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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복스/활동/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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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은혜의 영입과 콘셉트 변화2. 3집 활동3. 안티의 시작4. 종합

1. 윤은혜의 영입과 콘셉트 변화

이가이의 탈퇴 이후 한동안 4인조로 행사 위주의 활동을 이어가던 베이비복스는 1999년 4월 새 멤버를 영입하는 것으로 결정하여 공개 오디션을 개최한다. 이 오디션에서 당시 잡지 모델로 활동중이던 중학교 3학년의 윤은혜가 지원하는데 1차 오디션에서는 부족한 노래실력 탓에 탈락했지만 오디션 현장에서 노래를 실수하고 벽을 퍽(!)치는 모습을 본 소속사 사장은 "쟤는 깡이있구나"라고 판단하여 탈락했던 윤은혜를 다시 합격시킨다.[1] 유난히 잦은 멤버 교체로 불안정한 라인업을 업고 그룹의 명맥을 유지해오던 베이비복스는 윤은혜가 영입 된 시점을 끝으로 총 세 차례의 멤버 교체 끝에 드디어 안정 된 라인업을 갖추게 되었다. 베이비복스가 2집 <야야야>로 인기를 얻었지만 당시 여성 그룹의 패권은 S.E.S.와 핑클이 양분하고 있었던 실정이었고 2집 자체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요정 콘셉트+폭풍댄스를 끼어 얹은 상황이라 같은 색깔로 따라잡기엔 한발 뒤에 있는 상황이었다.[2] 뭔가 확실한 카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소속사는 고심끝에 ‘라이벌이 없는’ ‘독자적인’ ‘우리만의’ 길로 가기로 결정한다.

베이비복스는 당시 평균 신장이 169cm로 다른 1세대 걸그룹들과는 달리 서구적인 외모의 키도 크고 몸매가 좋은 이 점을 활용해 걸그룹 최초의 섹시 콘셉트를 시도하게 된다. 전 멤버의 완벽한 비쥬얼, 라이브, 보컬, 댄스, 랩까지 완성형 여성 그룹의 모습의 다양한 콘셉트와 섹시 베이스에 시작하게 된 시기이다. 2집과는 180도 다른 모습으로 충격과 신선함으로 무장한 컴백을 예고했다. 전작 <야야야>의 작곡가였던 김형석과 박진영의 작업하에 탄생된 R&B 펑키 댄스곡 <Get Up>을 들고 가요계에 야심차게 컴백한다.

2. 3집 활동

파일:베이비복스_Come Come Come Baby.jpg
베이비복스의 고유 콘셉트와 이미지를 만들어낸 3집 앨범
Come Come Come Baby
1999년 7월 21일 발매

비디오
《Get Up》 (김형석 작곡, 박진영 작사)[3] 베이비복스 최고의 히트곡이자 유행가.

사실 베이비복스는 <Get Up>을 타이틀 곡으로 정하는 것에 대해 용기가 필요했다. 이들이 컴백한 시점에서 볼 때 <Get Up>이라는 곡이 다른 여가수들의 노래와는 장르나 느낌이 생소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차별화 전략이 되어 성공적인 결과를 얻게 된다. <야야야> 시절에 깜찍한 의상을 입고 "하루에도 몇 번씩 네가 보고 싶어/사랑한다고 하나 뿐이라고 예쁘게 안아준다면/혹시 넌 알고 있는 건지 나의 두근거림을"이라며 수줍은 고백을 하던 소녀들이, <Get Up>에서는 배꼽이 노출된 아찔(?)한 의상을 입고[4] "자 이제 내 손을 잡아/이 밤이 다 가기 전에/언제까지 나를 기다리게 만들 거야"라는 은밀한 메시지를 던지며 '베이비복스'의 '베이비'가 무색할 정도로 치명적인 여인의 향기를 풍기며 나타난 것이다. 배꼽 티와 다리를 쓸어올리는 안무와 자극적인 가사 등으로 PC 통신에서는 하루 종일 베이비복스에 관한 이야기로만 뒤덮이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베이비복스는 컴백 주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받게 된다. 일례로 탑급만이 누리는 당시 '문방구 학용품'들과 베이비복스 사진들이 팬시점마다 가득차게 된다. 그 시기에 타 그룹에서 보이던 청순, 요정 콘셉트에서 '쎈캐', '걸크러쉬 ' 컨셉이 독특하게 다가와 대중에게 먹힌 것이다. 다만 99년 당시 너무 어리던 멤버들에게 섹시 콘셉트가 조금 과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보수적이었던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고등학생이었던 멤버 심은진과 간미연, 심지어는 막내 윤은혜는 중학생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중들은 베이비복스가 3집으로 활동하던 당시, "미쳤네, 어디서 감히 여중생, 여고생들이 그런 콘셉트를 하면서 노래하고 다녀? 돌았네!" 라는 등의 말들을 서슴없이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성있는 외모에서 오는 분위기 때문에 대중들은 오히려 매력을 느끼고 심지어 어리게만 보이지 않는 효과(?)까지 얻게 되었다. 의상이나 메이크업이 과하지 않음에도 대중들은 베이비복스에게 섹시함을 느꼈고 <Get Up>의 뮤직비디오는 '한국 역사 상 가장 섹시한 뮤직비디오 중 하나'라는 평을 받았다.

