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동토의 여명/에피소드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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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1~20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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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21~34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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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35~44 (10) |
살기 (총 10화) | |
4장 45~52 (8) |
계략 | 다이라X다이라 | 구출 작전 | 출격 | 결투 | 일격 | 검의 힘 | 착수 | |
5장 53~59 (7) |
함정 (총 7화) | |
6장 60~65 (6) |
잿빛늑대 | 탈출 | 무라이 | 우기 | 촉각 | 꽃길 |
네이버 웹툰 동토의 여명 1부 4장의 줄거리를 정리한 문서.
1. 45. 계략
비자수리와 테라부락 간의 전투가 벌어졌던 그날. 검푸른 밤하늘을 비자수리들이 무리지어 헤치고 날아온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테라부락의 거대 풍뎅이가 그 앞을 가로막는다.
" 무라이님!!! 위쪽입니다!"
무라이는 위를 살핀다. 빠르게 낙하하는 테라부락 병력. 무라이는 황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지만..
순식간에 다가온 테라부락 병력의 우두머리에게 공격을 받아 탈이 벗겨지고야 만다. 테라부락 우두머리는 광석을 깎아만든 투박한 창을 겨눈다.
"ZAR'L RIJUSHA!!!" |
약간 녹색빛이 도는 피부하며, 길쭉하고 날카로운 송곳니하며, 투박한 투구와 무기에다가 이질적인 언어까지. 인간과 닮았지만 오묘하게 다른 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야만인이다.
"으레껏 주고받던 예조차 생략한 채였습니다. 놈들은 이상할 정도로 흥분해 있었죠. 이전까지 난투가 고공에서 원을 그리듯 서로의 후미 진영을 쫓는 형태였다면 이번엔 달랐습니다. 두 진영이 한데 엉켜 지면을 향해 곤두박질쳤죠..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됐다 느낀.. 바로 그 순간!!"
"땅속을 뚫고 나온 무덤겁과 잔겁들이 두 진영을 덮치더군요. 놈들은 선비든 부족민이든 가리지 않고 공격했습니다.. 절반의 병력이 희생되었지요, 두 진영이 엉킨 채로 습격을 받은 탓에 피해가 더 컸습니다. 선힘을 써볼 틈도, 회피 기동할 틈도 없었으니까요.."
무라이는 끔찍했던 그날의 잔재를 회상한다. 아밈과 달 미르는 조용히 그의 말을 듣는다.
"게다가, 겁들의 이빨을 가까스로 피한 이들 역시 열에 아홉은 중상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그 상태론 포위망을 뚫기 힘들겠다 판단한 저는 마라흔산 남쪽동굴에 선비들을 숨기고 수호진을 펴도록 했지요.."
"가능한 선비들 곁을 지키고 싶었으나 저 이왼 놈들의 포위를 뚫을만한 이도 없었거니와.. 이는 명백한 매복! 즉 아군 혹은 테라부락의 정보체계에 빈틈이 생겼다는 것.. 결국 비보를 직접 들고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라이의 눈은 결의에 가득 찬 용사의 눈처럼 뚜렷하다.
"겁들에게든 테라부락에게든 남은 선비들이 발각되는 건 시간 문젭니다. 당장 서두르지 않으면.."
잠자코 듣고 있던 달 미르가 입을 연다. 그는, 뒤에 서 있던 하눌동인들에게 지시한다.
"일단 무라이님을 푸른고야로 모시게. 뒷일은 아밈님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거길 안가면 누가 간단..!"
무라이가 고집을 부리자, 아밈은 조용히 무라이의 뒷목을 가볍게 쳐서 그를 기절시킨다. 아밈은 의기양양하게 팔짱을 낀다.
"집정자님의 명은 나만이 불복할 수 있다는 걸 모르나, 모시고 나가게!"
"예."
달 미르는 어이가 없어 속으로 중얼거린다.
'아밈님도 안 되거든요?!'
하눌동인들이 무라이를 푸른고야로 옮기러 간 후, 그 자리에 있던 나르못 하나가 말을 꺼낸다.
"난감하군요.. 마라흔산은 테라부락 내륙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잖습니까.. 그곳까지 병력을 투입하는 건 협정 위반이나 다름없는데 그들이 과연 보고만 있을까요?"
그의 말을 들은 하눌동인 하나가 물고 늘어진다.
"지금 수십의 선비들이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한가로이 협정이나 따지고 있자는 겁니까?! 병력이든 뭐든 동원할 수 있는 건 다 동원해서라도 구해내야지요!"
"말씀이 지나치시네! 테라부락과의 협정은 자네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란 말일세!"
"그게 수십 선비들의 목숨보다 중하단 말입니까?"
"협정이 틀어져 가르만 협곡이 닫히기라도 하는 날엔 수만의 백성이 빈민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걸 정녕 모른단 말인가!"
점점 가열되는 논쟁.. 또 다른 나르못 하나도 하눌동인을 노려본다.
"수만의 백성이 아니라 그대들 나르못의..!!"
듣다 못한 아밈,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친다. 아밈은 극심한 두통이 찾아온 모양이다.
"나가 계시게 다들.. 이 일은 집정자님과 상의 후 내 곧 하달토록 하겠네."
아밈의 명에 나르못은 쯧, 혀를 차고는 아니꼬와하며 자리를 뜬다.
"후.." 달 미르는 한숨을 내쉰다.
"... 지금 즉시 출격 가능한 비자수리와 고등선인이 얼마나 됩니까..?"
지금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공용도가 달 미르의 질문에 답한다.
"... 송구스럽습니다만.. 이는 고등선비나 수리의 머릿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줄 아뢰옵니다."
"그럼, 별다른 계책도 방법도 없단 말입니까?"
"지금껏 고등선비들이 무덤겁과 마주해 살아나온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이지요.. 거기다 부상당한 선비들까지 구출해 오자면 오천의 병사가 호위해도 모자랄 것이옵니다. 하지만.."
"... 하지만?"
"하지만 아밈님께선 묘책이 있으실지도.."
"!" 애꿎은 아밈에게 불똥이 튄다.
"아밈님?"
"음.."
아밈은 당황하며 이마를 짚는다. 아밈은 공용도에게 눈을 흘긴다.
