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 (요카이, ようかい) 라 불리운 사나이
1. 개요
일본 에도 시대의 막신(幕臣). 요즘 표현으로 체제 유지와 사회 통제에 앞장선 보수파의 선봉. 반대세력에 대한 탄압으로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었다.2. 생애
19세기 전반의 에도 막부 체제는 방만한 재정 운영과 수뢰, 엽관행위가 공공연하게 자행되었고, 사회 기강도 흐트러져 범죄는 빈발하게 되었다. 1830년대에 들어서 이상 기후로 인한 흉작은 농민들의 잇키(一揆, 민중봉기)를 불러왔고 심지어는 경제의 중심도시로서 일본의 부엌이라 일컫던 오사카를 중심으로 오시오 헤이하치로(大鹽平八郞)의 난이 발생하는 등 혼란은 극에 달한다.이 무렵 12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요시(德川家慶)가 취임하자 로쥬(老中 : 다이로(大老) 다음의 막부 관직. 상설직으로서는 최고) 미즈노 다다쿠니(水野忠邦)는 막부의 권위 회복을 위해 일련의 개혁에 착수한다. 당시의 연호(年號)를 따서 이를 "덴포(天保)의 개혁" 이라 한다.
개혁의 내용인즉, 에도와 오사카 주변 다이묘(大名)의 영지를 천령(天領 : 막부 직할령)으로 전환시켜 막부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한편, 경제권을 장악하던 상인의 조합을 해산시키고 상업종사자를 농촌으로 내려보내 농본(農本)주의 회귀를 강행하며 (이로 인한 곡물생산 증대는 곧 연공(年貢 : 조세)의 증대로 직결되므로), 문란해진 풍속을 바로잡고자 사치와 낭비를 금하고 검소한 생활을 강요하였다.
이 과정에서 첩자들을 풀어 서민의 행동을 감시하였으니, 다름아닌 그 악역을 맡은 책임자가 메즈케(目付 : 감찰관) 및 미나미마치 부교(南町 奉行[1] : 에도성 행정/사법관)를 역임한 도리이 요조 바로 이 사람.
더군다나 당시 일본 연안을 드나들며 문호개방과 통상을 요구하던 서양선박을 배척, 추방한 막부의 태도를 비난한 일부 난학자(蘭學者)[2]들이 체포, 구금, 고문당한 사건이 있었다. "서양 야만인(蠻)의 학문을 연구한 무리(社)"를 투옥, 탄압하였다 하여 이를 "반샤의 옥(蠻社の獄)"이라고도 한다. 감찰관(메즈케) 직책의 도리이가 이에 관여하면서 오명을 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람들은 요조의 요(耀,よう)와 도리이의 관위(官位) 가이노가미(甲斐守)[3]의 가이(かい)를 합쳐 ようかい(요+카이, 耀+甲斐)라는 별명을 지어준다. 이는 요괴(妖怪)의 동음이의어이니 그를 요괴에 빗대어 비난한 것이다.
2.1. 말년
개혁정책으로 자신의 영지와 권세까지 위협당할 지경에 이르자 결국 개혁반대 노선으로 돌아선다. 덕분에 1845년 부정과 직무태만이라는 이유로 관직 삭탈, 시코쿠로 유배당하는 신세가 된다. 20여년간의 유배 생활 끝에 에도 막부가 몰락하고 메이지 신정부가 들어서면서 도쿄로 이름이 바뀐 에도로 귀환. 아니, 도시 이름만 바뀐게 아니라 아예 세상이 변했다. 이른바 메이지 유신. 숱한 인물들이 막부 말기의 동란으로 스러져 갈때 정작 요괴라 불리며 지탄의 대상이 된 도리이 요조는 유배지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낸 셈이다. 그리고 별탈 없이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한다.3. 대중매체에서
이 인물을 직접 다룬 작품이 많이 있는데, 소설이나 TV드라마는 제쳐두더라도, 애니메이션에서까지 요괴라는 오명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로 등장하기도 한다. 덴포이분 아야카시아야시(天保異聞 妖奇士)와 오오에도 로켓(大江戶ロケット)의 정보에 밝은 사람이라면 더 잘 알 것이다.오오에도 로켓의 요괴 어르신
덴포이분 아야카시아야시의 요괴 어르신
작품은 다르지만 같은 캐릭인지라 목소리 연기를 맡은 성우도 같은 사람이다.
[1]
에도성 부교직을 미나미마치와 키타마치(南町/北町)로 나눈건 지역관할권 분리가 아니라 격월 근무교대를 위한 것.
[2]
난학(蘭學)을 연구하던 자. 난학이란 문자 그대로라면 화란(和蘭, 네덜란드)의 학문. 당시 서양학문은 유일한 대외창구 나가사키 데지마(長崎 出島)를 통해 접촉할수 있었던 네덜란드인을 통해 유입되었으므로 난학은 곧 서양학문의 대명사.
[3]
가이(甲斐)는 오늘날
야마나시현이며 가미(守)는 태수 또는 수령 관직에 해당. 실제로 해당 지역을 다스리는 관직이 아니라 간판으로 내세우는 명예직에 불과하지만 당시 벼슬아치들에게는 필수적인 액세서리나 다름없었다.