파일:5iOQQqc.jpg
베이비복스가 3집 앨범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음악은 기본적으로 R&B에 펑키 베이스였다. <야야야>와 같은 아기자기한 노랫말에 한번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의 슈가 팝 음악에서 탈피해 한 단계 수준을 높였다는 것이 그녀들의 자신감이었다. <야야야> 때부터 베이비복스와 인연을 맺은 국내 최고의 작곡가 김형석이 프로듀싱한 3집의 타이틀 곡 <Get Up>은 김형석과 박진영이 공동 작업하고 두 사람이 마음껏 실험을 시도했던 곡이며, 90년대 최고의 R&B 그룹 '솔리드' 출신의 김조한이 코러스에 참여했다. 사랑하고 있지만 다가서지 못하고 있는 남자에게 용기를 내어 자신 있게 나에게 다가오라는 내용으로, R&B 리듬의 섹시한 분위기와 파워풀한 펑키 비트가 조화를 이루고, 음산한 여인의 향기를 풍기며 섹시함을 과시한 곡이다. 당시 국내 걸 그룹 음악으로는 한단계 위의 어렵게도 느껴지는 음악이었다. 여기에 타 그룹들의 '율동' 수준의 안무와는 차원이 다른, 걸 그룹이 아니라 보이 그룹의 안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파워풀하고 다이나믹한 칼군무로 무장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대중들에게 "여성 그룹들 중 춤은 베이비복스가 제일이다."라는 인식이 심어지게 되었다. 수련회나 수학여행 장기자랑에서 소위 잘나간다는 친구들은 항상 베이비복스를 할 정도로 춤선이 남달랐다.

첫 1위 장면
파일:TNLgr5q.jpg

1999년 8월 3일, 데뷔 후 첫 1위를 수상한 베이비복스의 모습.

3집에서 이들은 자신들만의 개성을 확실히 굳혔고, 차별화 전략 끝에 마침내 성공을 거두게 된다. <Get Up>은 첫 방영 된 이후 10만 장이 선주문 될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1999년 8월 3일 KBS '뮤직뱅크'에서 1위에 오르는 등, 데뷔 이후 2년 만에 최초로 각종 지상파 정상을 차지하며 1999년 여름을 뜨겁게 달군 인기가요가 되었다. 당시 걸그룹계의 양대산맥이었던 S.E.S.와 핑클에 대적하는 걸그룹 삼국지를 열게 되었다. 간미연이 그룹의 마스코트로 떠오르면서 멤버들 인기들도 점차 높아지고 각종 지면 광고, CF,고정 예능, 라디오, 해외 활동도 시작하게 되는 앨범이다.

3. 안티의 시작

그렇게 성공리에 활동을 하던 와중에 예기치 않은 사건이 벌어진다. 당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H.O.T.의 멤버 ' 문희준'과 간미연이 사귄다는 루머가 H.O.T.의 팬들 사이에 퍼지면서 H.O.T. 팬들에게 공격을 받기 시작한것이다. 무식한 팬덤 H.O.T.에게 베이비복스가 방송에 나올 때마다 수많은 욕설과 야유를 퍼부었고, 침묵시위를 펼치고, 무대 위의 베이비복스가 보는 앞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들기도 했다. 8월에 있었던 팬사인회 현장에서는 한 여학생이 간미연의 사인대 앞에서 문희준의 브로마이드를 꺼내놓고 사인하라고 윽박질러 매니저들이 긴급히 끌어내는 소동이 일어났다.

파일:pG3LiSY.jpg

Killer(김형석 작곡, 김종숙 작사, 원곡: 김현성 <Killer>) 활동 당시 모습.

안티들의 공격에도 베이비복스는 <Get Up>을 이을 후속곡 < Killer>로 활동을 재개한다. <Killer>는 1998년 발표된 김현성의 2집 수록곡이었는데 베이비복스 멤버들과 제작진들이 모두 이 곡을 굉장히 좋아해서 이들의 3집 앨범에 리메이크해서 싣게 되었다. 사실 <Killer>를 녹음할 당시에는 3집 활동 기간이었고[5] 간미연이 메인 보컬로 교체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 빽빽한 스케쥴에 녹음 스케줄을 같이 병행하기가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간미연은 해당 곡을 녹음할때 A파트를 달라고 했고 결국 얼떨결에 심은진이 원래 간미연의 파트였던 후렴구를 녹음하게 되었다.

