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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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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 1989 | 2001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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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 1990 |
1990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 | ||||
브렛 세이버하겐 ( 캔자스시티 로열스) |
→ |
밥 웰치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 |
로저 클레멘스 ( 보스턴 레드삭스) |
1990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다승왕 | ||||
브렛 세이버하겐 ( 캔자스시티 로열스) |
→ |
밥 웰치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 |
스캇 에릭슨 ( 미네소타 트윈스) 빌 걸릭슨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번호 35번 | ||||
데니스 르웰린 (1975~19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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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웰치 (1978~1987) |
→ |
윌리엄 브레넌 (1988)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번호 35번 | ||||
빌 무네이햄 (19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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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웰치 (1988~1994) |
→ |
데이브 스튜어트 (1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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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웰치 Bob Wel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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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로버트 린 웰치 Robert Lynn Welch |
출생 | 1956년 11월 3일 |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 |
사망 | 2014년 6월 9일 (향년 57세) |
캘리포니아 주 실 비치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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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이스턴 미시간 대학교 |
포지션 | 선발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77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0번, LAD) |
소속팀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78~1987)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88~19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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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야구 선수.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포지션은 투수였고, LA 다저스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뛰었다.현재까지 메이저리그 역사상 한 시즌에 25승 이상을 올린 최후의 투수로 기록되어 있다.
2. 생애
2.1. 초기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서 네덜란드계 출신으로 태어났다.동부 미시간 대학교에서 투수로 활약했고, 1976년에는 전미 대학리그(NCAA) 챔피언전에 진출하기도 했다.
2.2. 메이저리그 선수 시절
1978년 21세의 나이로 LA 다저스에 입단해 메이저리그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해 뉴욕 양키즈와의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 세이브를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9회초 1점을 겨우 앞섰지만 루상에는 주자가 2명이 나가있었고, 2아웃에 전년도 월드시리즈의 MVP를 차지한 거포 레지 잭슨을 상대하는 매우 긴장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웰치는 잭슨을 삼진으로 잡고 팀의 승리를 지켜냈다. 비록 다저스는 2승 4패로 그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놓쳤지만, 웰치는 데뷔 첫해부터 일약 주목을 받게 되었다.1980년에는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9회 정규 이닝을 단 27명의 최소 선수만 상대하며 완봉승을 거두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날 애틀란타의 유일한 출루는 1루타를 친 1명이었지만, 그마저도 병살타로 잡은 것이다. 이해에 그는 올스타전에 출장하기도 했다. 이듬해인 1981년 양키즈와의 월드시리즈에서는 4차전 선발로 등판했지만 초반에 공략당하며 강판되었고, 후속타가 터진 덕분에 패전은 면했다. 팀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지만, 그의 기여는 사실상 없었다. 1987년 시즌에는 4차례의 완봉승을 기록, 내셔널리그 최다 기록을 세웠다.
1988년에는 오클랜드로 이적했고, 당시 토니 라루사 감독의 신임 아래 데이브 스튜어트 등과 함께 팀의 선발진에서 활약했다. 그해에 친정팀 LA 다저스를 상대로 월드시리즈를 치렀고, 웰치는 3차전 선발로 등판해 1실점만을 하고 마운드를 내려오며 나름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오클랜드는 1승 4패로 다저스에게 무릎을 꿇었고, 그는 친정팀의 우승을 바로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다.
이듬해인 1989년에 선수로서 2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여 1년만에 아쉬움을 풀었다. 하지만 정작 팀의 우승에 직접적인 기여를 하지는 못했다. 당시 웰치는 상대팀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상대로 원정 3차전 선발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하필 당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대지진이 발생하여 경기가 연기되었다. 이후 3차전과 4차전은 이미 1차전과 2차전 선발로 나와 승리를 거둔 데이브 스튜어트, 마이크 무어가 다시 등판해서 모두 승리했다.
