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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복스/활동/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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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콩과 태국으로2. 6집 활동3. 중국 차트 1위에 오르다4.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간 베이비복스의 인기5. 북한 공연6. 종합

1. 홍콩과 태국으로

2003년 연초부터 베이비복스는 1월 경 홍콩 현지 프로모션을 위해 출국했다.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과 뮤직비디오 촬영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던 와중에 홍콩 스타 곽부성이 베이비복스를 만나고 싶다며 자신의 레스토랑으로 초대했다. 베이비복스의 홍콩 프로모션사는 여명 등이 소속된 Bingo Music으로 곽부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지만 곽부성의 식사 초대라 베이비복스는 자리에 응했고 곽부성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특히 곽부성이 김이지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모습이 현지 기자들한테 오해를 받아 둘 사이에 뜬금포 열애설이 돌기도 했다. 이후 곽부성은 베이비복스와 듀엣곡을 녹음하고 싶다는 제의를 보내와 6집 앨범과 곽부성의 앨범에 실을 듀엣곡 녹음을 위해 몇차례 일정을 조정했으나 사스(SARSㆍ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문에 연기되다 결국엔 무산되었다. 원래 계획으로는 3월 초에 곡을 완성한 다음 7월 쯤엔 곽부성과 조인트 콘서트도 계획할 예정이었다. 자세한 사항은 베이비복스/해외 활동 문서를 참고.

파일:JEQPBOa.jpg
태국 그래미 뮤직 페스티벌.

홍콩에서의 프로모션 이후 2003년 2월 중순, 일주일 간 태국 현지에서 6집에 들어갈 신곡 뮤직비디오 촬영과 영상 화보집 촬영을 가졌고 곧 이어 3월 21일과 22일, 태국의 휴양지 파타야에서 열린 그래미 뮤직 페스티벌에 한국 대표로 최초로 참가했다. 그래미 뮤직 페스티벌은 태국 정부가 주최하는 국제 가요제로, 태국을 비롯해 한국, 일본, 홍콩 등 아시아권 톱가수들은 물론, 세계적인 스타들도 참여해 벌이는 옴니버스 가요제였다. 베이비복스가 해당 가요제에 등장하자 몰려든 수만명의 팬들 때문에 현지 모습을 촬영하러 간 국내 방송 제작진들도 매우 놀라워했다. 태국은 활동을 딱히 하지 않았음에도 ‘베이비엔젤스 in Thiland’를 현지팬들끼리 만들어 활동하였다. 당시 해외 팬클럽이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국가는 중국, 일본, 대만, 태국 정도이고 나머지 국가는 커뮤니티 수준 정도였으며 한국 공식 팬클럽 ‘베이비엔젤스’를 그대로 따와서 뒤에 국가만 넣는거로 자리잡았다. 중국, 일본에서 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분위기를 따라간듯 싶다.

2. 6집 활동

5.5집의 성공적 활동이 끝난 후 같이 활동했던 그룹 핑클 S.E.S. 등이 해체 후 홀로걷기를[1] 선언하며 팬덤내에서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는 분위기였다. 당시 리더 김이지는 탑급 대우로 중국 드라마, CF 촬영을 성사시키는 등 해외 활동에 주력하는 모양새였고, 나머지 멤버들도 개인 활동에 주력하고 있었다. 그러다 2003년 4월 3일 6집 앨범 < Devotion>을 발표했다. 발매 전에 국내에서 모바일을 통해 신곡이 유출되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6집은 아시아 6개국에 수출되었으며, 당시에는 획기적인 전 세계 동시 발매였다. 국내에서 10만 장을 선주문 받은 것을 비롯해 2003년 4월 5일 홍콩의 빙고뮤직으로부터 3만 장, 12일 중국의 상해유통으로부터 20만 장, 15일 태국의 그레미뮤직으로부터 12만 장, 같은 날 대만의 에이벡스로부터 5만 장의 선주문을 받는 등 5개국에서 50만 장의 선주문을 기록했으며, 일본과 베트남에서는 각각 15만 장, 5만 장 등 해외에서 선주문을 하여 해외에서의 판매량이 엄청난 앨범이었다.

당시에 대만과 홍콩의 경우 최고 가수의 음반 선주문량이 각각 5만 장, 1만 장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베이비복스의 이 같은 음반 주문량은 엄청난 수치였다. 이는 당시에 일본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아시아의 별' 보아의 정규 음반이 일본에서 100만 장의 선주문을 받은 것에 비견되는 놀라운 기록이었다. 국내 대중음악계가 아시아 지역에서 그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는 증거인 동시에 '한류 그룹' 베이비복스가 이제 명실 공히 아시아권 가수로 떠올랐음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같은 수입액 산정은 베이비복스 측이 6집 앨범 출시와 함께 국내에서 직접 생산과 유통을 관장하기로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전까지는 현지 음반사가 대체로 생산 · 판매 유통을 대행해왔는데, 수출 시 주도권을 현지 음반사에 넘기지 않은 것은 그만큼 베이비복스에 대한 지명도와 신뢰도를 인정받았다는 증거였다. 당시 음반업계에서는 베이비복스의 해외시장 개척이 최악의 불황을 맞고 있던 국내 가요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파일:베이비복스_Devotion.jpg
<우연>의 연장선상이자 대중성을 모토로 잡은 6집 앨범 ' Devotion'.

