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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7 17:01:38

리재윤



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정치인.

2. 생애

1923년 함경북도에서 출생, 농민운동에 참가했으며 해방 후 중앙당학교를 졸업하고 소련고급당학교로 유학을 다녀온 후에 조직부 서기에 이어 1956년, 조직부 부부장에 임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시기 북한 인물들에 대한 신상정보가 뒤죽박죽이라 얼마나 정확할지는 미지수이다.

1960년 4월, 함경남도 당위원장 임명이 확인되었다. 1961년 9월, 4차 당대회에 출석하여 대회 서기부로 선출되었으며 함경남도 대표로 토론하였다. 당대회 결과 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62년 10월, 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1967년 11월, 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남한 기록에는 1968년 8월, 함경남도 책임비서 임명이 확인되었다고 적고 있는데, 함경남도 당위원장에서 책임비서로 유임된 것인지 아니면 해임 후 재임명된 것인지는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1969년 11월, 내각 수매량정상에 임명되었다. 1970년 8월, 김원빈 장의위원을 지냈다. 허나 1970년의 5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회에서 탈락했으며 수매량정상에서도 1971년 6월에 해임이 확인되었다. 5차 당대회에서 탈락했다는 점에서 해임이 확인되기 전에 이미 해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허나 이후 다른 직무로 조동되었는지 1972년 12월, 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이후 한동안 조용하였으며 1980년 7월, 평안남도 책임비서 임명이 확인, 10월, 6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1981년, 조세웅에게 평안남도 책임비서 자리를 물려주고 강원도 책임비서로 조동되었다. 1982년 2월, 7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4월, 김일성 칠순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1985년 림형구가 강원도 책임비서로 임명됨에 따라 1985년 6월, 당중앙위원회 부장으로 조동되었는데 당시 기록에는 제4경제부장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1985년 10월, 남포시 책임비서 겸 인민위원장에 임명되었으나 1986년 1월에 박승일이 후임으로 임명되면서 해임이 확인되었으며 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도 탈락했다.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1988년 1월, 명백히 급이 낮은 사리원시 책임비서 겸 인민위원장으로 강등된 것이 확인되었다. 1988년 11월 26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채희정의 후임으로 정무원 로동행정부장에 임명되었다. 1990년 4월,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최고인민회의 9기 1차 회의에서 로동행정부장에 유임되었다. 1990년 11월, 정부대표로 튀니지를 방문했으며 1991년 4월, 로동행정부 대표단장으로 중국에서 열린 12차 아태 노동장관 회의에 참석했다. 1994년 7월, 김일성과 강희원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6년 6월 24일, 로동법령발포 50돐 기념보고회에 리종옥, 한성룡, 홍성남, 최영림, 홍석형, 김중린, 김복신, 장철, 중앙인민위원회 경제정책위원장 윤기복과 함께 참석했다.

이후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데, 1998년 7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탈락했으며 만약 자리를 유지했다면 9월, 최고인민회의 10기 1차 회의에서 로동행정부가 로동성으로 개편되면서 리원일로 교체되었다. 이후 행적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3.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