"왜 절 보시는지요..?" 공용도는 세상 능청스럽다.
"후.."
아밈은 한숨을 내쉬고는 품속에 손을 넣는다.
"이겁니다.."
아밈이 꺼낸 것은 다름아닌 목단검..!! 달 미르는 흥미로워한다.
"호오.. 이것이 바로.. '검의 유물'이란 겁니까?"
"예, 이게 바로.."
아밈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달 미르에게 뒤늦게 이상함을 느낀다. 대체, 어떻게..? 아밈의 뺨에 땀이 맺힌다.
"... 집정자님"
"왜요.. 제가 모르고 있을 거라 생각하셨습니까? 검의 존재도, 검의 힘을 계승한 아이에 관해서도?"
달 미르는 그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아밈을 농락하듯 말한다.
"그 이야기는 차차 나누기로 하지요. 우선은 당면한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순서 아니겠습니까?"
정적이 흐른다. 그리고, 누군가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2. 46. 다이라X다이라
"부탁.. 부탁한다!"
"예?"
아주는 팔짱을 끼고 쭈뼛거리며 다이라에게 말한다. 하지만, 다이라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 이건 부탁이 아니잖아요?"
"왜? 아니야?"
"아니에요!!"
다이라의 얼굴이 붉어진다. 다이라는 뾰루퉁해져선 홱, 뒤로 돈다.
"하여간 전 몰라요! 혼자선 들어가지도 숨지도 못하실 거면서 오만불손하기는..!"
아주는 말없이 다이라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그냥 제 갈 길을 가기로 한다.
"하는 수 없지."
다이라가 깜짝 놀라 다시 뒤를 돌아본다.
"혼자 가다 걸려서 독방에 갇히는 수 밖에.. 아마 한 십 년간은 나 보기 힘들 거야~!"
허, 고단수구만.
"너.. 너무 하세요 정말!!"
다이라는 두 손을 꽉 쥐고 울먹거리며 아주의 뒷통수에 대고 외친다.
"소녀의 순정을 가지고! 벌 받으실 거에요!!"
"... 소녀? 의 순정??"
아주는 얼마 전 걸음나무 사건 때를 떠올린다.
"그래.. 그 순정 때문에 하마터면 죽을 뻔 했지.."
"그, 그렇다면.."
다이라는 결심한다.
"알아서 하세요! 십 년이든 백 년이든 기다릴 거니까! 어디 실컷 조롱하고 무시해 보세요!"
"이, 이게 아닌데..?"
예상치 못한 다이라의 반응에, 아주는 머쓱해하며 중얼거린다.
"그러게!! 지금껏 잘 도와줬으면서 갑자기 왜 토를 달고 그러는건데? 그동안 어긴 법도는 어쩌고 새삼스럽게 켕긴다는 거야 뭐야?"
"어긴 법도 때문이 아녜요!"
"그럼?"
"부탁을 명령처럼 하시니까 그렇죠! 이유도 안 알려주시구.."
아주는 다이라를 지켜보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며칠 전, 그러니까 아밈이 무덤겁을 치러 가기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한다.
"며칠 전.. 녹망 관리지구에서 우연히 아버지와 마주친 적이 있었지. 그런데 아버지 반응이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거야. 그땐 나도 급한 용무가 있던 터라 깊게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나오고 말았는데, 그런데 다시 찾아뵀을 땐 이미 나르골 경계지역으로 시찰을 떠나버리신 후였지 뭐야."
그야말로 똥싸다 끊긴 기분이로군.
"놓치면 안 되는 걸 놓쳐버렸을 때의 낭패감이란.. 그때 깨달았어.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아버지의 그 표정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 그게 뭔데요?"
"그건 분명.. 아버지가 나 몰래 일을 벌이시다 내게 들켰을 때 짓던 그런 표정이었어! 그 표정.. 십 여년이 지났는데도 그 표정만은 그대로인 게.. 그러게.. 그때 바로 알아차렸어야 하는 건데.."
아주의 눈동자가 콩알만 해진다.
"지금껏 아버지가 내게 숨기는 일들은 보통 말도 안 되게 어마무시한 일들 뿐이었던 데다.. 따져 묻는다 한들 숨기자 작정하신 일을 황소고집 아버지께서 순순히 말씀하시겠냔 거지."
"그래서 생각해낸 게 몰래 들어가 염탐하는 거라고요?"
"응.. 이는 임무가 아닌 사적인 문제.. 게다, 전쟁을 치르는 전선에서야 결과만 좋으면 자차분한 법도 따위 누구도 신경쓰지 않지만 아버지 집무실에 숨어 들어가는 건 그렇지 않단 말이지.. 설령 잘 풀린다 해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일.."
아주는 다이라에게 등을 보이게 선 채 팔짱을 낀다. 아주는 민망한 듯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 너한테 그런 명령을 하고 싶지.. 아, 않았으니까.."
"... 아주님.."
다이라의 얼굴은 홍조를 띈다. 서서히 아주에게 다가가는 다이라.. 아주는 뒷걸음질친다.
"왜, 왜?"
울먹이던 다이라의 눈이 금세 연모의 눈으로 바뀐다. 다이라는 아주에게 달려들어 그를 와락 안는다.
"아주님!!"
그리고.. 아주는 화륵, 푸른불로 답을 대신한다.
* * *
자, 어쨌든, 아밈의 집무실에 숨어든 염탐꾼은 바로 아주와 다이라였던 것이다. 둘은 아밈의 집무실에 잠입해, 아밈이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린다. 아주의 뒤에서, 다이라가 슥 얼굴을 내민다.
"푸른불 많이 맞으면 죽을 수도 있지 않나요?"
"그러니까 맞을 짓하지 말라고!"
아주는 꽤 과격한 다이라의 애정행각에 한소리한다.
"하지만 다이라.. 불아비도 속이는 너의 그 탁월한 잠행술은 내가 인정한다..!"
"지, 지금까진 운이 좋았죠.."
다이라는 왜인지 좀 시큰둥하다.
"운도 실력인 거 몰라?"
아주는 뒤를 돌아본다.
"정말이야.. 다이라 네가 나랑고스에 있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넌 아마 모를 거다."
다이라 얼굴이 빨가스름하다. 아주는 그런 말을 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다시 아밈을 기다린다.
