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뤼시스는 플라톤의 대화편이다. 초기 대화편으로 분류되며 주제는 '우정(필리아)에 관하여'.2. 등장인물
소크라테스크테시포스
히포탈레스
메넥세노스[1]
뤼시스
3. 줄거리
3.1. 전제 1 : 히포탈레스의 에로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외곽 아카데미아와 뤼케이온 근처[2]에서 어슬렁거리다가 크테시포스와 히포탈레스와 만난다. 크테시포스와 히포탈레스는 앗 반갑네요 마침 만난 김에 새로 생긴 팔라이스트라 레슬링장에서 저희랑 얘기 좀 하시고 놀죠 하면서 소크라테스를 꼬신다. 그리고 크테시포스는 히포탈레스가 지금 미소년인 뤼시스를 엄청 좋아하는데[3] 이놈 지금 작사 작곡도 하면서 관련된 주접이 장난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 뤼시스를 만날 수 있는 체육관에 가면 괜찮은 애들이 많고 거기 물이 좋으니 함께 가자고 권유를 한다.소크라테스는 새로운 어린애들이랑 노가리 까면서 놀 수 있다는 유혹에 참지 못하고 팔라이스트라로 향한다. 그리고 히포탈레스에게 지금 네가 하고 있는 행위는 고귀한 뤼시스를 찬미하기보단 그런 고귀한 이를 사랑하는 자기 자신을 추켜세우는 것 같다고 면박을 준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마냥 숭배하려 들면 사랑받는 이는 도도하고 오만해 질 뿐이라 말하며 사랑의 전문가인 자신이 뤼시스에게 직접 시범을 보이겠다 한다.[4]
3.2. 전제 2 : 뤼시스와 메넥세노스의 동등한 필리아
소크라테스는 뤼시스와 그 친구 메넥세노스에게 슬쩍 접근해서 안면을 트더니 데리고 놀기 시작한다. 소크라테스는 둘 중 누가 손윗사람인지, 누가 더 잘생겼는지, 누가 더 잘났는지를 묻는다. 둘은 그 우열을 가리느라 항상 다투고 있다고 답한다.[5]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주고받던 중 메넥세노스는 제사를 지내러 가야 해서 잠시 자리를 비운다.3.3. 전제 3 : 수동적인 필리아, 우정과 유용성
소크라테스는 홀로 남은 뤼시스와 대화를 이어나간다. 소크라테스는 뤼시스의 부모가 뤼시스에게 자유를 주지 않고 오히려 노예를 붙여 감시한다는 점을 일깨우며[6] 뤼시스의 부모는 사실 그 자식보다 감시용 노예를 더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묻는다. 뤼시스는 아니라고 반문하고 소크라테스는 이에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감시를 붙이고 자유를 막는지 의논해보자 한다. 뤼시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자기 재량대로 처리할 수 있다 답하고 소크라테스는 뤼시스의 이웃도, 아테네 시민들도, 페르시아 국왕도 능력 없는 자기 자식들을 통제하고 오히려 지식을 갖춘 이를 신뢰하고 일을 맡길것이라 말하며 이를 일반화시켜 그렇다면 사랑을 얻으려면 앎을 가지고 유용한 이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낸다.[7] 뤼시스는 자신이 무용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고 침울해지고 소크라테스는 논쟁이 의도한 바[8]가 성공했음에 우쭐해 히포탈레스에게 사랑하는 자를 다룰 땐 이리 해야된다고 말할 뻔 한다.3.4. 우정이란 무엇인가 :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가설 1)
뤼시스가 주눅들어 끙끙거리고 있을 때, 메넥세노스가 제사를 끝마치고 돌아온다. 소크라테스는 뤼시스를 쉬게 해주기 위해 말상대를 메넥세노스로 바꾸고 뤼시스는 메넥세노스를 혼내달라 요청한다. 소크라테스는 이에 여러 사례들을 들며[9] 우정을 찬미하고 우정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를 시작한다. 소크라테스는 네 개의 가설(1.사랑하는 자가 사랑받는 자에게 친구이다. 2.사랑받는 자가 사랑하는 자에게 친구이다. 3.양 쪽 상호간이 동등하게 사랑해야 그것이 우정이다. 4.셋 모두 우정이니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을 보여주며 메넥세노스와 뤼시스에게 이 중 무엇이 우정인지 묻는다. 둘은 4,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를 선택하나 소크라테스는 사랑받는 자가 사랑하는 자를 좋아하지 않고 심지어 혐오하기 까지 하는 사례를 들며 이를 반박한다. 그러자 둘은 3. 상호간의 사랑이 우정이다를 다시 고르나 소크라테스는 이도 그렇다면 나는 꽃의 친구다, 나는 나무의 친구다라고 말하는 것은 틀린것이냐고 반론한다.[10] 결국 앞에 두 가설(1.사랑하는 자가 사랑받는 자에게 친구이다. 2.사랑받는 자가 사랑하는 자에게 친구이다.)을 검토해보지만 그렇다면 사랑받는 자가 사랑하는 자를 혐오하고 적으로 여기는 사례에서는 1.적이 곧 사랑받는 이에게 친구이다. 2. 사랑받는 이는 적에게 친구이다. 라는 결론이 나와 모순이 되어 네 가설 모두 기각된다.3.5. 서로 비슷한 자 끼리 친구(가설 2)