사실 그 이전까지 심은진은 존재감이나 캐릭터가 확실했던 멤버는 아니어서 회사에서는 메인 파트 자리를 잘 소화할수 있을지 반신반의 했던거 같다. 그럴만도 한것이 <Get Up>으로 인기를 다지고 < Killer>로 자리를 굳혀야 했던 상황이었다. 우여곡절끝에 <Killer>를 녹음하고 첫 방송을 했는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후속곡임에도 불구하고 느낌이 또 다른 섹시 걸크러쉬로서 타그룹에선 볼 수 없는 눈빛과 퍼포먼스로 베이비복스 신드롬을 이어갔다

파일:4laOVah.jpg

간미연 살해협박 사건 신문 보도 자료.

<Killer>로 활동을 재개한지 얼마 안됐을 무렵, 1999년 9월 10일경 베이비복스의 소속사 DR뮤직으로 "널 기필코 죽여 버리겠어. 희준오빠가 없어도 외롭지 않게 해줄게. 몸조심하길."라고 쓰인 피묻은 혈서와 면도날 8개가 함께 우송되어 왔다. 편지에는 간미연의 눈 부위를 도려낸 사진과 8개의 면도날을 동봉해 보내 간미연의 위해를 기도하기까지 하는 일이 발생하여 큰 불안감과 충격을 받은 간미연은 며칠 간 방송 스케쥴을 소화할 수 없었으며, 결국 DR뮤직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며 파문이 일었다. 뿐만 아니라 H.O.T.의 일부 극성팬들은 베이비복스에게 '황산을 뿌리겠다'는 등의 테러위협까지 했다.

뉴스데스크
1999년 9월 11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H.O.T. 극성 팬들의 만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살해 협박사건을 수사 중이었던 서울 강남경찰서는 1999년 9월 15일 강남구 논현동의 베이비복스 사무실에 또 다시 면도칼과 협박편지가 우송됐다는 베이비복스 측의 신고를 받았다. 경찰서 측은 이를 수거하여 서울경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지문 감식을 의뢰했다. 경찰은 또 다시 이런 협박편지가 온 것은 이번 수사에 불만을 품은 또 다른 H.O.T. 팬들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H.O.T. 팬클럽에 대한 정식조사도 검토하였다.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대부분의 협박전화가 끊기긴 했지만 일부 PC통신엔 여전히 간미연의 대한 비난과 은근한 협박이 이어졌다.

그런데도 이를 두고 H.O.T.의 팬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거나 반성의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DR 뮤직이 H.O.T.의 인기를 등에 업고 인기를 얻으려고 언론플레이를 했다'거나 '간미연에게 간 협박편지에 묻은 피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혈액조사를 했는데 매니저의 혈액이었다', '마감뉴스에 자작극이라고 나왔다본 사람은 많다는데 자료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는 기이한 현상'는 등,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을 소속사와 간미연의 자작극이라고 우기며 터무니없는 루머를 재생산하기까지 한다. 물론 H.O.T. 팬들의 간미연 살해 위협 사건으로 인해 베이비복스라는 그룹을 남녀 노소 누구에게나 이름을 알려지게 하여 의도치 않은 유명세로 그룹의 홍보 효과를 얻게 된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H.O.T. 팬들이 주장하던 '자작극설'은 전혀 근거없는 낭설이었다. 상식적으로 9시 메인 뉴스에 보도된 사건이 일개 중형 연예 기획사에서 행한 자작극이었다면 왜 그 어느 방송에서도 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 사건이 자작극이었다면 'fact'를 가지고 방송되는 뉴스데스크에서 과연 사실 확인도 없이 해당 사건을 보도했을지도 생각해 볼일이다. 간미연 사건을 자작극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작 본인들이 하루동안의 소식을 전해듣는 대한민국의 뉴스 방송을 불신하는것과 다름 없다.

첫 1위장면
H.O.T.가 10월 첫째주에 컴백해서 활동이 겹치게 된 후 팬덤의 직접적인 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에 위 논란은 연예 프로그램이나 뉴스 등에 보도되는 등 더욱더 점화가 되었다. 논란이 지속되는 와중에 1999년 10월 10일, 10월 24일 SBS 인기가요 1위 후보가 무려 베이비복스와 H.O.T.였다. 이 날을 기억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PC통신이 완전히 뒤집어졌었다.
일단 Killer는 9월 부터 활동을 했기 때문에 9월 방송분과 10월 방송분이 다 남아있다. 10월 방송분을 보면 유독 간미연 파트에서 함성이 커지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자세히 들으면 이건 함성이 아닌 상대방 팬덤의 공격인 것으로 추정된다. 7,8월에 활동한 Get Up이나 Killer 9월 방송분에서는 이런 현상을 찾아볼 수 없다. Missing You에서도 이런 현상을 찾을 수 있는데, Missing You에서는 발라드 장르의 잔잔한 곡이기 때문에 팬들의 비난이 베이비복스에게 쉽게 전달될 수밖에 없었고 이런 공격에 간미연의 멘탈이 나간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아무튼 베이비복스 인기가 엄청났던 1999년이었다.

