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박기로(朴基魯) |
이명 | 박기로(朴埼魯) |
본관 | 고령 박씨[1] # |
생몰 | 1871년 7월 15일 ~ 1938년 1월 7일 |
출생지 |
경상도 고령현 하미면 도진동 (현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2] |
사망지 | 경상북도 고령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박기로는 1871년 7월 15일 경상도 고령현 하미면 도진동(현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의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전국에서 3.1 운동이 일어나자 고령군에서도 독립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결심하고, 4월 8일 밤 우곡면 대곡리에 사는 한이군(韓二君) 외 여러 청년들에게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했다. 이후 4월 8일 밤 11시, 박기로는 나팔을 불어 주민 50명을 불러모은 뒤 독립만세시위를 이끌었다. 이에 고령주재소 순사들이 출동해 그를 비롯한 주동자 6명을 체포했다. 그 후 박기로는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출소 후에는 고향에서 조용히 지냈으며 1938년 1월 7일에 사망했다.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박기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