논의가 결론을 내지 못하고 막다른 길로 들어서자 소크라테스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인용하며 다른 가설을 하나 펼쳐본다. 바로 비슷한 자 끼리 서로 끌린다. 즉 서로 비슷한 자 끼리 친구이다라는 가설이다. 셋은 훌륭한 것 끼리와 나쁜 것 끼리의 사례를 검토하고 나쁜 것은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므로 훌륭한 것 끼리만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며 이 결론(훌륭한 것끼리 친구이다.)에 만족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훌륭한 자라면 스스로가 완벽하고 자족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도움을 줄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반론한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지 않으면 서로 존중하지 않을테고 그렇다면 서로 사랑하고 친구가 될 수 있을리 없지 않겠냐는 것이다.[11] 따라서 비슷한 것끼리 친구라는 가설도 기각된다.3.6. 비슷하지 않은 것들끼리 친구(가설 3)
소크라테스는 이번엔 헤시오도스의 시구를 인용하며 비슷한 것 끼리는 서로 시기하고 경쟁하지만 비슷하지 않은 것들끼리는 서로에게 유익하고 도움을 줄 수 있어 친구가 될 수 있지 않느냐는 가설을 제시한다.[12] 하지만 이 또한 금방 기각되는데 친구인 것의 반대는 적대하는 것이니 비슷하지 않은 것끼리 친구라면 적대적인 것이 친구인 것의 친구이다. 혹은 친구인 것이 적대적인 것의 친구이다 라는 모순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13]3.7.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과 훌륭한 것이 친구(가설 4)
소크라테스는 이번엔 훌륭한 것과 나쁜 것 외에도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 또한 있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이 셋의 조합으로 우정의 정의를 시도해본다. 우선 나쁜 것은 무언가와 친구가 될 수 없음이 증명되었고 그렇다면 남은 후보는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들끼리 친구인 것과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과 훌륭한 것끼리 친구인 것이다. 이 중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들끼리는 서로 비슷한 것들이므로 친구가 될 수 없고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과 훌륭한 것이 친구라는 결론이 남았다. 셋은 이 결론에 만족하며 의술의 비유를 든다. 몸(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14]과 의술(훌륭한 것)은 병(나쁜 것) 때문에 친구라는 것이다.[15] 여기서 둘이 친구인 원인이 나쁜 것이라는 결론 또한 도출해낸다. 소크라테스와 뤼시스, 메넥세노스는 우정이 무엇인지 밝혀냈다고 진심으로 여기게 된다.3.8. 첫째 친구