"들어오실 때가 됐는데.."
그때..
"!"
다이라, 아주를 뒤에서 껴안는다.
"다이라???"
그 천하의 아주 얼굴에도 붉은 기가 돈다. 다이라의 입가는 살짝 미소짓는다.
"전 나랑고스가 아니라.. 아주님 곁에 있고 싶어요. 이렇게요.."
"미쳤어? 지, 지금은 아니라고!"
"왜죠? 전 지금보다 좋은 때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다이라는 이런 기회가 올 것을 미리 염두에 둔 듯, 아주의 목께를 꽉 끌어안아 제 몸을 밀착시키곤 절대 놔주질 않는다. 다이라는 지금까지의 서러움을 토로한다.
"조금 다가가면 푸른불에 태워지기 일쑤..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가 혼자 눈뜨는 거.. 더는 싫단 말예요.."
다이라의 토로에는 슬픔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때.. 뚜벅뚜벅 소리가 들려온다. 화들짝 놀라는 아주.
"들어왔어! 들어왔다고!"
"잘 됐네요. 적어도 지금은 푸른불에 기절할 일은 없을 테니.."
아주의 얼굴이 붉어지고 이마엔 송글송글 땀이 맺힌다. 하지만 다이라는 아련하고도 서글픈 눈빛을 하고는, 절대로 그를 풀어주지 않는다.
"아주님이 그러셨죠? 이건 명령이 아니라 '부탁'이라고.. 그 부탁 들어드렸으니, 이젠 아주님이 제 부탁 하나 들어 주세요.."
"뭐, 뭔데..?"
아주는 긴장한다. 다이라는 눈을 꼭 감고 뜸을 들인다.
"이렇게 있게 해주세요.. 아주님이 푸른불을 쓰거나 제가 힘을 해제하지 않는 이상 저들은 절대 우리를 볼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지금 여기서 꼭.. 이따가, 이따가 들어줄게..! 응?"
"거짓말.. 제가 싫은 거죠?"
"싫고 좋고 하는 문제가..!"
"알아요, 그런 문제 아닌 거.. 정말 잠깐이면 돼요.. 이런다고 은신술법이 풀리거나 약해지진 않으니까요.."
"... 으이그.."
약간의 실랑이를 벌이는 둘.. 결국 아주는 다이라의 부탁을 들어준다.
* * *
잠시 뒤.. 아주는 아밈과 달 미르의 대화를 엿듣는다.
"왜요.. 제가 모르고 있을 거라 생각하셨습니까? 검의 존재도, 검의 힘을 계승한 아이에 관해서도?"
"살벌하구만.."
"그 이야기는 차차 나누기로 하지요. 우선은 당면한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순서 아니겠습니까?"
다이라는 위기감을 전혀 안 느끼는지, 여전히 아주에게 살포시 기대어 편하게 눈을 감고 있다.
"이 와중에 너도 참.."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집무실에 숨는 것도.. 전쟁을 치르는 것도.. 제겐 모두 자차분한 일일 뿐이라는 걸요.."
"... 아버진 어디서 이런 아일 데리고 오셨는지.."
"그러게요.. 이 다이라를 왜 데리고 오셨을까요.."
3. 47. 구출 작전
"어쨌든 무사히 돌아오셨으니 검의 유물이 힘을 발현한 거라 생각해도 되겠지요?""... 뭐든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시로군요. 다른 건 필요없습니다. 하눌선비 두 동아리만 내주시면 됩니다."
"유물의 능력이 효과적이긴 하나 그걸 온전히 다룰 수 있는 자는 '검' 말고 없다 들었습니다만.."
아밈이 쿨럭, 피기침을 하자 달 미르가 정곡을 찌른다.
"아밈님의 몸 상태가 말이 아니라는 건 굳이 선의를 부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공용도도 거든다.
"불아비의 몸이었기에 망정이지, 보통 사람 같았으면 지금쯤 황천길에 가 계셨을 겁니다."
"이번 일은 제게 맡겨 두시고, 달왕께선 몸이나 추스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렇다면 어쭙겠습니다! 집정자께선 무덤겁으로부터 선비들을 구해 올 방도가 있으신지요?!"
달 미르의 입술이 단단히 굳어진다. 달 미르는 무겁게 입을 연다.
"테라부락 경계지에 칼리그 암전사들이 대기 중에 있습니다. 나랑고스와의 동맹을 위해 그들 스스로 기꺼이 뛰어들었지요."
"저와 상의도 없이 그들을 이 땅에 들이셨단 말입니까?!"
달 미르는 문서 하나를 꺼내 보인다.
"칼리그 무리와의 동맹협약을 피하고자 자리를 비우신 건 달왕님이십니다! 여기 인가한다는 직인이나 찍어 주시지요.. 그들을 잘만 이용한다면 선비들이 위험에 노출되는 것도 막고 테라부락과의 불필요한 마찰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도움 따위 필요 없습니다! 제가 가서 그들을 구해 오겠습니다!"
"지혈부터 하시는 게.." 공용도가 옆에서 한마디한다.
"... 이런 행동은 왕국의 분열을 야기할 뿐입니다. 나르골을 위한 왕국이 아니라.. 왕국을 위해 나르골이 있다는 걸 보여주셔야 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지요?"
달 미르는 끝까지 제 뜻만 몰아붙이곤 자리를 뜨려한다.
"... 아무튼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더 이상의 이의 제기는 없는 걸로 알고 전 이만.."
그때, 누군가 그들 앞에 나타나는데..
"집정자님."
나타난 이들은 바로 아주와 다이라..!!
"여기 검의 유물을 다룰 고집불통 불아비가 한 명 더 있습니다!"
"아주님?"
"비자수리들의 목숨을 얼굴도 모르는 놈들에게 맡긴다는 것이 영 내키지가 않아서 말이지요."
"그래, 여기 또 한 명의 불아비가.."
아밈은 아주의 말에 동감하며 좋아하지만.. 뒤늦게 아주가 있어선 안 될 곳에서 나왔단 걸 깨닫는다.
"... 아주? 네, 네가 이곳엔 어쩐 일이냐!"
허참, 전에 마고 때도 그렇고 이정도면 놀라기 전문가 수준이다.
