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cdcdcd><colcolor=#000> 버지니 비아르 Virginie Viar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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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2년 ([age(1962-01-01)]세) |
프랑스 리옹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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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패션 디자이너 |
직책 | 샤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2019 - 2024) |
SNS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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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0년대 버지니가 샤넬로 돌아오자 (샤넬의) 작품이 더 순수해지고, 우아해졌거든요. 그녀는 옷에 담긴 호화로움, 즉 장인 정신과 아름다움을 좋아하죠.
그렇지만 그녀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늘 실용적이었어요.
- 에릭 라이트 (Eric Wright) Vogue
샤넬의 3대 수석 디자이너이자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끌로에 컬렉션 중 보헤미안 스타일을 만들었고, 1990년대 후반에
칼 라거펠트가 네오프렌에 꽂혔을 때 '끔찍하다'며
트위드를 제안했다. 현재 샤넬의 트위드 디자인과 젊은 브랜드 이미지를 만든 사람.그렇지만 그녀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늘 실용적이었어요.
- 에릭 라이트 (Eric Wright) Vogue
2. 생애
2.1. 데뷔 전
1962년 텍스타일 중심지로 유명한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나 1968년 아버지의 의대 교수 임명으로 부르고뉴프랑슈콩테의 디종으로 이사갔다. 부모는 모두 의사였지만 어린 비아르는 패션을 좋아했고, 어머니로부터 바느질을 배워 20살에 친구와 너바나(Nirvana)라는 레이블을 만들고,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텍스타일 공장에서 생산되는 패브릭으로 옷을 만들었다.젊은 시절의 가브리엘 샤넬처럼, 비아르는 저지 작업을 더 좋아했다. 특별한 재단이 필요 없기도 했지만, "몸이 옷의 형태를 만들어준다"는 비아르의 생각 때문이었다. 디종의 패션 스쿨에서 패턴과 재단 기술을 연마했고 옷과 주얼리 상점에서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팔지는 못했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내향적이었고, 고객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항상 쇼윈도를 꾸미며 매주 특정 컬러로 룩을 모두 바꿨다.
비아르는 리옹에서 사귄 좋은 집안 출신의 룸메이트를 통해 자클린 드 리브스(Jacqueline de Ribes)의 인턴이 되었다. 드디어 파리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파리 사교계 명사였던 자클린이 완전한 패션 취향과 솜씨를 자신의 브랜드에 활용하기로 결정했고, 당시 그녀의 집에서 작업했던 비아르는 패브릭이 모두 침대에 놓여 있는 환경에 복사기가 욕실에 있었고, 홀로 직원 세 명의 어시스턴트를 도맡아야 했다. 그러니까 전 직원이 네 명 뿐이었던 것.
2.2. 영화 의상 디자이너 데뷔
얼마 후 그녀는 코스튬 디자이너 도미니크 보그(Dominique Borg)의 어시스턴트로 옮겨갔다. 브뤼노 뉘탕(Bruno Nuytten)의 까미유 끌로델과 클로드 를르슈(Claude Lelouch)의 레 미제라블 같은 영화를 통해 그녀의 작품에 찬사가 쏟아졌고, 그녀는 자신의 진정한 소명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비아르의 작업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줄리 델피가 출연한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세 가지 색: 블루와 세 가지 색: 화이트 의상을 1993년, 1994년 연달아 담당했다. W
2.3. 칼 라거펠트 오른팔
마침 가족이 살던 디종의 이웃이 모나코 대공 레니에(Prince Rainier)의 부관이었고, 그가 얼마 뒤 모나코 시민이며 대공의 딸 캐롤린 공주와 친한 칼 라거펠트를 만났고, 비아르는 칼 라거펠트에게 인턴이 필요한지 대담하게 물었다. 운명적으로 때마침 라거펠트는 인턴이 필요했다. 비아르는 곧바로 샤넬이 있던 캉봉가로 가서 라거펠트의 참모였던 질 뒤푸르(Gilles Dufour)를 만났고 비아르는 즉석에서 채용 되었다.라거펠트가 생전에 그녀를 두고 “내 오른팔… 그리고 내 왼팔…”이라 표현한 것은 너무나 유명하다. 30년 이상 샤넬에서 라거펠트와 함께 일한 사람은 비아르였으며, 결국 샤넬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아 패션 스튜디오 디렉터로서 매년 8개의 컬렉션을 감독하는 책임을 맡았다.
