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20629,#000036><colcolor=#fff> 루돌프 율리우스 에마누엘 클라우지우스 Rudolf Julius Emanuel Clausi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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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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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22년 1월 2일 |
프로이센 왕국 포메른 코샬린 | |
사망 | 1888년 8월 24일 (향년 66세) |
독일 제국 본 | |
학력 |
베를린 대학교 (수학, 물리학 /
학사) 할레 대학교 (물리학 / 박사) |
직업 | 이론물리학자 |
소속 |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 본 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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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물리학자. 엔트로피의 개념을 도입하며, 열역학을 정립한 물리학자이다.2. 생애
클라우지우스는 1822년 1월 2일에 포메른주 쾨슬린[1]에서 여섯째 아이로 태어난다. 그의 아버지는 정부의 학교위원회에서 일을 했으며, 작은 사립학교의 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클라우지우스는 아버지의 학교에 다니다가 김나지움으로 전학을 갔고 1840년에 졸업을 했다. 그의 형에 따르면, 클라우지우스는 굉장히 리더십에 있었고, 학생들의 신임을 받는 학생이었다고 한다.1840년에 베를린 대학교로 진학을 했으나, 처음에는 역사학에 관심이 생겨 역사학을 전공하려 했으나, 결국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는 것으로 맘을 정한다. 그 후 학사학위를 받고, 할레 대학교에서 '지구 대기의 광학적 효과'라는 논문으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본격적인 물리학자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1870년 비스마르크가 독일 통일을 목적으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일으키자, 독일에 대한 애국심이 강했던 클라우지우스는 50세의 늙은 몸을 이끌고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본 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구급대를 만들어 전쟁을 수행했으며, 전쟁에서 다리에 부상을 입어, 남은 일생을 불편한 다리를 가지고 살아야 했다. 하지만 1871년 전쟁수행에 대한 공로로 정부에서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1875년 아내인 아델하이트 림파우가 세상을 떠났고, 혼자서 여섯명의 자녀들을 양육했다. 1868년 그는 엔트로피 개념과 열역학 제2법칙에 대한 공로로 영국 왕립협회의 회원으로 선출되기도 했으며, 1879년에는 왕립협회에서 코플리 메달을 수여하기도 했다. 그 후 10년 넘게 혼자 살던 클라우지우스는 1886년 소피 스택과 재혼하여 아들을 낳고, 1888년 노환으로 사망하게 된다.
3. 업적
사디 카르노가 제안한 카르노 기관에서 보존되는 양으로 고전적 엔트로피를 정의했다. 이를 바탕으로 열역학 제2법칙을 정립했다. 1865년 클라우지우스는 열역학 법칙을 정리한다. 첫번째는 우주의 에너지는 일정하다. 두번째는 우주의 엔트로피는 최대가 되려는 경향이 있다. 다만 그는 우주의 엔트로피가 어째서 최대가 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는 본질적, 미시적 이유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나중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과 루트비히 볼츠만이 이를 통계적, 확률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확률적으로 차가운 곳에서 뜨거운 곳으로 열이 이동할 확률보다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열이 이동할 확률이 훨씬 높다는 통계역학적 해석을 내놓게 된다.클라우지우스은 실험보다는 엄밀한 수학과 추상성, 합리성을 중요시했다. 그래서 이론물리학의 선구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사실상 고전열역학의 창시자이고 그의 업적은 동시대 같은 분야의 학자들인 헬름홀츠나 캘빈 경보다 더 먼저 더 중요한 업적임에도 매우 내성적인 사람이라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학자이기도 하다. 만약 엔트로피의 단위(joule/Kelvine)를 만든다면 단연 그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타당하다.
클라우지우스-클라페이론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