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보두앵 드 랑스 Baudouin de Le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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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미상 ~ 1364년 5월 16일 | |
출생지 | 프랑스 왕국 | |
사망지 | 프랑스 왕국 코르슈렐 | |
아버지 | 고드프루아 드 랑스 | |
어머니 | 마르그리트 다쟁쿠르 | |
누이 | 잔 드 랑스 | |
자녀 | 질( 사생아), 아룬델(사생아) | |
직위 | 아네킨과 보에플스 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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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왕국의 귀족, 장군. 백년전쟁 시기 잉글랜드군의 침공에 맞서 싸웠다.2. 생애
아네킨과 보에플스의 영주 고드프루아 드 랑스와 아쟁쿠르 백작의 딸인 마르그리트 다쟁쿠르의 외아들이다. 누이로 잔이 있었다. 1344년 조프루아 드 샤르니의 부대에 들어가 브르타뉴에서 벌어진 브르타뉴 공작위 계승 전쟁에 참여해 샤를 드 블루아를 도왔다. 다만 그가 이 시기에 벌어진 샹토소 전투와 엔봉 공방전, 반 공방전, 모를레 전투에 참여했는지는 기록이 부족해 분명하지 않다.1346년 8월 플란데런 반란군이 전략적 요충지인 베쑨느를 포위했다. 이때 그는 조프루아 드 샤르니와 함께 베쑨느 구원 작전에 착수해 플란데런군을 성공적으로 물리쳤다. 1350년 1월 조프루아의 칼레 기습전에 참여했으나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는 잔여 병력을 이끌고 겨우 퇴각했다. 1351년 프랑스 국왕 장 2세가 창설한 별 기사단의 일원이 되었으며, 1353년 아르눌 도드랭 원수 휘하에 들어가 노르망디 전선에서 활동했고, 1354년 프랑스와 잉글랜드가 평화 협약을 맺은 뒤 퐁토르송에서 마상창시합을 주관했다.
1356년 9월 푸아티에 전투에서 프랑스군에 복무했다가 중상을 입고 생포된 뒤 장 2세와 함께 잉글랜드로 이송된 후 왕실 시종으로 임명되었으며, 1357년에 석방될 때까지 장 2세를 보좌하면서 그의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이후 장 2세와 그의 아들 샤를 왕자 사이의 몇 가지 비밀 임무를 수행했으며, 1358년 석궁병의 총사령관, 즉 전체 보병대 사령관에 선임되었다. 1356 ~ 1357년 베르트랑 뒤 게클랭과 함께 렌 공방전에 투입되어 그로스몬트의 헨리로부터 렌을 구출하는 데 기여했다.
1357년 왈롱 플란데런의 보안관이 되었으며, 1358년 샤를 왕자와 함께 멜룬, 코르베유, 크레시, 퐁투아즈를 방문했다. 1358년 8월 레인발과 로이의 영주 라울 드 카니와 함께 누아용에서 약탈을 일삼는 나바라 출신 자유 용병대를 몰아내는 임무를 수행했다. 1359년 카를로스 2세가 점거하고 있던 항구 도시 생 발레리를 공략했으며, 베르트랑 뒤 게클랭과 함께 카를로스 2세의 형제인 필리프 드 나바르를 추격해 노르망디에서 몰아냈다. 1360년 2월 16일 생제르맹수카이 요새를 공략하려는 잉글랜드군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격퇴했고, 1360년 브레티니 평화 협약 체결식에 참석했다.
1362년 장 2세 드 멜룬과 함께 부르고뉴로 가서 치안을 회복하는 임무를 수행했으며, 1364년 3~4월 자유 용병대가 장악하고 있던 톨부아즈를 게클랭의 지휘하에 공격해 공략에 성공한 뒤 톨부아즈의 수비대자엥 선임되었다. 이후 나바라 왕국-잉글랜드 용병대 연합군이 장 3세 드 그레일리의 지휘하에 노르망디로 쳐들어와서 약탈을 자행하자, 게클랭의 지휘하에 이들을 추격했다. 1364년 5월 16일, 양군은 코르슈렐 전투를 치렀다. 이때 그는 보병대를 이끌었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도중에 나바라 용병이 휘두른 검에 찔려 전사했다. 사후 릴의 생피에르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그는 생전에 결혼하지 않았고, 사생아로 질과 아룬델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영지는 당시 뵈브리의 영주 장 1세 드 보이시의 아내이자 그의 누이였던 잔 드 랑스에게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