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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2 18:16:04

배휘

裴徽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

1. 개요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이며 자는 문계(文季)로 배무의 아들. 배잠, 배준(裴儁)[1]의 동생으로 사례 하동군 문희현 사람.

2. 생애

하동에서 명성이 높으면서 식견이 있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재능이 뛰어나고 도량이 넓으면서 현묘함을 잘 논했다.

기주자사가 되면서 조공요라는 사람이 관로를 추천하자 그를 문학종사로 삼으면서 불러서 만나보고 관로를 매우 칭찬했다. 후에 이부랑이 되었을 때 왕필과 담론을 나누면서 왕필을 높이 평가했으며, 태화 연간[2] 초에 순찬 부하가 서로 논해 그 취지는 같았지만 어떤 때는 논쟁으로 번져 서로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배휘는 두 사람간의 생각을 소통시켜 두 사람의 입장을 잘 설명해주면 잠시 후에는 순찬과 부하가 다시 사이가 좋아졌다고 한다.

세설신어에도 부하가 현허함을 첫째로 꼽는 명리를 논하는 것에 뛰어나고, 순찬은 현원한 철리를 논하길 좋아해 논쟁이 붙었을 때 두 사람의 논지를 해석해 서로의 생각을 소통시켜 두 사람의 감정을 흡족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배휘의 6대손이 정사 삼국지를 편찬한 배송지다.


[1] 자는 봉선(奉先)으로 다른 친척들은 위나라에서 일했는데, 이 사람만 특이하게 촉한에서 광록훈을 지냈다. 배준의 아들 배월(裴越)은 자가 영서(令緖)로 촉한이 망한 뒤 낙양으로 이동하여 의랑에 임명되었다. [2] 227 ~ 233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