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47년 11월 18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시에 위치했던 발렌타인 백화점에서 일어난 화재.2. 발렌타인 백화점
발렌타인 백화점은 J. Ballantyne & Co소유의 백화점으로, 직원이 300명 이상 있었던 대규모 백화점이었다. 크라이스트처치시의 콜롬보 스트리트와 캐쉬엘 스트리트에 위치했었다.
처음에는 1854년에 단순하게 영국계 이민자였던 에스더 클락슨(Esther Clarkson)이 만든 밀짚모자를 파는 가게 '던스터블 하우스(Dunstable House)'로 시작했다. 장사가 잘되자 여성 의류도 팔기 시작했고, 장사는 점점 규모가 커졌다. 장사를 위해 2층 건물을 산 뒤 점원을 뽑았고, 파는 항목도 더 늘렸다. 1864년, 클락슨은 가게와 장사권을 사업가 윌리엄 프랫(William Pratt)에게 팔았다. 윌리엄 프랫은 가게가 나무로 지어져 화재에 취약하단 생각에 벽돌 건물로 바꿀 계획을 세웠다. 이후 가게는 윌리엄 프랫의 아들에게로, 아들에서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발렌타인(John Ballantyne)에게로 옮겨갔다. 가게는 발렌타인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장사가 더 잘되자 아예 백화점으로 바꾸었다. 이후 발렌타인 백화점은 다른 지역에도 가게를 낼 정도로 커졌다.
위층은 대부분에는 드레스메이킹 부서와 회계 부서 등 직원 업무 공간이었다. 2층에는 상품, 주로 의류 생산 공장도 있었다. 백화점은 7개의 작은 4층 건물들이 서로 이어진 형태였는데, 몇몇 건물에는 비상구가 없고, 건물 바깥에는 베란다가 위치해 비상시 사다리를 놓기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다. 또한 건물 내부에 스프링클러가 없고, 건물 바닥을 비롯한 곳곳에 나무 장식이 있어 화재에 취약했다. 거기다 건물을 확장하면서 구조가 복잡해져 초반에 계획한 벽돌 방화벽은 무용지물이 됐다. 2차대전 때 혹시 몰라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긴 했으나 얼마 안가 다시 철거했다.
3. 사고 당시
사고 당일 오후 3시 31분, 여직원이 계단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고 다른 직원에게 알렸다. 연기는 가구 부서 아래의 콩그리브 빌딩 지하실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불꽃도 안보이고 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직원은 여직원에게 소방대를 부르고 점주에게 연락하라 했다. 소방대에 연락하고 기다리는 사이, 초조해진 직원들이 소화기를 들고 불을 진압하어 내려갔다.그런데 얼마 안가 불길이 커지더니 창문이 깨지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도착한 소방대원들은 사태가 심각하단 걸 알고는 크라이스트처치의 모든 소방대원을 동원하려 했으나 전화선에 폭주하는 바람에 지연 됐다. 화재 원인을 찾는데도 10분 가량 지연됐다. 아직 대피 못한 직원들은 급히 옥상으로 대피를 시작했다.
소방관이 도착했을 땐 불이 이미 번지는 중이었다. 하지만 들고 온 사다리가 짧아 건물 윗층에 안닿아 구조에 지장이 있어 다른 더 긴 사다리를 가져와야 했다. 불이 점점 커지고 건물 일부가 무너지는 지경에 이르자 사람들은 창문을 깨고 탈출하기 시작했다. 1층에서 탈출한 사람들은 그나마 별 탈 없이 구조됐으나, 3층에서 뛰어내린 사람들은 큰 부상을 입고 결국 숨졌다. 여성 모자 매장 직원들은 화재 소식을 뒤늦게 알아 대피가 늦어졌다. 슈퍼바이저와 직원 1명만 간신히 탈출하는데 성공했고, 7명은 연기로 질식해 숨졌다.
200명이 넘는 소방대원들이 진압을 시도한 끝에 불길이 약해져 오후 6시 경에 경찰과 자원 소방자, 그리고 소방대원들이 들어가 시신을 수습하고 사람들을 구조했다. 오후 8시엔 불길이 완전히 잡혔다.
화재로 41명이 사망했다. 마지막 시신은 11월 21일이 되어서야 수습할 수 있었다. 이 화재는 뉴질랜드 역사상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화재로 기록됐다.
화재 피해가 커진 것으로 충분히 훈련 받은 경찰관이 적었고, 건물이 도시 건축 규정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 지적됐다.
4. 사고 이후
11월 23일, 희생자를 기리는 합동 장례식이 Anglrican 성당에서 열렸다. 크라이스트처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합동 장례식이었다.Ruru Lawn 공동묘지에는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다. #
발렌타인 백화점은 사고 이후 다른 부지에 백화점을 개장했다. 백화점은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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