"아들이 아버님 뵈러 오는데 이유가 있어야 합니까?"
아주는 가볍게 받아친다.
"거두절미하고, 다이라와 저는 겁두령을 제압해본 경험이 있지요. 거기다 검의 유물까지 있다면 선비들은 이미 나랑고스에 와 있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어림없는 소리, 넌 아직 유물을 다룰 준비가..!"
"그럼 칼리그 무리에게 양보할까요? 이번 일은 그냥 제게 맡기세요!"
아밈은 만류하지만, 역시 그 아비에 그 아들 아니랄까봐.. 아주 또한 고집불통이다.
"왕자님.. 상대는 겁두령 중에서도 최상위 계층에 속하는 무덤겁이란 걸 알고 계신지요."
"예, 잘 알고 있습니다."
공용도의 물음에도 아주는 거침이 없다.
"... 집정자님..?"
달 미르는 계획대로 되지 않자 잠시 생각에 빠진다. 그러더니..
"좋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세요. 그편이.. 검의 계승자에게도 아밈님에게도 좋을 것 같으니까요."
달 미르, 무슨 속셈인건지 아주의 뜻을 받아들인다.
* * *
"선힘 수업 정말 싫어.."
공용도의 수업이 끝나고.. 정신이 홀랑 빠진 얼굴로 나오는 시아. 아주 죽을 맛이다. 시우가 말한다.
"선비가 선힘 수업을 싫어하면 어떡하냐."
"그럼 오빠는 좋단 말이야?"
"... 아니 나도 별로긴 해.."
"그것 봐.. 주선승님이 계실 때가 좋았는데.. 친절하시고 자상하시고 다정하시고.. 근데 지금 공선승님은 너무.. 뭐랄까.. 너무 너무해.."
시아는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 듯하다. 시아는 말을 이어나간다.
"들리는 말로는 주선승님 요즘 특별수련 중이시라던데?"
"그거 정말이야?" 하랑이 되묻는다.
"그거 정말이냐고 따져 물으면 그거 정말이라고 말해줄 만큼 확실하진 않지만.."
이런저런 대화가 오간다.. 아니 잠시만, 쉬라는 마고 옆에 딱 붙어있네. 허허.. 그렇게 좋으냐. 시아의 말을 들은 하랑은 슬며시 눈을 감는다.
"그렇다면 외려 더 걱정인 걸?"
"왜?"
"비자둥우리에선 선비님들께 무슨 일만 생겼다 하면 꼭 '특별수련' 떠났다고 하잖아. 그렇게 특별수련 떠났다 하고 다시 돌아온 선비님을 뵌 적이 없으니.."
"그런 거였어???"
시아의 입이 떡 벌어진다. 땀을 뻘뻘 흘리며 목소리가 커지는 시아.. 무슨 일 있는가?
"몰랐냐?"
"그럼 내 우상 아란 선비님도 무슨 일 생겼단 거잖아?! 안돼~!!!"
"엥?"
"선비님이 그러셨단 말야! 당분간 특별수련 때문에 나르골을 떠나 있게 됐다고!"
"글쎄.. 본인이 직접 그렇게 말씀하신 거면 그건 진짜 수련이 목적 아닐까 싶기도.."
"안 돼, 안 돼!! 선비님께 무슨 일 생기면 안 된단 말이야!!!"
시아는 애꿎은 하랑에게 손발을 투닥투닥 마구 뻗는다. 하랑은 오로지 오른팔 하나로 다 막아낸다.
"진정해!! 아란 선비님은 별일 없으실 거야!"
"아앙! 선비님 돌아오시면 타오른꽃 가르기 알려주신댔단 말이야!!"
"그, 그만..!!"
참다 못한 하랑.. 폭발하고 만다.
"그만하지 못해!!!"
쾅! 푸른 선힘 번개가 친다. 쉬이익.. 얼굴이 잔뜩 달아올라 익어버린 시아.. 쉬라는 걱정하며 시아를 본다. 그런데.. 마고는 계속 멍하니 있을 뿐..? 쉬라는 곁눈질로 마고를 본다.
"마고?"
쉬라의 부름에도 마고는 답이 없다. 예끼 이놈!
"마고야 괜찮아?"
"응? 응.."
쉬라가 어깨에 손을 얹기까지 하며 묻고서야 마고의 정신이 돌아온다. 예엣끼 이놈!!
"괜찮긴, 얼굴이 서릿발 박힌 것처럼 허연데?"
"어디 아픈 거 아냐?"
"아, 아냐. 특별수련을.. 아니, 그냥 수련을 열심히 해서.."
"확실히 이상해! 안 되겠어, 마고를 선의님께 데려가야지.."
시우와 쉬라는 마고를 걱정한다. 그런데 그때..
"그럴 필요 없다. 그 아인 그저 휴식이 필요한 것 뿐이다."
"고, 공선승님!?"
공용도는 마고에게 이른다.
"이제 더는 아주님과의 야간 특훈은 없을 게다."
마고의 얼굴은 긴장으로 가득찬다.
"... 가자, 앞으론 이 '너무 너무한 선승'께서 네 특훈을 맡기로 했으니.."
4. 48. 출격
드디어! 아주와 다이라는 선비들을 구출하기 위해, 부하들과 함께 비자수리들을 타고 출격한다.
"아주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뭘?"
"집정자님과 아밈님 두 분 말씀 말예요.. 아밈님께선.. 지금까지 검의 힘을 빌리거나 의지했던 세력들은 모두 멸망하거나 갈라지는 등 비참한 최후를 맞았기 때문에 그 힘을 숨기는 것이 옳다셨지만.."
"셨지만?"
"... 집정자님은.."
달 미르는 실실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검의 힘을 숨기려는 것 역시 검의 힘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에서 비롯된 환상 아닌가요?'
"좀 노골적이긴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서요.."
"그러니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검의 힘으로 제국을 견제하고 왕국의 분열도 막자? 다이라도 그렇게 생각한단 거야?"
"저, 저야.."
다이라가 말을 더듬는다.
"언제나 아주님 생각 뿐이죠!"
"히익"
때아닌 기습 포옹..
"놔! 이거 안 놔?!"
아주는 질색을 하고, 둘의 비자수리가 마구 흔들흔들 휘청댄다.
