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문종우(文鍾禹) |
생몰 | 1889년 11월 4일 ~ 1941년 11월 16일 |
출생지 | 평안북도 용천군 동하면 삼인리 |
사망지 | 만주 지린성 유하현 삼원보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문종우는 1889년 11월 4일 평안북도 용천군 동하현 삼인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만주 유하현에서 조직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과 연계하여 군자금 모집 등의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20년 8월 24일 미국 의원단 일행이 한국을 방문하게 되자,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에서는 일제의 주요기관을 폭파하고, 일제 요인을 주살하여 한국 민족의 독립의지를 의원단에게 알리기 위해 결사대를 파견했다. 그는 선천과 신의주 방면으로 파견된 결사대 제3대와 행동을 함께하여 선천경찰서 폭파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국경의 경비가 강화되어 거사에 사용할 무기의 반입이 늦어진 때문에 미국 의원단이 선천을 통과하는 시기를 놓쳐버렸다.이에 결사대원들이 다시 모여 상의한 결과 계획을 수정하기로 결의했고, 1920년 9월 1일 결사대원 한 사람이 선천군청 지적창고(地籍倉庫)에 폭탄을 던졌으나 불발되었다. 그리고 박치의(朴致毅)는 9월 1일 새벽 3시 이학필(李學弼)과 함께 선천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파괴하고 최급경고문(最急警告文) 등 수종의 유인물 수십 매를 살포하고 피신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끈질긴 추적으로 이를 지원했던 문종우를 비롯한 동지 20여 명이 9월 7일까지 모두 체포되었다. 이후 그는 1921년 4월 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고 1922년 8월 4일에 출옥한 후 만주로 망명하여 지린성 유하현 삼원보에 거주하면서 독립운동을 후원하다 1941년 11월 16일에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문종우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