정규직이 되기 전, 처음 칼 밑에 들어가자마자 비아르에게 칼은 '이거 어떻게 생각해?', '저 색은 어떤 것 같아?'라고 물었다. 그녀는 당혹스러웠지만 솔직히 얘기했다. 라거펠트 디자인팀의 전언에 따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칼과 버지니는 궁합이 잘 맞았다."고 한다. 버지니는 늘 차분했고, 굉장히 신중했으며 그녀의 존재감과 에너지는 정말 강하고 영향력이 있었다고.
당시 칼 라거펠트의 팀은 소규모였고, 뒤푸르와 라이트 외에 기성복 어시스턴트, 액세서리 디자이너와 어시스턴트, 그리고 뒤푸르의 혈기 왕성한 조카이며 당시 샤넬의 과장된 코스튬 주얼리를 맡았던 빅투아르 드 카스텔란(Victoire de Castellane)뿐이었다. 비아르는 곧 코스튬 디자인 분야에서 다진 실력과 섬세하게 준비한 기술을 어필할 기회를 포착했다.
비아르는 "자수를 맡은 사람이 없다"고 말했고, 그녀는 유명한 자수 공방에 파견 나가 그 뛰어난 프랑수아 르사주(François Lesage)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비아르가 떠올리길 "그(프랑수아 르사주)와 칼은 두 개의 자아였어요. 울라라! 저는 사교적 수완을 발휘해야 했어요."
비아르는 어렸을 적 아빠가 일했던 외과 병원 의사들을 인터뷰하며 친해졌듯, 샤넬에 보물 같은 수공예 작품을 납품하던 특별한 인물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을 즐겼다. 단추 등을 납품하는 무슈 데뤼(Desrues)도 그중 하나였고, 그는 매일 12시에 그녀에게 수트케이스를 들고 왔다. 그리고 마담 푸지외(Pouzieux)도 있다. 그녀는 프랑스 시골 산간벽지에 있는 자신의 농가 축사에 마련된 아틀리에에서 샤넬 수트에 쓰일 특별한 장식용 수술을 만들었다. 그녀의 샘플을 받아보곤 했는데, 그녀가 기르는 말 냄새가 났지만, 비아르는 말을 좋아했기 때문에 향에 개의치 않았다.
샤넬은 2010년대 말 사라질 위기에 놓인 수공예 공방(Maison d’Art) 38곳을 인수했다. 깃털과 조화 공방, 모자 공방, 글러브 메이커, 주름 공예가인 플리터, 그리고 텍스타일과 신발 디자이너가 포함된다. 이들 중 11곳은 ‘19M’으로 통합된다. 파리 북부에 있는 작업 전용 허브의 모습으로 공개된다.
2.4. 끌로에와 샤넬 복귀
비아르는 샤넬을 입는 대신 실비아(Sybilla), 헬무트 랭, 존 갈리아노,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옷을 선택했다. "때때로 재미있고 괴짜 같은 것을 좋아해요. 그렇지만 너무 인위적인 건 싫죠. 제가 멋스러우면서도 현실적인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군요." 비아르가 말하는 ‘벼룩시장 히트 작품’을 포함하는 열정적 미학은 그녀가 하얀 코튼 속치마와 함께 입는 파네 벨벳(Panné Velvet) 파자마 팬츠 같은 스타일에서 잘 드러났고, 이는 곧 라거펠트가 선보인 보헤미안 스타일의 끌로에 컬렉션에 반영되었다.그리고 1992년 칼 라거펠트가 끌로에로 돌아갔다. 1982년 샤넬에 합류하기 전까지 1964년부터 끌로에의 로맨틱하고 시적인 레트로 스타일을 선보인 주인공이었다. 그는 비아르를 끌로에에 데려갔다. 실용주의자였던 라거펠트가 라이트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무엇을 하든 수많은 여성을 주변에 두세요. 개성이 다양한 여성을 말이죠." 1993년 <보그>는 라거펠트에 의해 새롭게 태어나는 끌로에의 정신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잇 걸로 비아르를 소개했다. 당시 비아르는 작가인 칼라 카터(Charla Carter)에게 "재밌는 게 좋다"면서 스노우볼, 초록색 플라스틱 개구리 전화기, 종이로 만든 선인장에 대해 말했다. 이것들은 스테판 루브리나(Stefan Lubrina, 현재는 서사적인 샤넬의 무대장치를 맡고 있다)가 페인트칠했고, 블룸즈버리 아티스트(Bloomsbury Artist)의 작품이 떠오르는 자신의 열정적인 빨강과 노랑 스트라이프로 꾸민 집에 놓여 있다고 한다.