"아주님 수리.. 움직임이 이상한데?"
"수리는 다이라가 몰고 있어. 아주님은 수리를 못 다루시잖아.."
아주는 도무지 안되겠던지 푸른벼락을 내려 다이라 머리를 태운다.
"푸른불 말고도 널 떨어뜨릴 수 있는 기술은 많거든?"
다이라는 머리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데도, 아주의 옆구리에 기어코 손을 쑤셔넣는다.
"짜릿한 게 나쁘지 않은 걸요.."
"기어이 불맛을 보겠단 거야?!!"
아주는 결국 불을 켜고야 만다. 그리고, 끝끝내 다이라에게 답하는 아주.
"... 옳고 그름으로 따지면 두 분 다 옳기도 그르기도 하지. 난 검의 힘을 선약이라고 봐."
"선약이라면 선비들이 마시는 그 선약이요?'
"응, 그 선약. 선약은 우리가 위험에 빠졌을 때 큰 도움을 주지."
선약! 호리병에 그득 담긴 고놈을 꿀꺽 꿀꺽 단방에 들이키면, 겁들 따위는 그냥 일망타진이다.
"하지만 그걸 너무 의존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얼굴이 붉어지며 핏줄이 마구 돋더니, 이내 피를 토하고 얼굴이 창백하여지며 동공이 축소된다.
"되려 위험하게 돼."
비틀, 정신을 못 차리는 새에 겁들이 달려들어.. 외마디 비명만을 내지르고는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약에 중독되지 않게 하려고 훈련도 받는 거고. 헌데.. '검'이라는 선약은 그 효험이나 중독성이 얼마나 강한지 현재로썬 누구도 알 수 없단 거야."
"한마디로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이란 거네요?"
"아니, 그 성질이 불분명하다는 것 그것만으로 이미 약으로썬 실격 아닐까? 뭘 알아야 잘 쓰든 못 쓰든 할테니.. 그럼에도 아버지께서 공선승님께 마고를 맡긴 건 어딘가 믿고 계시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해.."
* * *
먹구름 낀 하늘 아래, 뒷편으로는 폭포수가 시원하게 내리는, 너르고 푸른 들판.. 그곳에서 지금, 수업이 펼쳐지고 있다.
"준비가 된 선비부터 선힘을 펼쳐 보아라!"
후웅, 후웅후웅. 가부좌로 앉아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선비들은 차례로 하나둘 선힘을 펼친다. 공용도는, 또다시 선비들을 둘러본다. 첫 표적은.. 짧은머리에 짙은 피부를 가진 한 사내아이다.
"가제쉬!"
"네, 네!"
"선류[1]가 느려 터지다 못해 잠꼬대 하는 굼벵이 같구나. 그렇게 맥없는 선힘으로 나대다간 그놈의 송곳니가 네 목을 가차 없이 꿰뚫어버릴거다!"
공용도가 거침없는 독설을 내뱉자 가제쉬는 꿀꺽 마른 침을 삼킨다.
"라지! 그렇게 짜내서 겁들이 겁이나 먹겠냐! 흐름을 읽으란 말이다, 흐름을!"
그의 독설은 모질다.
"시우, 네 녀석의 선힘은 여전히 쥐똥만 하구나. 선힘을 더 내지 못하겠다면 선비를 그만두는 것이 모두에게 이로울 게다!"
그의 독설은 지독하다.
"소니, 다리, 도리! 늬들도 마찬가지다. 너희들의 구린내 나는 선힘을 맡고 백 리 밖에 있던 겁들이 달려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의 독설은 신랄하다.
"이렇게 해서 너희들이 으뜸선비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그렇다면 오산이다."
그의 독설은 날카롭다.
"잘 들어라! '강력한 선술'은 '부드러운 선힘'에서 나오고, '부드러운 선힘'은 '일정한 선류'에서 나온다! 때문에 선류를 만들 땐 빠르든 느리든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속적이지 않은 흐름은 의미도 없고 쓸모도 없다."
"치, 그걸 누가 모르나..!"
말처럼 쉬운 게 아닌지라, 시아는 중얼중얼 불평한다. 그런데, 하필 공용도가 바로 뒤에 있었다.
"진시아.. 그래서 네 선술이 보잘것없단 거다. 앞으로 그런 자질구레한 선법으로 내 눈을 더럽히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공용도는, 자신의 등장에 깜짝 놀란 시아의 뒷통수에도 독설을 퍼부어주곤, 마고에게 눈을 옮긴다.
"그리고 마고!!"
"... 네."
무표정한 공용도에, 마고는 물론 친구들 모두 긴장하는데..
"이 반에서 가장 우수한 선류를 만들어 내는구나. 너에게 승점 10점을 주마."
오히려 공용도는, 지금까지 중 가장 따뜻한 얼굴로 마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하는 것이었다.
5. 49. 결투
"이 반에서 가장 우수한 선류를 만들어 내는구나. 너에게 승점 10점을 주마.""네?"
에에엑? 아이들은 다들 제 눈을 의심한다.
"내,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선승님 지금 웃으신 거 맞지?"
"으, 으응.. 그런 것 같아.."
시우와 쉬라도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마고, 네가 날 살렸다. 보잘것없는 풋내기들에게 선힘을 가르치는 것만큼 지루한 일도 없거든.."
큭, 시아는 이를 앙다문다.
"왜죠? 기준이 뭔데 마고 오빠가 최고라는 거예요? 선힘은 커녕 선류도 간신히 느껴질 정돈데.."
잌.. 마음 약한 마고는 또 울상이 된다. 그런 마고에게, 공용도는 몸을 숙여 가까이 한다.
"신경 쓰지 말아라. 재능 있는 선비 곁엔 언제나 그 능력을 시기하는 녀석들이 있기 마련이니."
"이, 이건 시기가 아니라!"
"내 말이 틀렸단게냐?"
마고는 어쩔 줄 몰라한다.
"선승님, 시아 말이 맞아요. 전 아직 여러가지로 미숙한걸요.."
"슬프구나.. 마고 너마저 내 말을 안 믿다니.."
공용도는 한탄하더니, 제안 하나를 한다.
