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 1882년 경상북도 문경 |
사망 | 몰년 미상 |
상훈 |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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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13년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경북 문경군(聞慶郡) 초곡면(草谷面) 초곡동(草谷洞)에 거주하였다. 1907년 7월경 이석조의진(李石兆義陣, 일명 馬中軍)에 참여하여 1908년부터 1909년 11월 까지 청도(淸道)·경주(慶州)·영천(永川)·밀양(密陽)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이석조는 경북 청도 일원에서 소규모의 의병부대를 이끌고 활동하다가 1908년 1월 경 순국하였다.
배경신은 1908년 음력 정월 21일 이석조를 비롯하여 의병 6명과 함께 무기를 휴대하고 청도군 대천면(大川面) 방지동(芳旨洞) 이국원(李國源)으로부터 군자금 200원을 모집하였다.
1908년 1월 이석조가 순국한 뒤, 배경신은 스스로 마중군이라고 칭하며 의병활동을 했다.
이리하여 1909년 음력 4월 김윤행(金允行)을 비롯한 의병 14명과 함께 경주군 강동면(江東面) 제정(弟亭) 이진사(李進士)로부터 700원을 모집하고, 1909년 10월 22일 영천읍내 시장에서 활빈당 대장 방인준(方仁俊), 중군 마기흥(馬冀興), 강재선(姜在善) 명의로 청도군 대천면 방지동 이국원에게 공혁문(恐嚇文)을 발하여 동년 음력 12월 12일 상오 12시까지 밀양읍 영남루(嶺南樓)로 100원을 가지고 오라고 지시하였다.
배경신은 이국원이 지참하고 온 100원을 받는 과정에서 대구경찰서 순사에게 체포되었다.
소위 강도죄(强盜罪)로 기소되어 1910년 1월 19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