<Devotion>(헌신)이라는 앨범 제목이 말해주듯이 베이비 복스는 6집 앨범을 만들 때 팬들을 먼저 생각했다. "본 앨범판매 수익금 중 일부는 대한적십자사 인도주의 활동기금으로 조성됩니다"라는 긍정적 메시지를 첨부한 다분히 헌신적인 음반이었다.

리더인 김이지는 "대중성을 모토로 했다. 이번 앨범의 수록곡은 듣기에도 편하고 따라 부르기도 쉽다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지난 해였던 2002년에 내놓았던 스페셜 앨범의 타이틀 곡 <우연>을 통해 변화의 기미를 보인 베이비복스는 6집 앨범을 통해 미디움 템포 패턴에서 탈피하여 일반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곡들로 대폭 강화했다. 노래는 물론 춤에도 변화를 줬다. 파워 넘치는 댄스로 유명한 베이비복스이지만 6집에서는 힘을 뺐다는 것. 패션 스타일 역시 달라졌는데, 옷에는 자수를 넣고 귀고리나 목걸이 등 액세서리에는 자개문양을 넣었다. 동양적 신비감을 표현하겠다는 뜻으로 범아시아적 활동을 위한 포석이기도 했다.

전작 5.5집 < 우연>의 히트로 김창환과 손을 잡은 베이비복스의 변화는 대중성을 잡겠다는 의의가 있었지만 한편으론 기존 베이비복스의 색깔을 모두 잃어버린듯한 곡들로만 채워져있어 팬덤쪽에선 아쉬운 목소리도 많이 등장했다. 특히 타이틀 곡 <나 어떡해>는 베이비복스가 2~5집 김형석과 작업하던 시절 보여줬던 세련됨이 아닌 베이비복스의 클론화라는 말도 나왔다. 사실 대중성을 노렸다고는 하지만 정작 국내에선 우연만큼 히트하지도 못했다.
《나 어떡해》 (김창환 작곡, 작사)
어쨌든 <나 어떡해>도 발매 직후 바로 차트 상위권에 진입하며 6월 1일 SBS 인기가요에서 1위를 수상하긴 했다. MBC 음악캠프에선 1위 후보에 올랐고, 순위제를 중지했던 KBS 뮤직뱅크에서도 리퀘스트 Hot 5에 5주 연속 오르며 인기를 유지했다. 하지만 역시 전작의 인기엔 못 미치는 성과였다. 그래서인지 <나 어떡해> 활동을 마치고 난 뒤 소속사 측은 후속곡 투표를 시행했는데 여기서 심상원 작곡의 <Loveless>가 압도적으로 1위를 했다. 하지만 소속사는 답정너처럼 투표랑 상관없이 후속곡을 <바램>[2]으로 정하고 짧은 보름 동안의 활동을 했다. 활동 기간 동안 KBS 뮤직뱅크에는 한번도 출연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6집 활동 기간 동안에는 멤버들의 컨디션이 대체적으로 안 좋았었는데 특히 심은진의 건강이 눈에 띄게 악화되었었다. 당시 심은진의 개인 인지도가 높았기 때문에 팀 활동 말고도 예능 방송 등 개인 스케줄이 많았다. 데뷔 후 처음으로 단독 CF를 찍기도 했다.

3. 중국 차트 1위에 오르다

2003년 3월 말, 6집 발매와 동시에 한국을 비롯해 중국, 태국 등 아시아 7개 지역에서 동시 발표한 6집의 수록곡 <I'm Still Loving You>가 중국 중앙 인민 라디오 2003년 4월 둘째주 인기차트에서 8위에 랭크됐다. 국내 가수 최초로 중국 차트 톱 10에 진입한 것이었다. 발표 첫 주 10위권에 진입해 인기 상승을 예고한 이 노래는 2주일만에 8위에 오름으로써 정상을 향한 파란불을 켰고, 당시 중화권을 강타했던 사스 공포 때문에 중국에서의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발매 한 달만에 중국 최고의 라디오 방송인 인민 라디오 '음악지성 중국 유행가요배 행방'과 '중국 원창가요배 행방'에서 각각 5위에 진입하는 쾌거를 이루며 현지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이 두 프로그램은 중국 내 가요계를 이끌던 최고 인기 프로그램으로 중국 내 100여개 도시, 800여개 방송국의 순위 프로그램에 절대적인 영향력이 있을 정도로 손꼽히던 프로그램이었다. 또한 현지 정상권 가수들도 두 달이 넘어야 10위권에 간신히 들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프로그램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베이비 복스가 화교권이 아닌 외국인 가수라는 점이었다. 당시에 1세대 한류 스타들이 중국에서 높은 인기가 있었지만 중국 차트 상위권에 랭크된 것은 베이비복스가 처음이었다.