"좋다, 그럼 이 기회에 시아와 선힘 겨루기를 한 번 해보는 건 어떠냐. 너라면 분명 무식하게 선힘만 짜낼 줄 아는 버금선비 따위에겐 지지 않을 거다."
"뭐? 무식?!!"
시아는 공용도 앞에서 거리낌 없이 씩씩거린다. 마고는 당황해서 삐질 땀을 흘린다.
"내, 내가 한 게 아니야 시아야!"
"이거 재밌겠는걸? 아밈님의 수제자와 선힘 대결 끝판왕과의 한 판 승부라니.."
구경하는 아이들은 기대 만발이다.
"오옷! 시아 벌써 불타오르고 있어!"
"서, 서, 선승님! 전 시아와 싸우고 싶지 않아요! 게다 선힘 대결 같은 거 해본 적도.."
공용도는 미소로 일관한다..가 아니라, 공용도는 단숨에 정색하며 마고를 노려본다. 마고는 울먹거리며 아무 말도 못한다. 대결에 응할 수 밖에..
* * *
"방식은 기본 선힘 한 판 대결로, 선검이나 도구 사용 없이 오직 선힘으로만 승부를 겨룬다."
마고와 시아는 마주 보고 선다. 고동색 삼발 향로에 빨간 향 세 개가 꽂혀 있다.
"결투는 선향에 불을 붙임과 동시에 시작되고.. 향이 다 타서 없어질 때까지 서 있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 선향의 연기가 하얗게 변하기 전까지는 항복을 선언할 수 없으며.."
"싸우기 싫어요.."
"두 사람 모두 끝까지 남아 있을 경우엔 무승부가 된다."
"무승부 날 일 없을 걸요? 예전부터 때려주고 싶었던 오빠니까.."
시아는 손이 근질거려, 진작에 태세를 취한 상태다.
"자 그럼. 시작이다!"
딱! 공용도의 손가락이 경쾌하다. 팟, 선향에 불이 붙고, 결투가 시작된다. 시아는 두 손에 선힘을 켠 채 마고에게 돌진한다.
* * *
착륙하는 비자수리들. 기괴하게 뻗은 거목의 뿌리들이 그들을 맞이한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어. 수고했다."
아주가 비자수리의 부리를 쓰다듬어 주자 수리가 낮게 그렁거린다. 그리고, 여덟 마리 수리들은 비둘기마냥 귀소 본능이 있는지, 지들끼리 알아서 나르골로 돌아간다. 수리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이내 다시 숲으로 고개를 돌리는 아주. 드렁드렁 덩쿨들이 늘어뜨려진 음산한 숲이 떡하니 자리잡았다.
"... 언제 봐도 기분 나쁜 숲이라니까.."
"아주님, 칼리그 놈들이 안 보이는뎁쇼?"
"분명히 여기가 맞는데.."
그때. 숲 속에서 누군가 눈을 붉게 빛내며 나타난다.
"놈들이라니.. 너무 하시는군요.."
그렇다. 선비들이 간파하지 못했을 뿐. 칼리그의 암전사들은 그 이름에 걸맞게 숲의 어둠 속에 숨어들어 있었던 것이다. 무려 열 남짓한 이들이 한 순간에 모습을 드러낸다.
"너희가.. 칼리그 무리?"
"저희는 칼리그 무리라 불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칼리그님께서 싫어하시거든요.."
필두로 두 사람이 나아온다. 그들의 말투엔 차갑게 날이 서있다.
"어쨌든 반갑습니다. 저는 칼라리아의 암사대장, ' 칼라나'."
"암사단장, ' 칼리온''입니다."
6. 50. 일격
"반갑습니다. 저는 칼라리아의 암사대장, '칼라나'.""암사단장, '칼리온'입니다."
아주는 퉁명스럽게 답한다.
"많이도 몰려왔군.. 테라부락과 전쟁이라도 할 셈인가?"
"..." 칼라나는 잠시 침묵한다.
"무덥겁을 상대하는 건 저희로서도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왕자님께선 어쩐 일이십니까. 단순히 길 안내나 하시자 온 것 같진 않고.."
"증원입니까?"
"증원?"
아주는 시큰둥하게 휙, 두루마리 하나를 던진다. 칼리온은 그것을 잡아채 펼친다.
"'집정자님의 칙령에 따라 징집된 것들은 선비들이 소유하며 칼리그 무리는 선비들의 감시 하에 떠날 것을 명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헛걸음했다.. 이런 말씀인가요?"
"그래, 너희가 헛걸음을 했단 거다. 미안하게 됐다만 너희에게 도움 청할 일 다신 없을 거다."
아주는 칼리온을 지나쳐 숲으로 들어가고, 많은 선비들이 그의 뒤를 따른다. 그때, 암전사 하나가 칼리온 앞에 다가간다.
"이제 어떡하실 생각이신지요."
한 선비가 목소리를 높인다.
"자, 철수다 철수! 군소리 말고 조용히 국경까지 따라오도록!"
칼리온은 부하에게 답한다.
"달라지는 건 없다. 계획대로 진행한다."
"이놈들!! 빨리빨리 움직이잖고 뭘 그리 꾸물대는거야?!!"
...
선비의 독촉에, 그를 쏘아보는 암전사들의 새빨간 눈이 번뜩인다.
* * *
쿵!
"으아악!"
시아는 몇번이고 선힘을 날려 공격하지만, 마고는 눈물을 흩날리며 회피하기 바쁘다. 시아의 일격에 마고는 튕겨져 나가 공중에 띄워진 채, 놀란 표정으로 시아를 본다. 왜냐하면.. 시아의 일격은, 땅바닥이 깊이 파일 정도의 위력이었기 때문이다.
'저런 걸 맞았다간 온 몸이 산산조각 나버릴 거야!!'
'칫, 내 일격을 두 번씩이나 피해?!!'
마고는 공중제비를 돌아, 낮은 자세로 유연하게 착지한다.
"역시 아밈님의 제자, 날래기가 보통이 아니야! 잘하면 시아한테 이길 수도 있겠는걸?"
그래, 마고도 엄연히 아밈의 제자! 마고의 재빠른 몸놀림은 아이들의 감탄을 사는데..
"거기 안서?!!"
"히이이익!"
...
