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뱅상 콤파니
1. 개요
뱅상 콤파니의 클럽 경력을 정리한 문서이다.2. 데뷔
1992년 벨기에의 최고 명문 RSC 안데를레흐트 유소년팀에 입단했으며, 재능을 인정받아 2006년 함부르크 SV로[1], 이후 2008년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적했다.2.1. 맨체스터 시티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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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경기 20골 10도움 |
2.2. RSC 안데를레흐트
The PRINCE is Back
RSC 안데를레흐트가 홈페이지에 올린 슬로건
RSC 안데를레흐트가 홈페이지에 올린 슬로건
산전수전 끝에 18-19 시즌 맨체스터 시티는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까지 이뤄내며 시즌을 마무리했고, 팬들은 좋은 분위기 속에서 콤파니의 재계약 관련 소식이 어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나 본인도 시즌이 완전히 끝난 후 상의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기에, 단지 축구에 집중하기 위해 논의를 미뤘을 뿐 재계약 자체는 당연히 성사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팬들이 대다수였다. 팀과 감독이야 당연히 콤파니를 붙잡을 것이고, 콤파니 본인의 의지로 떠나는 건 상상조차 못 한 시나리오이므로.
하지만 FA컵 결승전 이후에 재계약 협상을 시작한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통수를 쳤단 건 아니고, 본인은 진작 이별을 결심했지만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굳이 라커룸을 뒤숭숭하게 만들 필요가 없었기에 발표를 늦춘 것.
콤파니는 FA컵 우승 다음 날 페이스북을 통해 본인이 유스 시절에 뛰었던 벨기에 1부 리그 안데를레흐트와 선수 겸 감독으로 계약했다는 것을 밝혔다. 두 개의 게시물을 통해 작별 인사를 했는데, 첫 번째 글은 팀과 동료들, 구단주 및 팬들을 향한 감사 인사였고, 두 번째 글에서는 RSC 안데를레흐트행을 결정하게 된 계기와 본인이 다진 각오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진심 어리고 소탈하면서도 깔끔한 글솜씨가 감명깊었다는 팬들이 많다. 선수들에게는 FA컵 우승 직후에 알려줬다고 한다. 나이와 부상 덕에 많은 경기를 뛸 수는 없어도 아직 실력은 여전했고 모두가 그를 붙잡길 원했지만, 콤파니는 그렇게 정상에서 웃으며 떠나는 것을 선택했다. 맨시티 공식 트위터 그야말로 마지막까지 그다운 깔끔하고 단호한 결정에 팬들은 아쉬움과 감사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안데를레흐트 측에서도 곧 오피셜이 올라왔고, 등번호는 이전과 같은 4번이다.
그런데 안데를레흐트가 시즌 개막 후 4경기 동안 2무 2패를 기록하며 21년 만의 최악의 부진에 빠지자 결국 5라운드 부터는 선수 역할에만 집중하기 위해 수석 코치인 사이먼 데이비스에게 감독직을 넘겨주었다. #
그러나 5라운드에서도 팀은 패배했고 6라운드에서는 겨우 승리를 거뒀으나 그후 다시 패배와 무승부를 반복하면서 9라운드까지 1승 3무 5패라는 극심한 부진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결국 2019년 10월 3일 프랑키 페르카우테런이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동시에 단장이던 프랑크 아르네센이 팀을 떠나고 사이먼 데이비스는 코치로 돌아갔다. 그런데 페르카우테런 감독이 선임되었음에도 경기 중에 콤파니가 선수들에게 벤치에서 지시를 하는 등, 코칭스태프를 무시하는 일종의 월권 행위를 하고 있다고 판단한 벨기에 축구협회는 안데를레흐트 구단에 벌금형을 부과하였다.
콤파니 본인은 5라운드까지는 선발로 나왔으나 6라운드부터 고질병인 부상이 재발하여 한동안 결장하다 17라운드에서야 복귀했는데 그 경기에서 다시 패배했고 이후 20라운드부터 다시 선발로 복귀해 시즌 종료까지 잔여 경기들은 정상적으로 선발 출장하였다. 최종적으로는 리그 15경기, 컵대회 3경기를 포함해 총 18경기를 뛰었는데 맨시티에서도 2015-16 시즌 이후로는 부상 때문에 시즌당 평균 20경기 정도만을 뛰었으니 크게 더 뛰지도, 더 못 뛰지도 않은 수준이었다. 그래서 현 시점에서 돌아보면 시티 입장에서의 아쉬움과 별개로, 선수 개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새삼 현명한 결정이었다는 평가가 대다수.
2.3. 은퇴
2020년 8월 17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차기 시즌부터는 온전히 감독직에만 집중하기 위해 미련 없이 선수 생활을 그만두게 되었다.
[1]
함부르크 시절엔 수비수지만 등번호 10번을 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