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신라의 궁궐 | ||
월성 | 동궁(임해전) | 금성 |
북궁 | 남궁 | 명활성 |
신월성 | 만월성 | 대궁 |
양궁 | 사량궁 | 본피궁 |
기록상에서 등장하는 초기 신라의 궁궐 중 하나.
2. 위치 비정
처음
혁거세 21(기원전 39)년에 궁성(宮城)을 쌓아 이름을
금성(金城)이라 하였다.
파사왕 22년(101)에 금성 동남쪽에 성을 쌓아 월성(月城) 혹은 재성(在城)이라고 불렀는데, 둘레가 1,023보였다.
신월성(新月城) 북쪽에 만월성(滿月城)이 있는데 둘레가 1,838보였다.
또 신월성 동쪽에 명활성(明活城)이 있는데 둘레가 1,906보였다.
또 신월성 남쪽에 남산성(南山城)이 있는데 둘레가 2,804보였다.
시조 이래로 금성에 거처하다가, 후세에 이르러서는 두 월성(月城)에 많이 거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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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사기》
지리지 신라의 궁성과 기타 왕도의 성 }}}파사왕 22년(101)에 금성 동남쪽에 성을 쌓아 월성(月城) 혹은 재성(在城)이라고 불렀는데, 둘레가 1,023보였다.
신월성(新月城) 북쪽에 만월성(滿月城)이 있는데 둘레가 1,838보였다.
또 신월성 동쪽에 명활성(明活城)이 있는데 둘레가 1,906보였다.
또 신월성 남쪽에 남산성(南山城)이 있는데 둘레가 2,804보였다.
시조 이래로 금성에 거처하다가, 후세에 이르러서는 두 월성(月城)에 많이 거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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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성의 위치는 명확히 밝혀진 건 없다. 위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신월성은 일단 저 위치를 역추적해보면 현재의 경주 월성과 같은 위치거나 거의 바로 근처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므로 신월성 북쪽의 만월성은 오늘날의 성동동 전랑지라는 설이 있다. 전랑지는 현재 유구 보존을 위해 공터로 남겨져 있다.
전랑지는 북궁 후보로도 추정되는데 만월성과 북궁의 관계도 명확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