비아르는 끌로에에서 주로 밤에 활동했다. 칼 라거펠트가 늦게 왔기 때문이다. 그는 가끔 밤 11시에 왔고, 종일 샤넬과 자신의 브랜드 라거펠트에 매달려 있었으니 끌로에엔 늦게 올 수밖에 없었다. 끌로에 작업실엔 음악이 항상 흘렀는데 비아르가 있을 때엔 로큰롤을 틀었고, 칼 라거펠트가 디자인하는 시간에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의 음악이 주로 깔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주로 어떤 면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또 다른 면도 조금 가지고 있는 것을 좋아하죠." 나중에 그녀와 라이트는 야식을 먹을 수 있는 나타샤(Natacha)로 향하곤 했다. 당시 패션계 사람들이 즐겨 찾던 식당이었다. 라이트는 비아르의 배우 친구들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았다. 두 사람이 있는 자리에 그들도 함께 모이곤 했던 것이다. 뱅상 랭동(Vincent Lindon), 줄리엣 비노쉬, 이자벨 아자니 같은 배우 모두 뭘 입을지, 어떻게 입을지 비아르의 조언을 굉장히 신뢰했다. 샤넬 수석 디자이너가 된 현재도 프랑스 영화계의 대표적 인물로 손꼽히는 젊은 남녀 배우 모두가 버지니를 엄청나게 신뢰한다.
1990년대 후반 라거펠트가 비아르를 샤넬로 다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 비아르가 원했던 유일한 것은 칼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당시 샤넬로 돌아왔을 때 샤넬이 가장 좋은 시기는 아니었으니까. 칼 라거펠트가 네오프렌 소재만 원할 때의 컬렉션을 준비하며 비아르는 트위드를 좋아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샤넬에서 네오프렌 틀로 찍어낸 새로운 가방은 정말 끔찍했다면서, '다시 로맨틱한 쪽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했다.
버지니가 샤넬로 돌아온 뒤 작품이 더 순수해지고, 우아해졌다. 그녀는 옷에 담긴 호화로움, 즉 장인 정신과 아름다움을 좋아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늘 실용적이었다. 곧 비아르의 프랑스식 보헤미안 스타일은 조용히 라거펠트가 샤넬의 미학을 다시 바꾸도록 영향을 주었다. "그녀는 편안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쉽게 조화시킬 수 있는 것들을 좋아했죠. 버지니는 샤넬에 맞는 참신함을 찾고 있었죠." 현재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비아르가 취하는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2.5. 샤넬 수석 디자이너
버지니의 승진은 전설적인 패션 하우스가 만들어왔을 매끄러운 우아함이 가득 넘치는 그런 것이었다. 패션계 호사가들이 샤넬의 소유주이자 베일에 싸여 있기로 유명한 베르트하이머(Wertheimer) 가문이 라거펠트 대신 또 다른 유명 디자이너를 내정할 것이라고 예상했을지라도, 그 가문이 지속성과 가치 있는 경험, 전문성을 선택할 것임을 보여주는 단서가 많았다. 특히 라거펠트는 마지막 두 번의 컬렉션에서 박수갈채를 함께 나누고자 1987년 이후 라거펠트를 위해 일해온 비아르를 직접 피날레 무대 위로 데리고 나왔다.라거펠트가 세계적인 수준의 아르데코 보물, 그다음 박물관 소장급 18세기 장식품, 그다음에 최첨단 현대 디자인 작품에 둘러싸인 채 살았다면, 비아르는 그다지 인기가 많지 않은 파리 14구에 있는 아티스트 아틀리에에서 살고 있다. 20년 전에 샀지만 개조할 이유를 전혀 못 느낀다. 칼은 이 집을 보고 웃었지만 바꾸지 않았다. 수석 디자이너가 된 현재도 "더 많이 일하고 있어요. 늘 일하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패브릭 공장을 물려주셨고 저는 그곳을 최고로 만들고 싶었어요. 저는 그들이 행복하길 바랐죠."라고 말한다.
