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박근이(朴根伊) |
이명 | 박상근(朴相根), 박용술(朴龍述) |
생몰 | 1908년 4월 21일 ~ 1933년 10월 |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중도면 덕산리 |
사망지 | 대구형무소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박근이는 1908년 4월 21일 경상북도 청도군 중도면 덕산리에서 태어났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군이 열차편을 이용해 병사들을 수송하고 있을 때, 박근이는 전팔룡, 추진구(秋振求) 등과 함께 수송 열차를 전복시키기로 결의하고 11월 19일 오전 0시 25분 무게 4관(貫)[1]에 달하는 큰 돌을 철로 위에 놓아두고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숨었다. 그러나 일본군 1개 대대와 병기 등을 수송하던 열차는 돌을 15m 정도 끌고 가다가 정지하여 전복되지 않았고, 두 사람은 당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 후 박근이는 1931년 12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기차전복 미수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33년 10월에 옥사했다.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박근이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15k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