하지만 뤼시스와 메넥세노스가 만족하고 있는 와중에도 소크라테스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고 이내 얼굴을 찡그리며 생각해낸 반론을 말한다. 몸과 의술은 병때문에 친구이고 이는 건강이라는 또 다른 훌륭한 것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일반화시키자면 훌륭하지 않은 것과 훌륭한 것은 나쁜 것 때문에, 그리고 훌륭한 것을 위해 서로 친구인 것이다. 그리고 건강 또한 다른 훌륭한 무언가를 위해서 몸과 친구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무언가를 친구가 되게 하는 원인인 '첫째 친구'가 나오게 되는데[16] 첫째 친구는 세상 만물을 친구가 되게 하는 궁극적인 원인이기 때문에 무언가 나쁜 것 때문에 친구이지만 무언가 훌륭한 것을 위해 친구일 수는 없게 된다. 그렇다면 첫째 친구는 오직 나쁜 것 때문에 친구가 되는 것으로 나쁜 것이 제거되면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그렇다면 나쁜 것이 사라진다면 첫째 친구가 친구가 아니게 되니 첫째 친구로 말미암아 생긴 세상의 모든 우정은 사라지게 될까?3.9. 우정의 원인은 욕구(가설 5)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욕구의 개념을 꺼내든다. 세상에 나쁜 것이 제거된다면 목마름이나 배고픔 같은 욕구 또한 없어질 것인지 물은 다음 그건 아니고 욕구는 남지만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게 될 뿐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렇다면 우정의 원인은 나쁜 것이 아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욕구가 아닐까 하는 가설을 세운 다음 소크라테스는 욕구하는 것이 욕구되는 것에게 친구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에 히포탈레스의 안색은 밝아지지만 뤼시스는 히포탈레스의 사랑이 껄끄러운지 떨떠름한 반응을 보인다. 소크라테스는 그러거나 말거나 욕구는 본인이 가지지 못한 것을 원함에서 오며 가지지 못한 것은 본성 상 욕구하는 자와 가까운 것이라 말하며 결국 우리는 가까운 것을 사랑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금방 논박당한다. 훌륭한 것은 훌륭한 것과 가깝고 나쁜 것은 나쁜 것과 가깝다. 즉 가까운 것과 비슷한 것을 다른 개념이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비슷한 것끼리 친구라는 가설은 이미 논박당했으니 이 또한 틀린 가설이 된다.3.10. 결론 : 아포리아
소크라테스는 히포탈레스와 크테시포스, 주변의 어른들을 논의에 끌어들여 우정을 정의해보려 했지만 시간은 이미 해질녘이 되었고 곧 뤼시스와 메넥세노스의 하인들이 술취한 채로 찾아와 논쟁은 끝을 맺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떠나는 뤼시스와 메넥세노스에게 우리는 서로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아직 우정이 무엇인지 찾아내지는 못했다 말하며 이야기를 끝맺는다.4. 여담
우정 친애 사랑 등등[17]을 다루는 초기 대화편인데 다른 초기 대화편들처럼 결국 아포리아에 빠지고 끝맺는 대화편이다. 정암학당의 번역자[18]가 케임브리지에 갔을 때 자기가 이거저거랑 뤼시스도 연구했다고 교수한테 말하니까 영국의 교수가 호달달달 님 어려운 것만 골라 하네염 지금 우리 세미나가 재미 없을 수도? 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옛날 연구자들은 위작이라는 얘기도 했고 몇몇 연구자들은 이건 플라톤의 실패작이라는 얘기도 한다. 그런 말이 나올 만큼 뭔가 있기는 한 거 같은데 뭔지는 잘 모르겠고 그러면서도 또 난해한 대화편이다.[19]그러나 그런 난해함이나 조악함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시사점이나 후기 작품에서 떠오르는 주제들과의 연관성 등도 분량에 비해 풍부한 대화편이다. 향연과 파이드로스로 대표되는 후대의 플라톤 대화편과 이후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등에서 이어지는 우정과 친애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한 시작점이라는 의미도 있고. 문제가 있다면 독자가 상당히 플라톤에 도가 튼 고수여야 나름의 독서가치를 발휘한다는 점이다.
[1]
본인 이름을 딴 대화편이 존재하나 그 대화편보다 뤼시스에서 더 주도적으로 논쟁에 참여한다.
[2]
아테네 교외의 유명한 귐나지온(체육관) 들로 후대엔 해당 위치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각각 학당을 세워 학당의 이름으로 유명해지게 된다.
