 두 군대 사이의 간격은 5~6마일에 불과했다. 카이사르는 하이두이족에게 식량 보급을 맡겼지만, 보급품이 제대로 오지 않자 하이두이족의 지도자들에게 항의했다. 이에 그들은 둠노릭스가 어떤 보급품도 로마 군대에 도달하는 것을 막았다는 걸 실토했다. 카이사르가 둠노릭스를 죽이려고 했지만, 둠노릭스파가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을 걱정한 디비키아쿠스가 눈물로 호소해 그만두었다. 대신 앞으로 둠노릭스를 감시하여 딴짓 할 틈을 주지 못하도록 했다. 얼마 후 헬베티족이 산기슭에 진을 치자, 카이사르는 티투스 라비에누스에게 2개 군단을 맡겨 산으로 올라가게 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정찰병 한 명이 산에 올라간 군단을 적군으로 오인하는 바람에, 카이사르는 예정됐던 공격을 취소했다.

그 후 카이사르는 하이두이족의 가장 큰 마을인 비브라테로 철수해서 보급품을 확보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로마군이 진영을 철거하고 비브라테로 이동하자, 디비코는 그들이 달아난다고 판단해 즉시 추격하기로 했다. 후방 부대로부터 헬베티군이 추격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카이사르는 기병대를 보내 그들을 저지하게 하고 보병대를 언덕으로 이동시켰다. 그는 기존 군단 4개를 최전선에 배치하고, 2개의 신설 군단과 보조병을 언덕 꼭대기에 배치했다. 헬베티족은 로마 기병대를 물리치고 언덕으로 진격할 태세를 갖춘 뒤, 요란한 함성을 내지르며 돌격했다.

헬베티족이 로마군의 전선을 향해 진군하자, 카이사르는 장교들에게 말에서 내려 아무도 도망치지 않는다는 뜻을 병사들에게 보이라고 명령했다. 헬베티군이 충분히 다가오자, 로마 군인들은 일제히 필룸을 던졌다. 필룹에 박힌 방패를 쓸 수 없게 되자, 헬베티족은 할 수 없이 방패를 내던져야 했고, 로마군은 그 틈에 헬베티족을 향해 돌진해 근접 전투를 벌였다. 헬베티족은 곧 패퇴하여 후방으로 약 1마일 떨어진 산을 향해 후퇴했다. 로마군은 이를 추격했지만,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전열이 흐트러졌고, 후방에 대기 중이던 보이족과 툴링기족이 이 틈을 타 로마군의 측면을 공격했다. 이에 헬베티족은 퇴각을 멈추고 전투에 복귀했다.

상황을 지켜보던 카이사르는 첫 번째 전선과 두 번째 전선이 헬베티족과 대결하는 사이에 세 번째 전선에 배치된 예비대에 보이족과 툴링기족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이들의 공격으로 보이족과 툴링기족은 뒤로 밀려났고, 로마군은 전열을 회복했다. 이후 오후 내내 격렬한 전투가 지속되었지만, 저녁이 될 무렵 헬베티군이 수세에 몰려 패주했다. 로마군은 적군이 숨은 진영을 향해 맹공격을 퍼부었고, 끝내 진영에 침입해 헬베티족을 제압했다. 카이사르가 《갈리아 전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헬베티족 238,000명이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파울루스 오로시우스는 헬베티족 47,000명이 죽었다고 기술했다. 하지만 현대 역사가들은 이를 과장이라고 간주하며, 12,000명이 전사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로마군의 손실은 알려진 바 없으나, 적어도 1,000명 이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전투에서 패배하고 간신히 목숨을 건진 헬베티족 130,000명은 링고네스족의 땅으로 4일간 행군했다. 로마군은 힘겨운 전투를 치르느라 지쳐서 3일 동안 쉬었지만, 이후 헬베티족을 맹렬히 추격했다. 결국 따라잡힌 그들은 항복했고, 카이사르는 그들에게 본토로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하이두이족은 보이족이 자기들 땅에 정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해 허락을 받아냈다. 이후 보이족은 하이두이족의 일부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헬베티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카이사르는 하이두이족의 영역에서 군대를 휴식시켰다. 이때 디비키아쿠스 등 하이두이족의 유력 인사들이 그를 찾아와 승리를 축하하면서, 게르만계 수에비족의 만행으로 고통받는 동족의 상황을 설명한 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카이사르는 이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수에비족의 지도자인 아리오비스투스를 상대로 보주 전투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