<I'm Still Loving You>는 중국의 레리 펭과 시지에가 각각 작곡, 작사를 맡은 중국어 곡으로, 이희진과 간미연의 리드 보컬을 중심으로 멤버들의 고운 목소리가 아름답게 전개되는 발라드 곡이었다. 앨범이 발표되기 전 이미 뮤직비디오가 제작되어 베이비복스의 중국어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베이비복스의 쾌거는 중국어 노래를 통한 중화권 현지화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으로, 다소 주춤하고 있던 한류 열풍의 돌파구로 기대를 받았다. <I'm Still Loving You>는 매일 밤 중국 내 가라오케에서 열창되고 있었으며, 베이비복스의 출연이 있는 날이면 중국 내 베이비복스 사이트 서버는 다운되기 일쑤였다.

《I'm Still Loving You》 (레리 펭, 시지에 작곡)

마침내 2003년 5월 20일, <I'm Still Loving You>는 1위를 차지하여 정상에 등극하였고, 중국에서 외국 가수 최초로, 그리고 한국인으로서는 물론이거니와 '비화교' 출신 가수로도 초유의 기록이었다. 또한 화교권이 아닌 외국인 가수가 중국대륙에서 팝송이 아닌 대중음악으로 중국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컸다. 당시 가요관계자들은 이 프로그램에서 베이비복스가 1위를 차지한 것에 대하여 "보아의 오리콘차트 1위와 맞먹는 성과"라면서 한국 가수의 자존심을 세운 일이라고 축하했으며, 베이비복스는 "'10만 중국 팬클럽과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1위에 올라 기쁘다'"면서 당시 주춤하고 있던 한류 열풍을 되살리는데 앞장서고 싶다고 말했다.

4.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간 베이비복스의 인기

이와 함께 태국의 유명 대중 가요차트인 GGM(Global Music & Media)에서도 베이비복스의 <I'm Still Loving You>와 <나 어떡해>가 각각 9위와 8위에 랭크 돼 동남아 최초의 10위권 진입에 성공했다. 이 같은 기록은 태국에서 베이비복스 음반이 발매된지 2주만의 기록이었다. 뿐만 아니라 국내 가수로는 처음으로 태국 음반 시장에 진출했던 베이비복스는 2003년 5월 23일, 태국의 공신력 있는 음악 위성방송 '채널 V' 차트에서 4위에 올라 아시아 스타로 자리를 굳혔다. 1주일에 한번씩 집계하던 이 음악차트에서 베이비복스의 <나 어떡해>가 세계적인 뮤지션인 린킨 파크, 휘트니 휴스턴, 크렉 데이비드, 마돈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을 누르고 4위를 차지했던 것이다.

베이비복스의 아시아에서의 인기는 중국 대륙을 넘어 저 멀리 몽골 초원과 동서양 문화가 공존하는 실크로드의 성지 우즈베키스탄, 동남아 국가인 태국, 말레이시아에서까지 팬들을 만들 정도였다. 그리고 2003년 7월 26일 몽골의 울란바토르시 나담스타디움에서 열린 베이비복스의 단독 공연은 베이비복스의 위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행사였다. 28만(?) 여명의[3] 울란바토르 시민 중 이 날 공연장을 찾은 몽골인은 약 3만 여명으로, 진짜 도시가 들썩일만큼 베이비복스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스타디움에 운집했다. 그러니 공연 후 울란바토르 시는 베이비복스 공연으로 단연 화제였다.

당시 현장 모습, 베이비복스의 몽골내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비공개되었다.

이 공연은 시민들의 입과 입을 통해 몽골 대통령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급기야 공연 다다음날인 2003년 7월 28일 몽골 대통령이 직접 베이비복스 제작자인 윤등룡 사장을 급히 찾는 상황에 이르렀다. (몽골 대통령은 공연 전에 의례적인 행위로 한국 공연단을 대통령 관저로 초청하여 저녁 만찬을 열어줬으나, 당시 대통령은 고향에서 열리는 지역행사로 인해 만찬에 참석하지 않았었다.) 이후 베이비복스는 어디를 가나 '베이비복스'를 연호하는 팬들로 둘러싸였고, '블랙로스' 등 몽골의 인기 가수들도 베이비복스와의 사진 촬영에 열을 올리는 등 한류의 새로운 가능성을 예고했다. 베이비복스는 몽골에서 대통령에게 초청을 받아 콘서트를 열었는데, 개런티 대신 공로상을 받고 멤버 당 1000평 크기의 땅을 선물받아 총 5000평의 땅을 선물받고 집 다섯 채도 선물 받아 크게 화제가 되었지만 이후 알고보니 일종의 국가사기를 당한 것이라 비무장지대마냥 팔 수도 없는 땅이었다고 한다.[4]

