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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1-29 23:28:37

목병

沐並
생몰년도 미상

후한,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로 자는 덕신(徳信).

사례 하간군 사람으로 젊은 시절에 외롭고 가난하게 되었고 원소를 섬겨 이름있는 관리가 되었으며, 융통성이 없었지만 인품은 공정하고 과단성이 있어 권력자에 대해서도 망설이지 않았다. 후에 조조를 섬겨 승상군모연을 지냈다.

황초 연간에는 성고령을 지냈고 교사인 유조가 성고에 들렀다가 현 관리에게 짚과 곡물을 요구했는데, 그 때 메뚜기 가뭄의 피해가 나타나 저축한 곡식이 없었다. 요구에 응하지 못하자 유조의 부하가 현 관리를 욕했고 목병은 노해 유조를 잡아들이려 했지만 유조가 이를 알아채 말로 달아나 이 사건을 보고했다.

목병은 체포되었지만 곤형을 받아 사형을 면할 수 있었으며, 목병은 형기가 끝나자 관리에 복귀했지만 10여 년간 자유롭게 지냈고 정시 연간에는 삼부장사를 지냈다.

241년에 오나라의 주연이 위나라의 번성을 포위하고 제갈근이 조중을 점령했는데, 이 때 오군은 수군의 병사들에게 현산의 동쪽으로 선박용 목재를 베었다. 이 때 장가 출신의 인부와 병사가 식사를 만들어 먼저 익은 사람이 아직 익지 않은 사람에게 말을 걸고 같이 먹자고 했지만 아직 익지 않은 사람이 싫다고 했다.

그러자 먼저 익은 사람이 당신은 목덕신이 될 작정이냐고 물었던 것으로 보아 먼 지역에서도 그를 알 정도로 명성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목병이 장사가 된 지 8년이 지나고 만년에는 지방에 나가 제음태수를 지내다가 부름을 받고 의랑이 되었으며, 60여 세가 되자 목병은 자신이 사망한 후 장례식은 간소하게 하도록 자식들에게 이야기했다.

가평 연간에 병이 심해져 위중하자 미리 매장용 구멍을 뚫어두라고 명령하면서 사망하면 자식 둘이서 시체를 구멍에 놓으며, 큰 소리로 울지 말고 읍만 하라 했다. 부인에게는 장사지내는 것도 하지 말고 조문객도 받지 않으면서 조와 쌀을 담은 음식을 두지 말라고 했다.

또 앞으로도 죽은 자에 대해 관을 내지 않고 묘에 흙을 담거나 나무를 심어서는 안된다고 했으며, 처자식은 그의 말을 따랐다.

그의 아들로는 목운(沐雲), 목의(沐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