"틀렸어.. 아까부터 도망치기만 하고 투지라곤 개미 똥만큼도 안 보이는데.."
"오빠!! 한 대만 맞아라! 죽게는 안 할 테니까!"
"거, 거짓말!!"
최선을 다해 발을 놀리는 마고. 시아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한참 앞까지 도망친 마고를 순식간에 따라잡아버린다.
"한 대만!"
선힘을 실은 회심의 돌려차기, 하지만 마고는 몸을 숙여 피해버린다!
"한 대만!!"
선힘을 담은 쾌속의 오른주먹, 역시나 마고는 몸을 젖혀 피해버린다!
"한 대만!!!"
회전력까지 더한 뒷차기까지! 세상에나.. 이번엔 덤블링까지 나왔다!
"한 대만 맞아라!"
시아는 선힘을 주먹에 끌어모아 마고를 노린다. 그런데.. 뒷걸음질로 피하던 마고의 등을, 툭, 왠놈의 나무가 막아버리고야 만 것이다! 그렇다, 기어코 시아는 마고를 구석으로 몰아넣고야 만 것이다!
"시아 녀석 드디어 몰아넣었어!!"
'잡았다.'
마고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쾅!
드드드드득.
"나, 나무가 쓰러졌어!"
"마고! 마고는?!"
쉬라는 애간장이 탄다.
"직접 확인해봐."
긴장되는 것은 하랑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아니 잠깐, 마고는 완벽한 일자로 다리를 찢어, 이번에도 시아의 공격을 피해버리고 말았다! 나무는 쓰러뜨렸을지라도.. 마고에겐 일말의 상처도 낼 수 없었던 것이다!
"마, 마고야!!"
쉬라의 얼굴은 안도감에 휩싸여 밝아진다.
"대단한 녀석이야.. 공격의 흐름을 읽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단순히 운이 좋았던 건지.."
하랑은 담담한 어투로 말한다.
"뭐가 됐던 저 어마무시한 일격을 다리찢기로 피하다니.."
공용도는 역시나 독설을 퍼붓는다.
"진시아, 정말 실망이로구나. 상대를 코앞에서 놓치다니.. 마고가 네 주먹으로 달려 와주길 바라기라도 한게냐? 마고에겐 승점 1점을 주마! 잘했다!"
마고는 울먹이며 공용도 앞에 선다. 하지만! 아직 대결은 끝나지 않았으니. 아직 시아에게는 최후의 보루가 남아있었다. 시아의 매서운 눈빛이 희뿌연 선향 연기를 꿰뚫고.. 그 광경을 본 하랑은 깜짝 놀란다.
정면으로 고정된 채, 격앙된 두 눈만이 보이는 어둔 얼굴.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는 수족의 잔상이, 지켜보는 이들의 시야를 꽉꽉 들이 채운다.
"저 품새는.. 여, 여나비춤..?! 저, 저, 저거 으뜸선비 기술이잖아?!!!"
"허세가 아니고 진짜라면 저건.. 누구도! 선비 증조할아버지라도 피할 수 없어!!"
"이걸로 결판나겠군. 선힘 소모가 워낙 큰 기술이라 시아도 다음은 없어..!!"
'마고야..!' 쉬라는 일편단심, 마고의 안위만을 걱정한다.
7. 51. 검의 힘
시아의 온몸이 선힘으로 빛난다. 하랑과 쉬라 그리고 마고의 눈앞으로 나뭇잎이 살랑거린다. 긴장감이 감돌고.. 시아의 입에서는 입김이 흘러나온다. 온몸을 흥건하게 적시는 땀.. 이윽고, 나뭇잎이 떨어져 바닥에 내린다.확! 시아는 마고에게 달려든다.
* * *
'싸우기 싫어..'
공용도는 무미건조한 눈으로 둘을 지켜본다. 그리고.. 대체 무슨 속셈인지, 아무도 몰래 선힘을 불어넣어, 마고의 발 뒷 편에 박혀있던 돌멩이 하나를 솟게 한다.
'싸우기.. 싫어!!!"
마고는 뒷걸음질쳐 피하려 하지만, 바위에 발이 걸려 차마 피할 수 없었고.. 시아는 코앞까지 온다.
선무 여나비춤 |
드디어 시아는 선무 여나비춤을 시전한다! 시아는 순식간에 홱홱 여러 자세를 취하며 다가와, 마지막엔 선힘이 가득 찬 주먹을 날린다. 날아오는 시아의 주먹.. 그런데, 둘 사이에 힘의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힘의 균열은 마고의 가슴께와 다리를 타고 땅에 흘러든다. 그리고.. 주먹이 마고에게 닿기 직전! 흘러든 힘들은 수많은 구멍을 뚫고서 수많은 나무가 되어 솟아나온다..!!
파일:나무덩굴에묶인시아.jpg |
갑작스레 튀어나온 나무 덩굴에, 시아는 물론이요 구경하던 아이들 모두 옴싹달싹 못할 정도로 옥죄어져 버린다. 그리고.. 공용도는 무슨 속내인지, 만족스러운 듯 보는 사람 속이 거북해지는 미소를 짓는다. 이렇게 말이다.
파일:공선승님왜그렇게웃어요.jpg |
마고는 계속해서 덩굴을 뿜어낸다. 그리고, 시아 앞에 나타난 누군가..
파일:덩굴을끊는뮤울.jpg |
그는 순식간에 칼을 휘둘러 시아를 옥죄는 덩굴을 끊어낸다. 그의 등장에 놀라는 시아.. 왜냐하면, 그는 바로..
"뮤.. 뮤울오빠?!!!"
뮤울은 시아를 뒤로 하고, 곧바로 마고에게 향하려 한다.
'마고야!!!'
하지만.. 공용도가 마고의 머리를 부여잡고 땅바닥에 내려찍어, 마고의 폭주를 중지시킨다. 공용도는 마고의 앞머리를 움켜쥐고, 상처투성이가 된 마고의 고개를 들어올린다.
"보아라, 네가 가진 힘의 위력을!"
파일:나무덩굴에대롱대롱.jpg |
순식간에 뻗어나온 굵다란 나무 덩굴들.. 그리고 거기 옥죄어져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선비들..
"... 네 어미가 왜 널 떠났다고 생각하느냐. 그건 네가 괴물이었기 때문이다.."