[3]
다른 대화편에서도 자주 드러나는 고대 그리스의 소년애를 다룬 부분.
[4]
항상 무지한 자를 자처하는 소크라테스가 드물게 자신의 앎을 자랑하는 부분이다.
[5]
서로 엎치락 뒤치락 하며 논쟁한다는 점에서 히포탈레스의 일방적인 사랑과 대조되는 상호 동등성이 강조된다.
[6]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어한다 -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자유가 진정한 행복이다 - 뤼시스의 부모가 뤼시스를 사랑한다면 뤼시스를 자유롭게 풀어줘야한다 는 식의 논리.
[7]
뤼시스가 부모에게 일방적으로 사랑을 받는 수동적인 필리아를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우정의 필수 요건이 앎과 유용성이라는 대화편 전체를 꿰뚫는 기본 전제를 도출시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우정을 유용함에 의한 우정, 즐거움에 의한 우정, 훌륭함에 의한 우정으로 나눠 필요로 인한 우정인 앞에 2개보다 훌륭함에 의한 우정이 훨씬 근본적이고 숭고하다 말하며 뤼시스의 결론을 반론했고 현대인들의 윤리엔 이 쪽이 반영되어 더욱 친숙하다.
[8]
뤼시스를 깎아내려 주눅들게 함
[9]
전제 4라 할 수 있는 부분으로 능동적인 필리아의 사례를 보여준다. 이렇게 대화편 내에서 우정의 개념을 다룰 준비를 끝마친다.
[10]
이런 무생물을 사랑하는 사례는 일방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그리스어 필리아(philia)에 상호적 용법, 능동적 용법, 수동적 용법 등의 여러 용법이 있어 생기는 혼동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필리아)를 정의하면서 단어의 용법을 인간 사이의 상호적 우정으로 한정시켜 이러한 혼동 없이 우정을 깔끔하게 정의했고 현대인에겐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 쪽이 훨씬 직관적이고 익숙하다.
[11]
다만 이는 대화편 내 소크라테스가 훌륭함의 용법을 너무 좁은 의미로 잡아 완벽함에 가깝게 해석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냐는 반론 또한 존재한다. 훌륭한 자라도 혼자서 완벽하지 않으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 또 비슷한 것 또한 똑같은 것으로 해석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12]
여담으로 서로 상보적이고 반대되는 성격간의 궁합을 최고로 치는 연애궁합론을 떠올리게 한다.
[13]
이 또한 비슷하지 않은 것을 반대인 것과 사실상 동일어로 너무 극단적으로 받아들인 것 아니냐는 반론이 존재한다.
[14]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흰머리와 분으로 하얗게 물들인 머리를 대조시키며 병든 몸은 나쁜 것이 다가왔으나 아직 나쁜 것으로 변질되진 않은 것으로 정의한다.
[15]
지혜와 사람 간의 관계 또한 예시로 든다. 훌륭한 이는 이미 완벽하므로 지혜를 사랑할 필요 없고, 완전히 무지한 이는 지혜를 사랑할 리 없다.
무지하지만 무지를 아는 이 만이 지혜를 사랑한다.
[16]
여기서 중기 대화편부터 플라톤 사상의 중추를 이루게 되는
이데아론의 편린이 드러나게 된다. 뤼시스를 초기 대화편 중 비교적 후대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하는 윈인이기도 하다.
[17]
그리스어론 필리아(phila)와 에로스(eros)
[18]
강릉원주대 강철웅 교수
[19]
즉 다른 플라톤 대화편들은 비록 어렵지만 그래도 읽다 보면 아~ 역시 플라톤이네~ 싶을 정도로 의미 있는 점이 있다고 한다면 이 뤼시스가 실패작이라고 할 만한 이유는 도대체 왜 이렇게 조잘조잘 떠드는 거고 그 의미가 뭔데 싶은 순간이 많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다른 대화편 중 사랑, 우정을 다룬 중기의
향연과
파이드로스가 이야기 하는 내용과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은 덤이다. 그래서 플라톤 치고는 못 쓴 실패작이라는 평가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암학당 번역자는 슴슴한 평양냉면같이 많이 먹다 보면 진가가 나온다고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