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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47:04

박구진

파일:박구진.jpg
성명 박구진(朴龜鎭)
본관 밀양 박씨
생몰 1881년 5월 19일 ~ 1956년 7월 23일
출생지 평안남도 성천군 영천면 조양리[1]
사망지 전라북도 전주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 독립운동가, 의병장.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구진은 1882년 7월 11일 평안남도 성천군 영천면 조양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9년 채응언 의병대에 가담했고, 그해 여름 함경남도 안변군 영풍면에서 군자금을 징수했으며, 음력 11월에 평안남도 순천군 자산면 서창동리에서 순사 몇 명과 교전했다. 그리고 1910년 봄에는 순천군 숭인면에서 군자금을 징수했으며, 음력 9월 중에는 순천군 구룡면 동창리 송감역에서 군자금을 모금했으며, 순천군 남전면 목구도에서도 군자금을 모았다.

박구진은 한일병합 후에도 의병 활동을 계속했다. 1911년 4월 황해도 곡산군 택인리 대현동에서 군자금을 거뒀고, 음력 8월 평안남도 성천군 대곡면 구련동에서도 군자금을 거뒀으며, 음력 10월 숭인면 산막동에서도 군자금을 징수했다. 이후에도 1914년 9월 9월 평안남도 순천군 용선면 숭인동 은산금광 부금에서도 군자금과 군수품을 수합했다. 그러다가 일본 경찰의 추적으로 결국 체포된 그는 1919년 12월 12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고향에 돌아갔던 그는 6.25 전쟁 도중에 전라북도 전주시로 피신했다가 1956년 7월 23일에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박구진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으며, 1996년에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그의 유해를 안장했다. 박구진의 막내아들인 박원재 씨는 "포상을 받던 날 굶는 날이 허다할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며, 2006년에 어려운 환경에 처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을 돕기 위해 1억원을 기부했다. #


[1] 인근의 대평리와 함께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