여태껏 고여만 있던 마고의 눈물이 진하게 흘러내린다. 그때, 뮤울이 나선다.
"이만 마고를 놔 주시지요!"
"수업 중이다. 방해하지마라 버금선비."
"선비들이 크게 다칠 뻔 했습니다. 어째서 마고에게 선힘대결을 시키신 겁니까!"
뮤울은 자신을 업신여기는 공용도에게 눈을 치켜뜨고 묻는다. 이에, 공용도는 똥씹은 듯한 표정을 짓더니.. 선힘으로 그를 날려 나무에 쳐박아버린다..!! 나무 둥치에 거세게 어깨와 등을 부딪히고는 힘없이 쓰러지는 뮤울.. 그에게 공용도는 외친다.
"수업 중이라고.. 하지 않더냐!!"
8. 52. 착수
"수업 중이라고.. 하지 않더냐!!"공용도는 크게 외치고는 바로 침착해져서는 마고와 아이들을 차례로 둘러본다. 마고는 무릎을 꿇고 앉아 얼이 나가있다. 그리고..
파일:마고상처투성이얼굴.jpg |
공용도의 손길에 짓눌러진 얼굴은 처참하게 쓸려 상처입었다. 아이들은 나무 덩굴에 무력하게 매달려 있고 말이다.. 공용도는 마고 옆에 붙어 몸을 숙인다.
"참으로 멋진 광경이지 않느냐? 이제 네가 느낀 검의 힘을 잘 다스리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땐 우리 모두 이 지긋지긋한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공용도는 다시 몸을 일으킨다.
"영웅이 되느냐, 괴물이 되느냐.. 그건 너 하기에 달렸다."
"..."
눈을 내리깐 채 힘겨워하는 마고.. 공용도는 곁눈질로 그를 보다, 이내 눈을 감아버린다.
"걱정 말아라. 우리가 너의 짐을 덜어 줄 테니.. 안 그러냐 뮤울."
뮤울은 답이 없이, 입가의 피를 닦아낼 뿐이었다.
* * *
쪼르르르. 찻물이 잔을 채운다.
"어떻든가요. 검의 힘은.."
칠흑같은 긴 생머리와 잘 어울리는 순백색의 옷을 입은 누군가.. 그와 함께 있는 건 바로 공용도다.
"아직은 좀 엉성합니다만..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나라 하나 전복시키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닐 겁니다."
찻물은 잔을 채우다.. 결국엔 왈칵, 흘러넘친다.
"... 기대되는군요."
그제서야 찻주전자를 거두는 그..
"아!"
그리고 그의 얼굴이 드러나는데.. 그는 바로 집정자 달 미르였다!
" 할아버님께서 안부 전하라셨습니다. 선승님께 거는 기대가 크신 것 같더군요."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집정자님.."
* * *
"평범하게 자라주길 바랐는데.. 결국 그렇게 되었군.. 하나 그 또한 마고의 운명이겠지."
아밈은 한탄하면서도, 마고의 운명이리라고 수긍한다. 아밈에게 보고한 이는 바로 뮤울이다.
"... 우선 그들 장단에 맞춰주세나. 공선승이 붙어있는 이상 사냥꾼들도 함부로 움직이진 못할 테니.."
"예.."
아밈은 눈 앞의 뮤울보다도 공용도를 신뢰하며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물론, 한낱 버금선비보다 대선승에게 신뢰가 가기야 하겠지만은, 중요한 건 공용도가 지금 어느 줄에 섰는지를 아밈은 전혀 알지 못한단 것이다.
"... 난 느낄 수 있네. 칼리그는 그저 시작일 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큰 바람이 우릴 향해 불어오고 있다는 것을.. 인간보다 긴 삶을 살았음에도 무엇 하나 뚜렷한 게 없으니.."
"걱정 마십시오. 그들은 결코.."
파일:사막을횡단하는아란.jpg |
우릴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
동토의 여명/에피소드 가이드/1부 4장 完
9. 핵심 요약 및 여담
+5「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세력의 대립」
에피소드 가이드 1부 4장에 해당하는 45화~52화는, "갑작스런 위기를 맞이해 은신 중에 있는 비자수리 공격대를 구출하자"는 동일한 안을 가지고 아밈과 달 미르가 팽팽하게 대립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테라부락 경계지의 숲에서 접선한 아밈 측의 비자수리 정예선비들과 달 미르 측의 칼리그 암전사들 사이에는 갈등의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45. 계략[2]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무라이, 달 미르, 아밈, 공용도, 마고
무라이가 비자수리와 테라부락 간 전투가 있었던 날의 상황을 아밈과 달 미르에게 설명할 때 나온 배경들 중 하나는, 4화에서 아밈과 달 미르가 겁들의 비자둥우리 습격을 보고받을 때도 쓰인 적이 있다.
무라이가 선비들을 숨긴 산은 마라흔산인데, 고작 몇컷 아래에 나르못의 대사에서는 무라흔산이라 되어있다..
무려 10회차 만에 마고가 등장하였다. 근데 마지막에 한 컷으로 끝이다. 나름 명색이 주인공인데..
46. 다이라X다이라[3][4]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아주, 다이라, 아밈[5]
아주의 대사 중 오타가 있다: "놓치면 안 되는 걸 놓쳤버렸을 때의 낭패감이란.."
47. 구출 작전[6]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달 미르, 아밈, 공용도, 아주, 다이라, 마고, 진시아, 진시우, 주리진, 하랑, 쉬라, 아란
48. 출격[7]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아주, 다이라, 달 미르, 아밈, 공용도, 진시아, 마고[8]
49. 결투[9]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공용도, 마고, 진시우, 쉬라, 진시아, 아주, 다이라, 칼라나, 칼리온
50. 일격[10]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칼라나, 칼리온, 아주, 달 미르, 진시아, 마고, 쉬라, 하랑, 공용도
극초반부 아주의 대사 중, 테라부락이 테리부락으로 오타가 나있다.
51. 검의 힘[11]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진시아, 하랑, 쉬라, 마고, 공용도, 뮤울, 마리
52. 착수[12]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공용도, 마고, 뮤울, 달 미르, 나마계님, 아밈, 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