이듬해인 1990년은 그의 선수 생활 최고의 해였다. 시즌 동안 27승을 거두어 최다승을 기록했는데, 이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전설적인 좌완 에이스 스티브 칼튼이 1972년에 기록했던 것을 18년만에 재현해낸 것이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웰치는 그해 올스타전에서 아메리칸 리그 선발 투수로 출장했고, 사이 영 상까지 수상했다. 그해 신시내티 레즈와의 월드시리즈에서는 2차전 선발로 나섰지만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고, 팀은 4연패로 우승을 놓쳤다.
1991년 시즌에는 35차례 선발로 출장해 그해 아메리칸리그 최다 선발 등판을 기록했다. 이후 1994년에 은퇴했다. 통산 기록은 211승 146패, 탈삼진 1,969개, 방어율 3.47이다.
2.3. 은퇴 이후
2001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투수 코치로 활동했고, 그해 애리조나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선수 시절을 포함해서 3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이었다.2006년의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회에서는 부모의 모국인 네덜란드 대표팀의 투수코치로 활동했다.
이후 자신이 선수 시절의 전성기를 보냈던 오클랜드에서 투수 코치로 활동하던 중, 2014년 캘리포니아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었다. 향년 57세였다.
3. 선수로서의 평가
다승 부문이 투수의 최고 가치로 평가받던 시절에는 어느 정도 평가가 좋은 편이었다. 1980년대를 통틀어 메이저리그 최다승 3위에 올랐을 정도. 그가 최전성기인 1990년 시즌에 27승을 올린 이후 30년이 넘는 지금까지, 메이저리그에는 아직 시즌 25승 이상을 기록한 투수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하지만 방어율과 탈삼진이 투수의 최고 능력으로 평가되는 2000년대 이후에는 그에 대한 평가가 크게 하락했다. 특히 그가 최전성기인 1990년에 사이 영 상을 수상한 것은 오늘날 매우 비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승수는 많이 올렸지만, 그 해 웰치의 방어율은 2.95로 분명 좋은 성적이긴 했지만 그 해 시즌 최고로 위력적인 구위라고 하기에는 어려웠던 것이다. 지금의 기준대로라면, 당시 방어율과 탈삼진에서 훨씬 뛰어난 기록을 세운 보스턴 레드삭스의 로저 클레멘스가 그해 아메리칸 리그의 사이 영 상을 받았을 것이라는 평가가 중론이다.
게다가 그의 소속팀은 전설적인 도루왕 리키 핸더슨과 호세 칸세코, 마크 맥과이어 등의 강타선을 앞세워 3년 연속으로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오클랜드였고, 27승이라는 기록도 그의 온전한 실력이라기 보다는 강팀에 있었던 덕분이라는 식으로 평가절하될 정도였다. 웰치가 20승 투수로 활약하던 시즌이나 27승으로 사이 영 상을 수상한 그 시즌에도 오클랜드의 플레이오프, 월드 시리즈 1선발은 늘 데이브 스튜어트였다는 점에서 웰치의 팀 내 위상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당장 베이스볼 리퍼런스의 승리기여도(bWAR)만 비교해도 밥 웰치는 2.9였는데 같은 팀의 데이브 스튜어트는 5.2, 약켓맨은 무려 10.4였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2번 차지했지만, 그때마다 선발로 등판해 승리를 기록한 적은 없었고, 이는 그가 에이스로서의 위용을 보여주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가 27승을 거둔 후인 1991~1992년 시즌에 승수가 10승대 초반으로 급락하고, 선수 말기인 1993~1994년에는 10승 미만에 그쳤던 것도 그에 대한 과대평가 논란에 더욱 무게를 실었다.
결국 웰치는 2000년의 첫 명예의 전당 헌액 투표에서 불과 1표만을 얻으며 탈락, 더 이상의 도전 자격마저 잃는 굴욕을 겪었다. 하기야 통산 기록만을 따져도 200승을 겨우 넘겼고, 탈삼진은 2,000개 미만이어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기에는 이래저래 부족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4. 기타
알콜 중독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청소년 시절부터 비롯된 것이었다고.그의 아들인 라일리 웰치(Riley Welch)는 2008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34순위로 아버지가 뛰었던 오클랜드에 지명되었지만, 입단하지는 않았다. 메이저리그 선수 생활을 하는 대신, 대학 야구팀에서 투수 코치로 활동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