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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27 13:00:39

백홍권



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정치인, 테크노크라트.

2. 생애

1901년 2월 10일,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진동리 농가에서 태어났다. 이후 광산 기술자가 되어 1931년 10월, 의주 제2광업소 기사가 되었으며 이후 룡천군 경금속양사공장 연구원이 되었다.

해방 이후 평안북도 룡천군 경금속공장 운영위원장 및 지배인으로 일했으며 기술자 확보에 환장해있던 김일성의 스카웃을 받아 1947년 북조선인민위원회 산업국 화학공업처장에 임명되었다. 1948년 10월, 산업성 및 화학공업성 관리국장에 임명, 산업성 부상에 임명되었다. 1951년 2월, 산업상을 겸하고 있던 김책이 죽자 산업성은 경공업성과 중공업성으로 분리되었는데, 백홍권은 중공업성 부상에 임명되었다. 1952년 5월 23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화학건재공업상에 임명되었다.

조선로동당 1954년 3월 전원회의에서 화학건재공업상에 해임, 정준택에게 자리를 내주었으며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이동하였다. 1956년 1월,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김일성이 박창옥, 박영빈, 기석복, 정률, 정동혁 등 고려인들을 조지면서 리종옥을 비롯한 국내 테크노크라트들이 약진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백홍권도 당 공업부장에 임명된다.

1956년 4월, 3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 중앙위원회 공업부장에 유임되었다. 하지만 1956년 12월 4일, 중환으로 인해 사망했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국기훈장 2급을 추서하였으며 내각은 부고를 발표, "고 백홍권 동지는 자기의 모든 활동에서 우리나라의 공업발전과 인민들의 복리증진을 위하여 충실히 복무하였으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공화국 북반부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에 크게 기여하였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고 백홍권 동지가 기여한 공로는 조선 인민의 승리와 함께 길이 빛날 것이다."라고 말해주었다. 이후 공업부장 자리는 공석으로 남았다가 1956년 12월 전원회의 때 당 산업부에 다시 통합된다.

이후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당중앙위원회 부장 직함으로 안치되었다.

3.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