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프로스 공화국 대통령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 #d57800; color: #ffffff;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마카리오스 3세 | 스피로스 티프리아누 | 요르고스 바실리우 | 글라프코스 클레리데스 | |
제5대 | 제6대 | 제7대 | 제8대 | |
타소스 파파도풀로스 | 디미트리스 흐리스토피아스 |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디스 | 니코스 흐리스토둘리디스 | }}}}}}}}} |
<colbgcolor=#ddd,#000><colcolor=#000,#ddd> 마카리오스 3세 Μακάριος Γ |
|
출생 | 1913년 8월 13일 |
영국령 키프로스 파노파나리야 | |
사망 | 1977년 8월 3일 (향년 63세) |
키프로스 니코시아 | |
국적 |
[[키프로스| ]][[틀:국기| ]][[틀:국기| ]] |
재임 기간 | 1960년 8월 16일 ~ 1974년 7월 15일 |
[clearfix]
1. 개요
키프로스의 전 정치인, 대통령.2. 생애
본래 키프로스 정교회 소속의 종교인이었다. 1948년 주교로 임명되고, 1950년에 대주교가 되었다. 키프로스의 그리스로의 합병을 지지한는 에노시스 운동의 주역으로서 그리스계 키프로스 주민들로부터 '민족의 아버지'로 존경받았다. 그러면서도 그리스계와 튀르키예계의 공존을 추구하였고, 이러한 명망에 힘입어 1960년 키프로스의 초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968년 재선되었다.하지만 그리스계가 점차 정국의 주도권을 쥐면서, 구릉이나 고원 지대로의 강제 이주를 명령받는 등 차별 대우에 노출된 튀르키예계 키프로스 주민들은 그리스로의 합병 운동에 반발하여 폭동을 일으켰다. 이에 국가의 분열을 원치 않았던 마카리오스 3세는 키프로스의 독립 수호로 노선을 바꿨다. 이는 그리스로의 합병을 원하던 에노시스 운동파와 그리스 군사 정권의 심기를 건드렸고, 결국 그리스는 키프로스를 합병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어 1974년 7월 13일 마카리오스 3세를 축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