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三好元長(みよし もとなが)[1]1501년 ~ 1532년
미요시 나가히데(三好長秀)의 장남이자, 미요시 가문을 일으킨 미요시 유키나가의 손자였다. 조부의 유지를 이어 호소카와 스미모토(細川澄元)의 아들인 호소카와 하루모토를 따라 조부의 숙적인 호소카와 타카쿠니(細川高国)를 자결시키고 후세에 사카이 바쿠후(堺幕府)라고 불려지는 중앙 정권을 수립한 무장이었다.
2. 소개
아명은 센쿠마마루(千熊丸). 아버지 나가히데가 10세 남짓한 나이때 사망했기에 1520년, 조부인 유키나가가 자결하자 그를 이어 당주가 되었다. 모토나가는 아와에 머무는 대신 적극적으로 기나이에 진출하여 미요시 가문의 지배권을 확립했고, 하루모토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여 숙적인 타카쿠니를 몰아내는 것에 힘썼다. 또한 쇼군과 칸레이를 직접 옹립하여 새로운 중앙 정권을 수립한 것으로 유명하다.자신이 보좌하던 호소카와 하루모토와 함께 사카이 막부를 만들어 또다른 무가 정권을 구상했으나 하루모토와의 사이가 틀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모토와 화친과 반목을 반복했으나 이 둘의 사이는 가신이 살해당하는 최악의 상황에까지 치달았다. 결국 호소카와 하루모토는 미요시 모토나가와 완전히 반목하여, 잇코잇키의 힘을 빌어 모토나가를 공격했으며 이에 모토나가는 열세에 몰려 자결했다. 그의 적남 미요시 나가요시가 뒤를 이었다.
3. 대중 문화에서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
신장의 야망 시리즈에서는 미요시 나가요시 형제들의 아버지라 데이터로 존재. 100만인의 신장의 야망에 등장.
[1]
'나가모토'(長基)라는 이름은 1차 사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