4. 종합

간미연 살해협박 소동으로 시끄러워졌던 상황에서도 <Killer>는 <Get Up>을 능가하는 인기를 얻어 SBS 인기가요에서 1위, KBS 뮤직뱅크에서 2주간 1위, KM 쇼! 뮤직탱크에서도 댄스 차트 정상에 등극하며 크게 히트한다. SBS 인기가요에서는 H.O.T.와 무려 3주간 1위 자리를 놓고 경쟁했고 KBS 뮤직뱅크에서도 당시 전설적이었던 조성모와 1위 자리를 다퉜다. 비록 1위는 이들이 아닌 다른 가수와 경쟁해서 수상한 것이었지만,[6] 그야말로 가요계의 별들의 전쟁이었던 1999년 가을, 베이비복스는 매주 음악방송에서 굳건히 차트 TOP3를 지켜냈다.

행사 등에 출연할 때도 몸값이 폭등하여, 예전 개런티의 두 배를 주겠다며 행사에만 참가해 달라는 각 대학과 단체에서의 베이비복스를 모셔가기 위한 경쟁적인 초청 전화도 끊임없었다. 특히 모 부대에서는 베이비복스의 사인을 받아오는 사람에게는 2박 3일의 특별 휴가를 주기도 했을 정도로 당시 군인들에게 최고 인기 그룹이었다. 그녀들이 장병들의 인기를 끌었던 것은 바로 섹시함 때문이었다. <Killer>의 히트 요인은 바로 다른 걸그룹과는 차별화된 콘셉트에서 비롯됐었다.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는 노래를 부르던 다른 걸그룹과는 달리 베이비복스는 가죽 소재의 카리스마 있는 의상을 입고 나와 카메라를 보며 수줍은 미소가 아닌 냉담한 미소를 지었다. 걸그룹으로서는 이뻐 보여야 한다는 편견을 깨부수고 무대 위에서는 남자도 소화하기 힘든 격한 안무를 선보이는 당당함까지 보였다. 결국 이러한 전략이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온것이다. 콘셉트와 가수가 적절히 맞아떨어졌을 때 시너지가 발생한 단적인 예. <Get Up>과 <Killer>로 2연타 히트를 날린 베이비복스는 발라드 넘버 <Missing You>로 두번째 후속곡 활동을 했는데 이 곡 역시 가요차트 최고 8위까지 랭크되며 3속곡까지 히트했고 성공리에 3집 활동을 마쳤다. 이 시기에 CF도 '아이스크림-와', '햄버거-하디스', '쇼핑몰-르네시떼' 등 총 네 건이나 체결하며 상업적으로도 큰 성과를 거둔다. 3집 활동을 마감한 후 연말 시상식에서는 데뷔 후 처음으로 KBS와 SBS에서 본상 수상에 성공했고 MBC 10대 가수에도 선정되었으며 서울가요대상에서는 최고가수상과 본상 총 2관왕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2000년 1월 1일, MBC 7대 가수 스페셜에도 초청받는 기염을 토해냈는데, 이 방송에 같이 출연한 가수들이 김건모, H.O.T., 핑클, S.E.S., 이정현, 조성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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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년 뒤 윤은혜는 당시 본인은 벽을 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2] 사실 2집은 1집의 대실패로 팀과 회사 존폐 자체가 위기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만들어진 거라 후발주자 소리를 듣더라도 안정된 방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2집이 그런대로 괜찮은 성적을 거두면서 베이비복스에게 다시금 새로운 도전을 할 여유가 주어진 것. [3] 당시 작사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박진영이 작사한게 맞지만 앨범 발표 직전 DR뮤직측에 작사가를 자신이 아닌 아내의 이름으로 올려달라고 요청하는 바람에 생긴 해프닝이었다. 덕분에 해당 곡의 작사가는 방송사별로 다르게 표기되는 복잡한 상황이 발생했다. [4] 당시로선 상당히 끈적끈적하고 야릇한, 혁신적인 시도였다! 믿기지 않겠지만 당시 시대상으론 꽤나 앞서갔던 편이었다. 염색한 머리도 방송에서 뺀찌놓던 촌스러운시절... [5] 그 당시에는 방송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음반을 발매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다. [6] 박지윤, 젝스키스등을 제치고 1위 수상을 했으며 이들도 199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