5. 북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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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6일 SBS 통일음악회 "이선희, 조영남, 설운도, 신화 등과 함께"

몽골에서의 콘서트 이 후 베이비복스는 10월 6일 평양에서 열린 '평양 류경 정주영 체육관 개관식 남북 합동 축하공연' 무대에 섰다. 2003년 10월 5일 육로를 통해 입북해 평양에서 2박 3일 간 머문 후 7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베이비복스는 1999년 중국 진출을 시작으로 아시아 곳곳을 누볐지만 북한 방문은 처음이었다. 베이비복스는 이 날 신화, 설운도, 조영남 최진희 등과 함께 남측 대표 가수로 참가했다. 국내 연예인들의 북한 공연은 수차례 있었지만 버스를 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방북한 것은 처음이었다. 당시 SBS 측은 공연에 참가할 연예인을 선정하는 데 꽤 신중을 기했다. 그룹 신화는 국내 최고의 카리스마와 세련 된 무대, 베이비복스는 신세대 여성 그룹의 대표주자라는 점이 후한 점수를 받았다. 특히 베이비복스는 중국 공연 일정을 연기하는 열성을 보이며 방북 연예인 대열에 전격 합류했다. 공연은 베이비복스 및 신화, 설운도 등 남측 가수들과 북한의 대표 가수 7개팀과 합동 공연을 벌이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공연 실황은 SBS와 북한의 조선중앙TV에서 동시에 생중계되었다.

사실 공연을 앞두고 북한측으로 제재를 받기도 했는데 베이비복스측이 원래 준비해간 의상은 배꼽이 노출된 의상이었고 공연 전 합동리허설에서는 배꼽티를 입고 무대에 올랐으나 리허설 후 북한 관계자의 요청으로 배꼽을 급하게 천으로 덧대어 수정 한 뒤 본 무대에 섰는데, 베이비복스가 공연을 하는 내내 북한 관객들이 모두 할 말을 잃은 듯한 모습이 방송에 그대로 송출되어 아직까지도 베이비복스 굴욕 영상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2011년에 윤은혜가 버라이어티쇼에서 밝힌 바로는 당시 북한 여성들이 정색을 넘어 아주 칠색팔색을 했었다고.. 한국에서도 컨셉 가지고 욕하는 삐딱한 안티들이 있는 마당이었으니 더 보수적인 북한 사회에선 여러 의미로 꽤나 충격이긴 했을듯.

6. 종합

2000년 중국 진출을 시작으로 3년간 아시아 전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오던 2003년은 베이비복스의 해외 인기가 정점을 찍었을 시기였다. 이에 힘입어 2003년 11월 30일, 소속사 DR뮤직은 언론을 통해 그간의 비행 거리를 합산한 자료를 담은 '해외 공연 기네스'를 전격 공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베이비복스가 지난 2000년부터 2003년까지 공연을 위해 이동하면서 쌓은 항공 마일리지는 개인당 10만 5,346마일. 5명을 합했을 경우 무려 52만 6,730마일(약 84만2,760㎞)에 육박했고 이는 둘레가 4만 75㎞인 지구를 20바퀴 이상 돈 것으로, 당시 국내 가수 중 이같은 진기록을 갖고 있던 팀은 베이비복스가 유일했다. 한편 이 자료에서 각국에서의 에피소드도 함께 공개했는데, 여기에는 몽골 공연 당시 전원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정전 사태를 맞아 공연이 30분 간 중단됐던 웃지 못할 사고와, 공연업자가 도망쳐 멤버와 스태프들이 호텔에 강금됐던 사건 등 여러가지 사기 사건, 비행기를 갈아타고 나서 멤버 2명이 없어진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해프닝 등 웃픈 에피소드들이 많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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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핑클은 공식 해체는 아니고 휴지기를 선언했다. [2] 박미경의 4집 수록곡인 <언젠가는>을 리메이크한 곡이다. 아무래도 김창환이 작사, 작곡, 프로듀싱한 곡이라 답정너처럼 된 측면도 있을듯. 속사정을 알 순 없지만 이후 7집에선 김창환과 함께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은근한 힘싸움이 있었던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모든건 추정의 영역이다. [3] 2003년 당시 울란바토르 인구는 약 90만명이었다. [4] 사실 몽골은 과거 공산주의 정권의 영향으로 민주화 이후에도 국토 자체는 개인 소유가 아니다. 건물만 개인 소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