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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 제2대 | 제3대 |
발레리 볼로토프 | 이고리 플로트니츠키 | 레오니트 파세치니크 | |
국가원수:
인민의 주지사 정부수반: 총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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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 볼로토프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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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f4165><colcolor=#fff> | |||
본명 |
발레리 드미트리예비치 볼로토프 Вале́рий Дми́триевич Бо́лотов Valery Dmitrievich Boloto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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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0년 2월 13일 | ||
소련
러시아 SFSR
로스토프주
타간로크 (現 러시아 남부 연방관구 로스토프주 타간로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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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2017년 1월 27일 (향년 46세) | ||
러시아 중앙 연방관구 모스크바 | |||
묘소 | 마시킨스코예 묘지 | ||
재임기간 | 초대 국가수반 | ||
2014년 5월 8일 ~ 2014년 8월 14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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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f4165><colcolor=#fff> 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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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계급 | 예비역 상사 | ||
주요 참전 | 돈바스 전쟁 | ||
주요 서훈 |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영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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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발레리 볼로토프는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의 초대 국가수반이다.2. 생애
돈바스의 지위에 관한 국민투표에서 드러난 우크라이나 여권에 따르면 1970년 2월 13일 소련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로스토프주 타간로크에서 태어났다. 1974년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루간스크주 스타하노프로 이주했다. #1988년 소련군에 입대해 제103근위공수사단에서 복무했고 예레반, 트빌리시, 나고르노카라바흐 등에서 발생한 소련 말기 각종 분쟁에 참전했다. # 전역 후 경제, 공학 고등 교육을 이수했다. # 이후 루한스크주의 개인 광산에서 광부로, 육류 공장에서 감독관으로 일했으며 스타하노프에서 공수군 재향 군인 연합 단체를 이끌었다. 2013년 말부터 유로마이단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석했다.
2014년 4월 6일, 볼로토프 주도로 우크라이나 보안국의 루한스크주 청사가 시위대에 의해 점거되었다. 또한 이곳에서 민병대인 남동군이 창설되었다.
2014년 4월 21일, 루한스크주 거주민들의 인민 회의에서 볼로토프는 루간스크주 인민의 주지사 (루한스크 주지사 대행)으로 선출되었다.[1] 이후 루한스크주의 사법부와 집행 기관을 곧 구성될 예정인 새로운 루간스크주 인민의회로 재배치하는 것에 대한 성명서를 내면서 공식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 또한 남동군의 사령관이 되었다.
2014년 4월 27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건국을 선언했다. 4월 29일, 유럽 연합의 제재 명단에 추가되었고 # 이후 캐나다와 미국의 제재 명단에도 추가되었다. #
2014년 5월 13일, 암살 시도가 있었다. # 러시아로 이송되었고 4일 만에 회복되어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으로 복귀했다.
2014년 5월 18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공화국 의회(최고의회) 첫 번째 회의에서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국가수반으로 선출되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은 볼로토프를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 및 불가침에 대한 침해 혐의로 수배 대상으로 지정했다. #
2014년 8월 14일, 부상을 이유로 사임했다. # 사임 직후 모스크바에서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인도적 지원 조직에 참여하고 사회 운동을 조직했다.
2016년 12월, 인터뷰에서 볼로토프는 2014년 본인을 배신하고 국가수반 직위에서 무단으로 해임했다고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이고리 플로트니츠키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국가수반을 비난했다. 플로트니츠키는 볼로토프가 치료를 위해 러시아로 잠시 떠난 것을 사임으로 처리했고, 플로트니츠키의 자랴 대대가 루간스크를 폭격하고 동료들을 숙청하면서 권력을 찬탈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노보로시야가 해체된 이후에도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의 대안인 노보로시야가 우크라이나 당국에 대한 광범위한 운동을 펼칠 수 있는 대안이라고 믿었다. 러시아 연방 공산당에 입당한 사실도 드러났다. #
2017년 1월 27일, 모스크바 자택에서 급성 심부전으로 급사했다. # 사망하기 전 미팅 참석 이후 건강이 안 좋아졌다고 아내에게 말했다고 한다. 미팅에서 알렉세이 카랴킨 전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인민의회 의장과 발레리 사니치를 만나 루간스크 측에 의한 독살설이 대두되었으나, 사니치는 볼로토프가 미팅을 계획했고 자녀 때문에 일찍 미팅에서 나갔다고 해명했다. # 이후로도 아내가 지속적으로 부검을 요청했고, 부검이 이루어진 후인 1월 31일에서야 겨우 땅에 묻힐 수 있었다. #
2022년 9월 15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 #
[1]
같은 날
하리코프 인민공화국 인민의 주지사로 블라디미르 바르샵스키가 선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