가브리엘 코코 샤넬과 칼 라거펠트는 각각 20세기와 21세기의 가장 위대한 크리에이티브였고, 오래 드리웠던 이들의 그림자에 서 있던 비아르는 비교적 소극적이고 몰아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보그는 패션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에서 일하는 가장 덜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일지 모른다고 평가한다. 샤넬의 뮤즈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라며 "다름을 포용하며 그녀는 그녀 자체로 아름답고 독특하다"고 말한다.
언젠가 칼 라거펠트에게 "이런 빈티지 같은 작은 클래식 셔츠 드레스를 만드시는 건 어때요?"라고 물었을 때, 1980년대 샤넬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소피아 코폴라에 따르면 "우리는 절대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아요. 우리는 늘 앞으로 진보할 뿐이죠."라고 말하는 칼 라거펠트의 고집을 꺾고 주제나 일에 대해 다시 논의해보자며 "그것을 늘 새롭게 보이게 만들어요. 그것이 그녀만의 스타일이죠. 절대 복제품같이 보이지 않아요."라고 비아르를 평가했다. 하지만 비아르는 종종 혼자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서 "칼, 어떻게 생각해요? 이거 괜찮아요?’"라고 혼잣말을 하기도 한다고.
2024년 6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3. 컬렉션
3.1. 2021
"그녀는 자신보다 자신의 작품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길 원하죠. 그런 점이 굉장히 모던하다고 생각해요."
- 드 메그레
비아르는
2021 컬렉션을 위해서 영화뿐 아니라 배우들에 대해서도 열정을 쏟았다. 이네즈는 루키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 감독의 <보카치오 70>에 출연한 영화배우 로미 슈나이더와 알랭 레네(Alain Resnais) 감독의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Last Year at Marienbad)>에 출연한 영화배우 델핀 세리그(Delphine Seyrig)에 대해 심층적으로 파고들었다. 두 사람 모두 가브리엘 샤넬의 옷을 입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곧 알아챘듯, 프랑스 누벨바그부터 <레미제라블(2019)>[2]까지 다양한 영화 취향을 지닌 비아르는 ‘현재’로부터도 영감을 끌어내고 있었다. 이네즈가 말했듯 레드 카펫에 서거나 공항으로 가거나 혹은 스타벅스로 가는 여배우를 보면서도 영감을 받는 것이다. "여성의 삶 혹은 일상의 각기 다른 순간을 위한 옷에 더 가깝죠. 거기에는 자유가 깃들어 있어요. 단지 당당한 샤넬일 뿐"이라고 말한다.- 드 메그레
비아르는 코로나 19로 인한 봉쇄령이 내려진 동안 자신의 파트너이며 작곡가 겸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하는 장 마르크 파이요와 두 사람의 25세 아들 로빈슨(Robinson)과 함께 드롬 프로방살(Drôme Provençale)에 있는 평범한 주택에서 보냈다. 비아르가 그 집을 약 20년 전에 매입했을 때 그녀의 피앙세[3]는 그것을 ‘불법 건축물’이라 표현했다. 이후 비아르가 계속 집을 고치고 있지만. 다행히도 프랑스가 엄격한 격리를 실시했을 때, 그녀는 메티에 다르 컬렉션을 마치고 2021 봄 기성복 컬렉션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시골에서 그녀는 자전거를 타거나 풀장에서 수영하고 요리와 청소를 하며 정신없이 보냈다. 집안일을 한 뒤 뒤를 돌아보면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성격이라고.
그녀가 마스크를 쓴 사람으로 가득 찬 파리와 그녀의 스튜디오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2021 봄 컬렉션 작업에 뛰어들었다. 이 컬렉션은 그랑 팔레의 아르누보 스타일 철제 구조물 아래 설치한 상징적인 ‘HOLLYWOOD’ 사인을 흉내 낸 ‘CHANEL’이라는 대형 글자판 무대에서 공개되었다. 샤넬 전문가는 심지어 지원팀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모델들이 코로나 검사를 받는 기간에조차 모든 일이 시계같이 정확하게 돌아가게 만들었다.
