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박광제(朴廣濟) |
이명 | 수양(秀陽), 동제(東濟), 내화(乃禾), 내목(乃穆), 운양(雲陽) |
생몰 | 1865년 5월 24일 ~ ? |
출생지 | 평안북도 박천군 덕안면 남삼리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박광제는 1865년 5월 24일 평안북도 박천군 덕안면 남삼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만주로 이주해 봉천성 흥경현 위자욕 호륜자에 거주했고, 1922년 2월에 대한의군부(大韓義軍府)에 가입해 흥경지방총관을 맡아 호구조사 및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수행했다. 그러다가 1923년 9월에 대한의군부를 탈퇴한 그는 그해 10월부터 석두문자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대한의용군(大韓義勇軍) 제5중대장 김명봉(金鳴鳳)의 부하가 되어 철령현 외무원 감독을 맡아 1923년 11월 30일부터 1924년 2월 2일까지 군자금 및 독립군 모집 활동을 했다.그러나 1924년 2월 2일 철령일본영사관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고, 조선국재류제국신민취체법(朝鮮國在留帝國臣民取締法)에 의해 1924년 2월 27일부터 3년간 중국 거류금지 처분을 받았다. 이후 그의 경력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박광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