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싱 스페이스 바닐라

물론 상대방의 간곡한 부탁 때문에 마지못해 승낙했을지언정 일단은 내 의지로 맡은 일이니,
아무리 버겁더라도 최소한의 열의 정도는 보이는 것이 사회인의 도리이기는 했다.
회의 주제가 내 전문분야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어 보였다면 나도 마땅히 그 도리에 따랐을 것이다.
굳이 나를 위원으로 섭외했다는 말은 곧 일리노이 전선 종군기자로서의 내 지식과 경험이 꼭 필요했다는 뜻 아니겠는가?
위원회가 진행되는 사흘 동안 기지 내에만 머물며 외부와의 접촉을 일절 삼가 달라는 주최 측의 요청에 군말 없이 따른 것도,
수상하리만치 범위가 넓고 꼼꼼한 비밀 유지 서약에 즉각 동의한 것도 그런 당연하고도 논리적인 추측 때문이었다.
하지만 흠이라곤 없어 보였던 논리의 탑은 내가 참석하게 된 대책위원회의 정체를 알게 된
바로 그 산간에 시카고의 마천루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꼬박 사흘 동안이나 갇혀 있었던 그 회의는 일리노이 전선에 대해 논하는 자리가 전혀 아니었고,
하다못해 남부 전선과 살짝이나마 연관된 주제를 이야기하려는 자리조차 아니었다.
사라진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찾기 위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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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 스페이스 바닐라>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