이 컬렉션은 크리스토프의 음악을 배경으로 영화처럼 시작했다. 이 음악은 옛 영화에서 가사를 차용하고 있었고, 비아르는 막스 오퓔스(Max Ophüls) 감독의 1955년 작품 <Lola Montès>가 그 영화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모니터로 지켜보던 비아르는 재즈 시대의 흑백 앙상블이 마지막 부분에 등장해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의 세련된 연출을 떠올리게 하자 너무나 황홀해했다.
소셜 미디어를 거부하고 여전히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살아가는 그녀는 짧은 인사를 건네기 위해 무대 앞으로 나가기 전 살짝 움츠린 모습을 보였다.
3.2. 2022
그랑 팔레 에페메르는 샤넬 쇼를 위해 트위드로 완전히 뒤덮였다. 좌석에는 흙빛이 도는 밝은 갈색을, 검정 벽은 팝한 컬러로 장식했으며, 옅은 초록색으로 물든 런웨이는 스코틀랜드의 트위드강을 상징했다. 코코 샤넬(Coco Chanel)이 기반을 닦은 지역이다. 샤넬 하우스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는 그곳에서 산책하며 꽃과 녹색 이파리를 모아 원단 제작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색상을 참고하도록 했다.버지니 비아르는 이런 정신을 이어가고자 했고, 트위드는 2022 컬렉션의 핵심이 되었다. 시골에 있었다는 점에 착안해, 주머니가 많이 달린 헌팅 재킷과 코트는 복슬복슬한 플리스 소재와 결합했으며, 코코 샤넬의 연인이었던 웨스트민스터 공작이 입었을 법한 오버사이즈 남성 재킷에도 트위드를 사용했다. 록모어(Lochmore)에 자리한 웨스트민스터 공작 소유의 오두막과 이튼 홀(Eaton Hall) 저택의 테라스에서 찍힌 사진 속에서 코코 샤넬은 공작의 옷과 고무 부츠를 신고 있다. 비아르는 이 같은 ‘주말 나들이 느낌’을 두껍게 짠 컬러 타이츠에 샤넬 로고가 박힌 고무 웰링턴 부츠나 싸이하이 부츠를 매치해 완벽하게 표현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옷을 입는 것만큼 섹시한 것은 없죠. 저는 언제나 현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행동에 매료됐다."고 비아르가 말했다. Vogue
3.3. 2023
"까멜리아는 샤넬의 영원한 코드다." 버지니 비아르가 선보인 샤넬의 2023/24 가을-겨울 레디 투 웨어 컬렉션은 까멜리아를 향한 헌사다. 거대한 까멜리아 구조물을 배경으로 펼쳐진 패션 쇼에서는 눈길이 닿는 곳곳에서 까멜리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클래식한 블랙 트위드 수트부터 재킷의 버튼과 팬츠의 포켓 위, 슈즈의 발등 장식과 주얼리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크기와 소재, 컬러로 피워낸 까멜리아에는 여성의 우아함을 향한 샤넬의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다. ELLE에펠탑이 보이는 파리 센 강에서 핑크색 자갈이 깔린 길을 거닐며 샤넬 오뜨 꾸뛰르 프레젠테이션이 펼쳐졌다.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버지니 비아르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매력(je ne sais quoi)’을 지닌 프랑스 소녀에게서 영감을 받아 이번 컬렉션을 구상했다. ‘그녀가 입는 것, 그녀가 읽고 생각하는 것, 삶에 대한 그녀의 태도’를 테마로 어떤 드라마틱한 설정이나 기교를 생략하고 가장 프랑스적인 스타일을 선보였다.
버지니 비아르는 ‘야외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며 총 48벌의 컬렉션 중 드레스의 비중은 다소 덜어냈다. 대신 과일과 꽃문양을 시퀸, 크리스털, 깃털, 레이스, 자수 등으로 정교하게 장식한 경쾌한 블라우스와 원피스 등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오뜨 꾸뛰르 라는 무게감을 덜어내고 클래식과 보헤미안 사이를 오간 버지니 비아르의 쿨한 선택이 돋보였다. W 샤넬과 버지니 비아르가 파리지엔에게 바친 이번 컬렉션의 클로징 모델은? 파리가 아니라 한국에서 나고 자란 모델 신현지였다. V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